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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Aug 14. 2017

어떤 방문

과거의 내가 문을 두드릴 때

코마 감독 : 카와세 나오미

이 영화는 어떤 남자가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이 남자는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 남자가 향하고 있는 곳은 죽은 할아버지와 관계된 어떤 장소라는 것을 관객은 남자의 말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남자가 찾은 곳은 일본의 어느 시골 마을이다. 영화는 할아버지의 과거와 젊은 남자의 현재를 교차하듯 보여주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남자가 어느 일본인 노부부를 만나 그 집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이 남자가 왜 이 시골 마을을 찾았는지 알 수 있다. 남자는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할아버지가 남긴 유품인 '족자'를 노부부에게 돌려주려고 이들의 집을 방문한 것이다. 족자만 돌려주고 돌아갈 생각이었던 남자는 노부부에게 족자를 돌려주고 할아버지가 그 집에 주고 간 부채를 돌려받게 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녀는 정체성(뿌리)에 혼란을 느끼고 있다. 노부부에게는 입양해 키운 딸이 한 명 있다. 노부부와 입양해 키운 딸의 사이는 그러나 그리 좋지 않다. 딸이 어떤 잘못을 해도 노부부는 그냥 내버려둔다.
 

딸은 양부모가 자신에게 별로 관심이 없고, 그 이유가 자신이 양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살기는 하지만, 서먹하고 거리가 느껴지는 부모 자식 관계다. 할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이 집을 방문한 남자의 이름은 강준일. 일본말을 쓰지만 그는 재일교포다. 그 역시 부모와의 관계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의 거리를 느끼고 있었고, 할아버지에 대해,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러나 우연히 방문한 시골 마을에서 그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노부부의 양녀인 하츠코와의 만남을 통해서다. 예기치 않은 만남이었지만, 하츠코는 준일과의 만남으로 인해 노부부와 화해하게 된다. 그리고, 준일 역시 하츠코의 집을 방문한 일을 계기로 자신이 어디서 왔고,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를 알게 된다. 하츠코와 준일은 떠나기 전 기차역에서 다시 만나 뜨겁게 포옹한다.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현재를 뜨겁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옆으로 기차가 지나간다. 영화가 처음 시작될 때 준일이 탔던 기차가 과거로 향하는 기차였다면 두 사람 옆을 스쳐 지나가는 기차는 미래로 향하는 기차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지만 깊은 여운이 느껴지는 영화였던 것 같다.


첩첩산중 감독 : 홍상수

첩첩산중에서는 길을 잃기가 쉽다. 산 속으로 깊이 걸어들어갈 수록 길을 잃거나,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 건지도 모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는 과거의 어떤 인연으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첩첩산중에 들어가게 된 여자가 주인공이다.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은 이후에 만들어진 <옥희의 영화>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 영화다. 실제로 이 영화 속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옥희의 영화에도 그대로 출연했고, 인물들의 관계마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을 토대로 옥희의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정유미)은 작가 지망생으로 충동적으로 전주를 방문한다.
 
전주에 아는 언니(진영)네 집을 방문했지만, 언니네 집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이 여성은 학창시절 교수에게 전화를 한다. 두 사람은 연애를 했던 사이다. 물론 교수에게는 아내와 자식이 있다. 유부남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러나 이 여성은 이 교수를 잊지 못하고 가끔 전화를 해서 만나곤 했다. 이 여성은 충동적으로 방문한 전주에서 진영 언니가 자신이 사겼던 교수와 현재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여성은 홧김에 명우를 만난다.


작가로 성공한 친구다. 예전에 잠깐 사겼던 사이다. 명우와 하룻밤 잠을 자고, 아침에 식사를 하러 간 식당에서 교수와 진영 언니를 만난다. 교수는 모르는 척 하고, 식당을 빠져나가는 명우와, 미숙을 불러 혼을 내고 미숙은 화가 나서 돌아서서 떠난다. (은희경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다가 깜짝 놀랄 수도 있겠다. 이 영화에 은희경이 카메오로 나오기 때문이다.)
 
미숙이 전주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미숙은 교수와 깨끗하게 끝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숙은 교수가 자신과 친한 진영 언니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속이고, 자신에게 연락을 해왔다는 사실에 화를 낸다.  어쩌면 진영 언니를 만나러 전주에 간다는 건 핑계고, 교수를 만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숙은 충동적인 전주 여행으로 친한 언니와, 자신이 사랑했던 교수를 더는 만나지 못하게 됐다.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 : 감독 라브 디아즈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에는 지나간 과거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금광에서 일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던 이들은 금광이 문을 닫자, 황폐해진 도시에서 술에 절어 지내며 아들이 보내준 생활비로 살거나 소금빵을 팔며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다. 금광으로 인해 깨끗했던 마을은 오염됐고, 사람들의 삶도 비참해졌다. 금광업으로 부자가 된 것은 금광업자 뿐이었다. 그런 이들 앞에 금광업자의 딸이 나타난다. 어린시절 기억을 더듬으며 추억하러 온 금광업자의 딸은 일을 하거나 육아 때문에 바쁜 친구를 붙잡고 기념 사진을 찍거나 어딘가에 같이 여행을 가자고 조른다. 마치 관광객 같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다. 금광에서 일했던 과거 때문에 지금 자신의 삶이 비참해졌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금광업자의 딸을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금광업자의 딸을 납치하러 가는 길, 그녀와 친한 친구 사이었던 남자는 갑자기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낀다. 그녀를 납치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 세편의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과거의 어떤 시간들'이다. 과거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왜곡될 수는 있어도. 있었던 사실을 없었던 일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고, 과거가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이 세 편의 영화는 보여준다. 과거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란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알면서도 우리는 때로 좋았던 과거를 추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거기에 매달려 현재를 망치기도 한다. 현재를 살고 싶다면, 과거의 나의 모습에서 탈피하고 싶다면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과거든, 나쁜 과거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 일 수 있을 때 비로서 변화는 시작된다. 궁금하다면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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