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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첫 번째 덕목 용기, 베이러우구샹(北锣鼓巷)

오늘의 용기는 오늘 다 써버리는 걸로

by 심루이

베이징에 와서 처음 간 관광지가 아마도 ‘난뤄구샹(南锣鼓巷)’이었을 것이다.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로 우리 나라 인사동 골목과도 유사한 곳이었는데 너무 관광지스러운 느낌이라 큰 감흥은 없었다. 이후 노동절 연휴, 입구에서 바라보는 난뤄구샹은 새까맸다. 유심히 봤더니 그것은 골목을 꽉 채우고 있는 있는 사람들의 머리였다. 까치발을 하고 상황을 보니 사람들은 걷는 게 아니라 떠밀려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래도 평일에 종종 걷던 난뤄구샹은 괜찮았다. 워낙 관광객이 많아서 월요일 오전에 걸어도 한적하지는 않다는 것이 흠이었지만.


베이징에서 최고 유명한 골목인 ‘난뤄구샹’의 친남매 같은 존재지만, 사람들에게 은근히 알려지지 않은 골목이 맞은편 ‘베이러우구샹(北锣鼓巷)’이다. 실제로 처음에 걸어보면 먹을 것, 볼 것이 넘치는 맞은 편 난뤄구샹에 비해 밋밋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행자의 마음으로 하나하나 살펴보면 매력적인 공간투성인 北锣鼓巷. 살랑 살랑 바람 부는 날씨에 걷기에 알맞은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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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8-13-31-03.jpg 꽃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베이러우구샹


넘치는 관광객들로 정신 없는 난뤄구샹에 비해 베이러우구샹은 조용하다. 조용한 공간의 단점은 진입을 위한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낯선 장소와 낯선 언어라는 두 개의 현실이 겹쳐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에 휩싸인 골목 탐험가는 낯선 문을 노려본다. 열까? 말까? 열까? 말까? 손님이 아무도 없으면, 매니저가 말을 걸었는데 못 알아들을 것 같아, 뻘쭘할 게 분명하니 열지 말자. 그래도 못들어가면 얼마나 아쉬워, 열자. 악마와 천사의 다툼처럼 소심한 나와 용기 내고 싶은 내가 싸운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 그저 조금 오래 머무는 여행자이자 저들에게는 이방인일 뿐인데, 뭐가 그리 두렵지? 여행을 떠날 때 유한한 시간 안에서 나는 꽤 용감했었던 것 같은데, 그 마음으로 이 도시를 탐험할 순 없을까? 그렇게 나는 조금씩 뻔뻔해졌다. ‘이 가게에 들어가 보는 건 내 인생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면서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보고, 찍고, 먹었다.


한 발짝 더 들어가니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평생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지나쳤을 발견들이 채워졌다. 삭막한 도시가 아름다운 낭만을 조금씩 보여주고, 어색한 웃음이 친절로 이어지고, 색다른 미식 도전은 잊을 수 없는 맛이 되어 남기도 했다.


그러니 도시 산책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시간도, 돈도, 체력도 아닌 다름 아닌 ‘용기’가 아닐까 싶다.


과감하게 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평생 몰랐을 공간들


-중국 최초 '낭비 없는 생활 방식'을 선도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지속 가능한 세상에 대한 끊임없이 고민하는 <The Bulk House>.

余元Carrie(Zero Waste Advocate)가 만들었으며 환경 친화적인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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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가보고 싶은 서점이었던 <一定书屋 The Study>.

너무 조용해서 매번 지나치다 문을 열어보았다. 서점이라기 보다는 차관이라고 봐야 하나? 책은 많지 않았고, 생각보다 정말 작은 공간이었다. 벽에 걸린 다양한 사진들과 오묘한 인테리어는 타임 슬립을 한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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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나의 용기의 정점은 사합원 수제 맥주집 <El NIDO>에서 폭발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은 공간이었는데 오후 2시에 연다는 단점이 있었다. 애데렐라에게는 애매한 시간. 게다가 1시반쯤 도착해서 후통에 걸터앉아 맥줏집 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도저히 문을 열 것 같은 비쥬얼이 아니었다. 기다렸는데 문을 열지 않으면 어쩌지? 오늘도 '今日休息(오늘 쉽니다)' 공격을 받는 것인가?

* 今日休息(오늘 쉽니다)' 공격: 어렵게 찾아간 장소에서 아무 이유없이 오늘 쉰다는 통보를 받는 일, 도시 산책자에게 참으로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베이징에서 무수히 당했음.


따종디앤핑을 열고 사장님 전화번호를 찾았다. 용감하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소리가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며 ‘안 받으시려나’라는 찰나 잠에서 덜 깬듯한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혹시 2시에 오픈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유레카! 조금 더 기다리니 머리에 까치집을 하고 숙취에 시달리는 듯 보이는 사장님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오셨다. 그래서 우리는 사합원 정원에 앉아서 시원한 맥주 2잔을 마시고 무사히 애를 데리러 갈 수 있었다.

* 따종디앤핑(大众点评): 공원, 미술관, 쇼핑몰, 맛집 등 중국 지역의 모든 플레이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APP. 지도와 바로 연계되어 있어 간편하게 찾을 수 있고, 할인권도 많아서 절약도 할 수 있는 산책자에게 제일 필수적인 중국 인터넷 서비스.


2021-05-18-14-02-59.jpg 우리가 들어갔을 땐 이런 풍경이었다. 사장님과 함께 열심히 의자와 탁자를 정리하고
2021-05-18-14-59-39.jpg 꿀맛과도 같은 맥주를 마셨다!!!




오래 전, 새로운 도전을 하는 내게 친구가 ‘너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적힌 카드를 줬을 때, 나는 내 안에 용기 따위는 하나도 없다고 웃었다. 하지만 이내 그 말이 지금의 내게 제일 필요한 말임을 깨달았다. 이후 단단한 벽에 부딪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한 문장을 얼마나 되내었는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도시 산책자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용기’처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살아가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 누군가를 사랑할 용기, 다시 시작할 용기, 어떤 것을 잊을 용기, 또는 잊힐 용기.


매일 아침 오늘 하루만큼의 용기를 찾아서 내 안에 담고, 하루를 버틴다. 오늘 깨지고 무너져도 괜찮다고, 내일은 내일의 용기를 또 찾아서 담으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끝없이 이야기하면서. 싱겁고 우습기만 한 그 마음에 얼마나 든든한지. 두려움이나 고민보다 더 무서운 건 한 발짝 더 다가가보지 않았다는 후회가 아닐까. 그러니 오늘의 용기는 오늘 다 써버리는 걸로.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행복들


1. The Bulk House의 다양한 상품들 구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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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베이러우구샹의 시작점이기도 한 Voyagee Coffee에서 라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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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l NIDO에서 낮맥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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