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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시간, 팡지아 후통(方家胡同)

수제 맥주와 전병의 콜라보

by 심루이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듯, 타국에서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유한한 시간'이라는 전제 조건이 주는 동력은 생각보다 크다.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더 부지런히 걷는다. '후회'는 언제 해도 늦는 것이기에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만약 훗날 베이징에서의 생활에 약간의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면 딱 하나 이유는 아마 이것일 것 같다.


더 많이 걷지 않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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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家胡同




方家胡同. 팡지아 후통.


용허궁 맞은편의 이 후통을 걷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수제 맥주와 중국 전통 음식인 전병(煎饼) 콜라보를 선보이는 '北平机器'에 가서 유명하다는 '딸기 맥주'를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다름 아닌 '오후 4시'라는 오픈 시간 때문에. 애데렐라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시간. 바꿔 말하자면, 아이와 함께 가면 된다는 소리다. 문제의 해결은 가끔 매우 간단한 곳에서 시작된다.


'北平机器'가 있는 팡지아 후통 46호는 수제 맥줏집, 사진 스튜디오 등이 함께 있는데 문화 단지처럼 조성되어 있다. 예전에는 기계 부품을 가공하는 공작 기계 공장 터였다고 한다. 아직 곳곳에 공장의 흔적과 질감이 한가득 남아 있어 더욱 특별하다.


'北平机器'는 ‘李威’라는 사람이 창업한 베이징 수제 맥주 브루어리다. ‘李威’는 언론 분야를 전공한 뒤 'CCTV'에서 16년간 사회자로 일했다. 유럽 여행 중 ‘不一样的(같지 않은)’ 맥주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되고, 2012년부터 ‘Homebrewing(홈 브루잉)’의 세계로 본격 뛰어든다. 2014년 베이징 홈브루잉 협회에 회장직을 맡으며 중국 최대의 수제 맥주 연대를 구축하고 2016년 6월, 드디어 팡지아 후통에 ‘北平机器’ 첫 공간을 열었다.


北平机器은 동인당의 훈제 자두와 설탕을 함께 푹 끓여 만든 ‘Smoked Plum Ale’ 등을 선보이고 있는데, 화자오가 들어간 허니마 맥주를 만드는 '大约대약비어'나, 중국인들이 여름에 즐겨먹는 음료인 쑤안메이탕으로 맥주를 만드는 '京A(징에이)’만 봐도 중국의 젊은 창업가들이 중국 문화와의 접목을 늘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년에는 아주 오래 염원해 오던 활동인 ‘전병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이름하여 北平机器煎饼节/the Peiping Machine Jianbing Festival. 5성급 호텔 셰프들까지 참가했던 이 행사에서 이들은 베이징 인기 전병 지도(2020 Beijing Jianbing Map)를 배포했다. 이틀간 5000명 이상이 참가했으며 사람이 몰릴 때에는 전병을 먹기 위해 2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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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威...느끼하면서도 짓궂은 인상!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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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표 길거리 음식인 전병과 맥주의 페어링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이곳의 시그니처인 소고기 전병과 딸기 맥주를 함께~




원나라 때 만들어졌다는 이 팡지아 후통은 역사가 깊다. 청나라 '火器营马队'가 이곳에 있었고, 13, 15호에는 건륭황제의 셋째 아들이 살았다고 한다. '方家胡同小学'는 중국의 유명 작가 라오서가 교장으로 재임했던 학교다. 라오서는 이곳에서 2년을 살았는데 그의 장편 소설에도 이 후통이 종종 등장했다.


대부분의 생을 베이징에서 보낸 라오서도 '내 마음에는 베이핑(베이징의 옛 이름)이 있지만 나는 그곳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나지막이 고백했다고 한다.


베이징이라는 도시는 정말 그런 도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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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_도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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