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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하고, 무탈한 하루, 마췐잉(马泉营)

오늘 하루도 무사히

by 심루이
WeChat Image_20210610131221.jpg 안녕, 마췐잉- 우리는 낮맥 중, 국제 학교 아이들은 요트 수업 중


조금은 ‘웃픈’ 이야기이지만 언어가 자유롭지 않은 타국에서 살다 보면 성격이 무던해진다. 아니, 무던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라면 충분히 항의를 할 만한 상황, 예를 들어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잘못 나왔다거나, 타오바오에서 구입한 물건 품질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카페에서 누군가 지나치게 떠든다거나… 등등 참기 힘든 난관에 마주쳐도 그냥 넘어갈 때가 많다.


잘못 나온 음식에는 ‘그냥 먹자, 우리가 시킨 것보다 더 맛있어 보이네’라고 서로를 독려하며, 타오바오에서 산 몇 십 위안짜리 상품들은 사이즈가 맞는 사람에게 편하게 넘기거나, 그냥 바로 재활용품 통에 넣는다. 환불하면 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택배 아저씨를 집으로 불러야 하고, 타이밍이 안 맞으면 전화로 설명도 해야 하고, 환불이 늦어지면 쇼핑몰 사장님과도 이야기를 다시 나눠야 하고... 아아악! 너무 귀찮고, 복잡해서 하루 종일 그런 일에 매달리다 보면 마음도 심란해진다. 옆 테이블 중국인들의 수다가 지나치게 시끄러워도 중국어가 안 들리면 그저 소음일 뿐, 내 집중력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귀가 뻥 뚫려서 상관이 있다 한 들 조용히 해달라고 용기 내서 말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본의 아니게 무던한 삶을 살게 되는데, 그것도 조금은 좋은 점이 있다. 잘못 나온 메뉴가 엄청 맛있다거나, 사사로운 것에 마음을 쓰지 말자고 노선을 정해 놓으니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거나, 불평불만이 줄어든 스스로가 큰 그릇이 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호수를 끼고 있어 더 아름다운 마췐잉 야외 테라스에서도 그랬다. 분명히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나왔는데 우리는 모두 “와 이게 더 맛있어 보인다”며 맛있게 먹었다. 한참 맛있게 먹는데 그릇 밑 바닥에서 조리 과정에서 들어갔음이 분명한 머리카락이 나왔고, 또 우리는 매니저를 불러 "여기에 이런 게 들어갔네요"라며 친절하게 정보를 전달하고 음식을 돌려보냈다. 다시 먹기에는 너무 배가 불러서 우리는 매니저가 죄송하다며 건네준 아이스크림을 냠냠 맛있게 먹었다. 한국 같았으면 얼굴이 붉어졌을 것 같기도 한데, 우리는 어쩐 일인지 평온한 페이스를 모두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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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의 대신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냠냠 먹었다.




이제 중국어도 웬만큼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가능하면 어떤 트러블에도 엮이고 싶지 않은 소심한 마음은 여전하다. 키즈 카페에서 중국인과 시비가 붙어 결국 경찰서까지 갔다더라 등의 에피소드를 건네 들으며 귀국 전까지 경찰서에 갈 일만 없으면 타지 생활 반은 성공이라는 생각도 든다. 무법 천지와도 같은 교통 환경에서 아무 사고 없이 안전 운전을 하는 춘에게 감사하며, 퇴근하는 춘이 누르는 삐삐빅 문소리에 가끔씩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꼭 타지에 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무던해지고 소박해지는 일인 것 같다.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던 열정적인 나를 통과해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좀 손해 보면서 사는 것도 좋지'의 나를 만났다. 잃는 게 있으면 다른 어디에선가 또 얻는 게 있을 거라고, '자기합리화 세포'는 내게 늘 이야기한다.


그러니 비현실적일 만큼 크고 밝게 뜬 보름달을 바라보며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그저 매일매일 무탈하게 해주세요’라는 평범한 기도를 하고 있는 마흔의 나는 아주 자연스럽다.


무탈(無頉). 병이나 사고가 없다.


그저 ‘무탈한 하루’가 소원이라는 회사 선배의 말에 ‘꿈이 참 소박하시네요’라고 생각했던 스물다섯이 내게도 있었다. 그때 ‘무탈’이라는 단어는 나의 빛나는 청춘을 형용하기에 너무 작고 시시해서 나의 사전에는 없는 단어였다. 판타스틱하고, 어메이징하고, 짜릿한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했다. 이제는 안다. 무탈한 하루를 선물 받는 축복. 그 축복은 아무에게나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 곳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들


1. 호수 뷰에 빛나는 야외 테라스석을 구비한 <Hulu by TRB>에서 보라보라한 웰컴드링크 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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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식 요리 전문점 <Hatsune隐泉>에서 햇살 받으며 맛있는 롤과 맥주 한 잔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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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e Orchard (果园西餐厅)>에서 예전의 베이징 느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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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레드브릭 뮤지엄(红砖美术馆)>에서 가을 느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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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_도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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