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이라는 도시
1.
회사 관둘 수 있어?
모든 것은 남편의 짧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럼~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관둘 수 있지! 별생각 없이 대답했는데, 며칠 뒤 남편은 덜컥 주재원 발령을 받아 버렸다. 그렇게 내 나이 35살. 어리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나이에 갑자기 백수가 되어 ‘베이징’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살게 됐다. ‘졸업-취업-결혼-육아-워킹맘’이라는 안정적인 굴레 속에서 무난하고 평범하게 생활해 오던 내게는 너무나 크고 무서운 변화의 소용돌이였다. 그것도 한자 ‘7(七)’과 ‘9(九)’가 헷갈려서 스스로를 ‘한자 바보’라고 칭해오던 나에게 베이징은 너무나 낯선 언어의 도시가 아닌가. 물건 하나 제대로 살 수 없는 내가 타국에서 아이와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꿈같았다.
물론 설렘도 있었다. 예전부터 다른 나라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이 있었던 데다 포털 홍보실에서 오래 근무한 나에게 중국은 알아가 보고 싶은 ‘IT 선진국’이었다. 중국 사회와 IT 서비스의 급속한 변화를 알려 주는 여러 기사들을 읽으며 "이렇다 할 자유도 없어 보이는 공산 국가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이거 다 가짜 뉴스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호기심과 의심을 동시에 가진 나에게 대륙의 수도인 베이징에서 중국어와 문화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무엇과도 쉽게 사랑에 빠지는 ‘쉽사빠’인 나지만 처음부터 베이징이라는 도시가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자욱한 미세먼지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 위생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거리의 화장실들은 생각보다 참혹했다.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도 조금씩 쌓여 갔다.
2.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들을 여행자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우리는 여행지에서는 조금씩은 더 너그러워지니까. 여행지에서는 하나라도 더 보려고 한껏 깨어 있는 영혼과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걷고 있으니까. 나는 도시와 일상을 탐험하는 '도시 산책자'이자 ‘생활 여행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날 이후 나는 별다른 계획 없이 무작정 이 도시를 매일 걸었다. 걷는 행위가 한 도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그간의 믿음을 발판 삼아 생활 여행자 역시 응당 그래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도시가 하는 이야기들을 제대로 알아듣기에는 그때의 나는 너무 소심하고, 중국어 또한 형편없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有志者事竟成>.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는 법. 길을 걷다가 궁금증이 생기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이두를 찾아보고, 파파고 번역기를 돌리면서 내 멋대로 이 도시를 이해해 갔다.
물론 늘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낯선 도시를 걸으며 정말 많이 헤매고, 실망하고, 좌절했다. 힘들게 찾아간 곳에서 아무 설명도, 사과도 없는 ‘今日休息(오늘 쉽니다)’ 공격도 많이 받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부족한 중국어로 항의할 만한 배짱이 없어서 성격은 날이 갈수록 온순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매일 새로운 공격을 받아도 굴하지 않고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설레는 마음으로 ‘바이두 지도’와 ‘따종 디앤핑’을 열고 '내일의 산책지'를 물색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피곤한 일정, 돈에도 경력에도 도움이 안 되는 무의미해 보이는 낯선 도시를 걷는 일에 이렇게 열심이라고? 스스로가 이상할 지경이었지만 그렇게 내 베이징 지도의 ‘즐겨찾기’는 계속 늘어났다.
3.
매일 걸어보니 도시 산책자에게 제일 필요한 덕목은 돈도 지식도 아닌 '체력'과 '용기'였다. 초반에는 새로운 공간을 만나도 '매니저가 말 걸었는데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음식이 맛없으면 어떡하지' 등등 꼬리를 무는 무수한 걱정들 때문에 많이 망설였다. 그런 '의기소침 세포'가 나를 찾아올 때마다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고 여행자일 뿐이잖아’로 무장한 '자기 합리화 세포'를 출동시켜 스스로를 끝없이 다독였다. 유한한 시간 속의 여행자는 더 과감해져야 한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한 발짝 내디뎌 낯선 문들을 열었다.
결과는 늘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어떤 ‘시도’를 통해 나는 늘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다. 고민 말고 일단 실행. 아니다 싶으면 도로 후진. 발랄한 도시 산책자의 아주 올바른 마음가짐이었다.
4.
그렇게 걷다 보니 바쁜 일상에 매몰되어 무엇이 중요한지 제대로 고민할 겨를도 없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내게 도시의 길들이 작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 보니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길 위에서 이 도시만 만났던 것은 아니었다. '진짜 나'를 만났다.
다 안다고 착각했지만 섣부른 오해와 단정 속에 미처 몰랐던 나.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정작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불친절했던 나. 내 마음보다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 그게 정답이라고만 믿고 살아온 나. 불완전하고 치유되지 못했던 무수한 과거 속의 나까지.
어쩌면 나는 세상에서 내게 가장 무심하고, 잔인했던 것은 아닐까? 나를 제일 몰랐던 것은 아닐까? 나는 나에게 사과하며, 조금씩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도시와 마음 사이, 이해와 화해의 중간에서 매일 헤맸다. 계획대로 완벽하게 되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던 엉망진창 도시 산책자였지만 꽤 행복했던 이유는 어제보다 오늘 나와 더 친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