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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May 21. 2019

우리가 통과한 밤



우리가 통과한 밤/기준영


  해령은 이제 무슨 부탁이든, 어떤 질문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이 다소곳하게 앉아 내 말을 기다렸다. 고맙습니다. 저도 값을 할 게 있다면 그렇게 하지요, 하는 듯이.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잠시 숨을 골랐다. 말들을 기다리는 침묵, 고요를 헤아리는 고요가 우리 둘 사이에 잠시 가로놓였다. 어느 순간 우리는 시선이 부딪쳤다. 해령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나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해 갈 때 좀더 지혜롭고 여유로워 보이는 나이든 사람들을 떠올려보고자 했다. 더는 궁금한 것도, 바랄 것도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제자리로 걸어가 오직 자신과 함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온화한 영혼을 지닌 사람처럼 비치고 싶다는 욕망을 고무하여 평정심이 무너지려는 찰나를 가까스로 참아 넘겼다. 순간 해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내가 이곳으로 가지고 들어온 질문을 상대의 영역으로 쳐 넘겨야 하는 순간이라고 여겼다. 테니스코트 위의 선수처럼, 번득이며 적시에 뛰어올라 라켓을 휘두르듯이.

  '그 여자는 어떤 사람이야? 하는 그 질문을, 돌아가서 당신이 지연에게 해야 합니다. 그래주세요.'

  나는 내 고요한 의지를 눈빛에 담아 온진히 전할 수 있어야 했고, 또 꼭 그렇게 해낸 것만 같았다.

  "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먼저 들어가요."

  나는 천천히 말했다.

  "네? 그래도 될지......"

  "네, 그렇게 하세요."

  해령은 머뭇거리다가는, 이내 가방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섰다.

  모데라토의 출입문이 딸랑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나는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넷...... 백만, 천만, 억, 영겁의 파도가 나를 씻고, 씻고, 또 씻어 먼 데로 데려가주었으면.




  체와 함께 한 가장 마지막 순간이 언제인지 생각해보려 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새벽 두 시 자동차 안이었는지, 그 다음 날 낮 계란말이 김밥을 먹던 거실이었는지. 아니면 교회에 가던 길에 만나 학원 버스에 올라 탔던 때였는지도 모른다.

  그 날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학원 버스에 올라탔던 날. 푹푹 찌는 더운 여름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걷고 있을 때 체가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었다. 교회 가는 중이지? 타라. 나는 체가 운전하는 학원 버스에 올라 탔다. 작은 노란색 차였다. 언제 학원 버스를 몰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 지 꽤 됐다.

  교회까지는 두 블럭이나 세 블럭쯤, 걸어서 가기에도 먼 거리는 아니었다. 대화 없이 금방 도착했다. 학원 차에서 내려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교회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운전하는 차는 타는 거 아니라고.

  그 말을 제대로 바로잡아 주지 않은 채 나는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빈 예배당의 커튼을 치고 쓰레기를 주우며 묵상하는 시간을 나는 가장 좋아했다. 예배를 준비하면서 속으로 찬송가를 부르면서, 기도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봉사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숨기는 시간. 나는 그 시간 속으로 정신 없이 빨려들어갔다.

  동네 맥주집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그 날이 우리의 마지막인지도 모른다. 짝사랑하고 있던 친구와 맥주를 먹으러 들어갔는데 건너 건너 테이블에 체가 앉아 있는 것을 봤다. 친구도 보고 어떻게 할 건지 물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술과 안주를 시켰다. 체와 나는 서로의 존재를 낮은 조도와 컴컴한 색깔의 소파 등받이 너머로 감추며 각자 술을 마셨다.

  

  자주 꾸며내게 되었다. 체와의 마지막 날에 대해서. 긴 말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쓸 데 없는 스킨십도. 다만 무엇이 필요했을까. 그 무엇이 없어서 나는 오래 당신이 아팠을까.

  어느 날 꿈에는 체가  장판 밑에 숨은 나를 찾아내기도 했다. 또 어느 날 꿈에는 시퍼런 들판 위에 외따로 서서 색소폰을 부는 체를 보고 있기도 했다. 그것을 보는 나는 바람이었다. 컴퓨터 학원에 총을 들고 들어온 테러범을 피해 책상 밑에 숨어 있을 때, 멀티탭에 들어온 주황불을 보며 이건 꿈이라고 중얼거리고 있을 때, 내 어깨를 잡고 총을 쏘는 이가 체일 때도 있었다.

  토스트집 앞에서 토스트를 크게 한 입 깨물려고 입을 벌리는 중년 남자의 뒷목을 보게 되거나 편의점에서 아무렇게나 쌓아둔 우유 트레이 위에 대충 앉아서 바지단을 만지는 이의 양말 목부분을 보게 될 때도 있다. 꿈이 아닌 공간에서. 다음 순간 개나리 만개한 돌담길이 떠오르고, 그 길의 끝에 있던 511호 강의실이 떠오르고, 다음은 다시 들판과 색소폰. 그런 식이다.

  이별 장면 없이 끝난 관계로부터 오래 영향받고 있는 사람에게 새로운 관계와 그 관계의 끝은 도돌이표처럼 돈다. 어쩌면 그 때 제대로 헤어지지 못해서 지금의 모양이 이런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혹은 저주처럼 앞으로의 모든 관계의 끝이 이런 식으로 예정되어 있는 게 아닐까 겁을 먹기도 한다. 눈을 감고 가상의 파도 억만 개를 창조해내 보아도 나는 이전 관계가 끝난 바로 그 자리에서 다른 새 관계를 시작해야 한다. 머쓱해져서, 폐허가 된 자리를 치우고 자리를 옮기는 것은 나다.

  긴장감이 있는 문장과 캐릭터의 힘으로 주는 몰입력, 이런 것들에 대해서 감탄하고 고민했던 때가 언제였나 싶을 만큼 멋있는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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