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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마법, 베이하이(北海) 공원

걷다 보면 달라진다.

by 심루이

만사가 귀찮아져 걷기조차 싫어질 때마다 언젠가 책에서 봤던 이 글귀를 떠올린다. ‘밖으로 나가서 걸으라, 그 편이 마음속에서 서성거리는 것보다 당신에게 훨씬 좋을 것이다’. 걷는다고 뭐가 달라져? 삐딱해져 있는 나에게 이 문장만큼 좋은 약은 없다. 걷다 보면 알게 된다. 무언가가 확실히 달라진다.

8dec1d918d811732-photo.JPG @北海公园




‘베이하이(北海_북해)’ 공원을 처음 알게 된 건 어학당에서 배우던 교과서에서였다. 본문 중에 ‘베이징 사람들은 여름 비가 내린 뒤 베이하이의 깨끗한 하늘 아래서 배를 타고, 겨울에는 침대 아래에 잠자고 있던 스케이트를 꺼내 공원의 강이 얼기를 기다린다’는 구절이 있었다. 북해 공원은 ‘베이징런(北京人)’들의 모든 계절을 함께 하는 대표 공원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당시 '베이징 공원 뽀개기'를 하고 있던 나는 당장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 주말 일몰 시간 근처의 북해 공원을 걸었는데, 과연 잊을 수 없는 풍경들을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공원 정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펼쳐지는 백탑과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에 압도되었다. 그 풍경아래로 베이징을 여행하고 있는 많은 중국인들이 행복하게 사진을 찍었다. 걷다 보니 하늘빛과 풍경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그때의 풍경은 한 장의 사진처럼 내 마음에 오래 남아 북해 공원은 단번에 내가 베이징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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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공원은 언제나 다른 매력을 보여주겠지만, 일몰 시간에 걷는 걸 추천한다. 천천히 걷다 보면 시시각각 변하는 북해공원의 풍경에 빠질 수밖에.





자금성 북쪽에 위치한 베이하이 공원은 중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황실 정원으로 1,0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화원’이나 ‘원명원’처럼 서양 세력의 침략을 받지도 않아 황실 정원의 원형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북해 공원 중간에 위치한 영안사의 백탑은 이 공원의 랜드마크로 1651년 청 순치제 8년에 건설됐다. 탑 전면부에는 산스크리트어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개방 시간 6:00 -22:00 (겨울에는 20시까지)

-입장료 10원 (경화도/단성 등 추가 요금 있음)


베이하이 공원의 대표 명소로 구룡벽(九龙壁)과 정심재(静心斋)가 있다. 베이하이의 구룡벽은 중국에 현존하는 3대 구룡벽 중 하나로 화려하게 채색된 아홉 마리 용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건륭제가 지은 황태자의 공부방인 정심재. 황태자보다 건륭제가 이곳을 더 좋아해 이곳을 자주 찾아 책을 읽고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정심재는 물에 자기 스스로를 비추어보라는 뜻이다.


2019-06-29-19-02-13.jpg 베이하이의 상징과도 같은 백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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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3대 구룡벽 중 하나인 베이하이의 구룡벽, 그리고 정심재







중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饭后百步走, 活到九十九’. 식후에 백 보를 걸으면, 아흔 아홉까지 살 수 있다는 의미다. 굳이 아흔 아홉까지 살고 싶지는 않지만 걷기가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중국 사람들이 걷는 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아침 7시의 베이징 공원에 들려보면 다른 이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걷고, 뛰고, 춤추고, 노래하는 자유로운 베이징런들을 항상 목격할 수 있다.


그러니 베이징이라는 도시에서 걷는 일은 드물게 행복한 일이다. 새로운 공간과 유한한 시간이 내게 주는 마음은 즐거움과 절실함이다.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감정이 ‘요우티아오와 또우장’, ‘훠궈와 왕라오지’처럼 찰떡궁합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나를 매 순간 깨어있게 한다.

* 왕라오지(王老吉) : 훠궈와 잘 어울리는 중국 대표 냉차 음료


그래서 이곳에서 나는 늘 걷고 있었다. 걸을 때 엄청난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과 걸으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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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스레 무언가가 그립고, 마음이 복잡해질 때 외국인 관광객은 많지 않지만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평일의 베이하이 공원을 걷는다. 탁 트인 호수를 바라보며 걸다 보면 어느샌가 잡념이 사라지며 불순물이 체에 걸러지듯 중요한 것들만 머릿속에 남는다. 마음속의 사사로운 생각들이 결국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생기는 것이 걷기의 마법이다.

019314a54220ffdb-photo.JPG 그래서 오늘도 걷는다.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행복들


1. 산책하며 저녁 노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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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국 3대 구룡탑 앞에서 사진 찰칵, 백탑사 올라가 보기

IMG_20211011_100109.jpg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중국 아주머니들

3. 오리 배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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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_도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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