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 생활자 Nov 12. 2017

북극의 연인들

시의 언어로 쓰여진 영화

아버지의 재혼 후 홀로 남겨진 친어머니가 죽고 어머니를 홀로 내버려 두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오토가 머리를 벽에 쿵쿵 찧어댈 때, 사랑하는 아나를 떠날 때  그리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아나를 찾아 헤맬 때 그 혼돈과 방황 역시 사랑의 한 부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세계. 너와 나라는 사람의 세계가 만나서 하나로 합쳐지고 다시 둘로 찢어지고, 북극의 연인들은 떠나왔다고 생각하지만 제자리 걸음으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원을 그리고 있는 남녀의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어떠한 환상도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고 어떠한 포장도 하지 않고 두 사람의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주기에 그 간절한 마음이 내 마음에도 조용한 떨림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복 남매가 된 두 사람이 침대 위에서 사랑을 나눌 때 (영화는 이 정사 장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시적으로 표현한다.) 바람에 격정적으로 흔들리던 나뭇잎은 무척이나 에로틱하게 느껴졌고, 두 사람의 격정적이고, 위태로운 사랑을 함축적으로 보여줬던 장면이 아닌가 싶다.
 
 
영상이 굉장히 시(詩)적인데다 그 위에 얹어지는 음악 역시 너무나 아름다워서 (차갑고 시린 느낌이지만, 가슴 사이로 뭔가가 들어왔다 나가는 느낌. 바람의 느낌을 닮은 음악 역시 너무나 아름다웠다) 정말 푹 빠져들어서 봤다. 사실 우연으로 점철된 영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식상할 수도 있는 스토리 라인을 정말 아름답게 잘 표현해낸 것 같다. 독특한 구성도 마음에 들고.
 
이 영화를 보면서 도망갈 이유도 없는데도  해가 지지 않는 장소에,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할 꿈으로만 끝나지만, 그녀는 그래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눈 감기 직전 그토록 그리워 하던 그를 보았으니까.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건 고통스럽더라도  분명 축복이고 행복일 것이다. 북극으로 도망갈 수 있었던, 그녀의 용기가 - 그리고 잠깐이지만, 두 사람만의 장소를 가졌던 - 그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렸던 아나가 나는 부러웠다.
 
이렇게 시적인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축복이다.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지만, 많이 안 봤으면 싶기도 하다. (너무 좋아서 나만 알고 싶어질 정도랄까) 스페인에 훌리오 메뎀이라는 영화 감독이 있다는 건 분명히 축복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전 10화 클레어의 카메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