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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16. 2021

제 택배는 내일모레 도착했습니다. 네?

이십팔의 비극

-회사 관둘 수 있어?


모든 것은 남편의 짧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럼,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관둘 수 있지.


별생각 없이 대답했는데, 며칠 뒤 남편은 덜컥 주재원 발령을 받아 버렸다. 그렇게 내 나이 서른다섯, 어리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나이에 갑자기 백수가 되어 ‘베이징’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살게 됐다. ‘졸업-취업-결혼-육아-워킹맘’이라는 안정적인 굴레 속에서 무난하고 평범하게 생활해 오던 내게는 너무나 크고 무서운 변화의 소용돌이였다. 그것도 스스로를 ‘한자 바보’라고 칭해오던 나에게 베이징은 너무나 낯선 언어의 도시가 아닌가. 중국어로 물건 하나 제대로 살 수 없는 내가 타국에서 아이와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자욱한 미세먼지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 위생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거리의 화장실은 생각보다 참혹했다. 무엇과도 쉽게 사랑에 빠지는 ‘쉽사빠’인 나였지만 베이징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이곳에서 매일 시트콤을 찍고 있는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짧은 언어 탓에 때로 건방지고, 때로 공손하고, 대부분 웃기거나 이상했다. 그렇게 매일 저녁 이불 킥을 하면서 중국어와 중국 문화에 조금씩 물들어갔다. 중국어 기초를 닦은 후에는 도시와 일상을 탐험하는 '도시 산책자'이자 ‘생활 여행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유한한 시간 속에 있는 여행지에서 우리는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한껏 영혼을 깨운 채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걷지 않던가. 아이를 학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바로 시내로 나와 여행자의 마음으로 매일 베이징을 걸었다. 걷는 행위가 공간을 이해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그간의 믿음을 발판 삼아 생활 여행자 역시 응당 그래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별다른 정보도 없이 매일 4-5시간씩 걷다가 집으로 돌아와 그날 봤던 공간의 역사와 먹었던 음식들을 바이두로 다시 찾아보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니 비로소 이 도시를 조금 알게 됐고, 알고 보니 사랑하게 됐다. 그 즈음, ‘프로기록러’가 되기로 결심하고, 다양한 주제를 잡아 기록하기 시작했다. 베이징 뒷골목 산책기와 중국 음식과 브랜드, 서점 등을 주제로 ‘나 혼자, 내 맘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중국 생활 초반에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으로 살면서 저지른 낯부끄러운 일들, 중국 문화를 처음 알아가며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을 <아주 공손하거나 건방진 이방인>에 담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었거나, 이방인이거나, 이방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기록들은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베이징에 사는 아줌마 일상을 누가 궁금해하겠어’라는 무수한 내적 의문을 무찌르고, 정말이지 즐겁게 썼다. 부끄러운 기록들이 재미있게 읽히기를 바란다. 




외국어를 낭만이라고 여기는 일은 그 외국이 미지의 세계일 때만 가능하다. 그 언어가 내가 반드시 구사해야 하는 유일한 언어가 되고, 유일한 수단이 될 때 낭만은 사라진다. 


곽미성, <다른 삶>, 71p


베이징에 오기 전 나는 숫자 7(七)과 9(九)가 헷갈리는 한자 바보였다. 하지만 문과생이니 분명 언어감각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얼렁뚱땅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간 이후 영어는 쭉 내리막이었고, 업무 메일을 영어로 쓰기 위해 1시간 넘게 낑낑대고 좌절하기를 반복했으면서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미국보다는 중국이 맞을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야심 차게 중국어를 시작했다. 


그때 나는 이미 관능적인 붉은색 치파오를 입고, 한 손에는 중국 대문호인 ‘루쉰’의 소설을 들고, 후통의 어느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항저우 롱징(龙井)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 제일 중요한 것이 빠졌다. 탕웨이처럼 우아하게 중국어를 구사하고 있겠지. 나는 그런 상상만으로 한껏 들떴다. 


현지 어학당에서 중국어를 시작한 지 3개월. 다시 학생이 되어 새로운 언어를 배워 보니 재미있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는데 들리지가 않았다. 재미있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는데 말하기도 안됐다. “얼마예요?”, “여기서 내려도 되나요?”, “지금 무슨 말을 하신 거예요?”등 간단한 이야기를 할 때도 어버버버 더듬대고, 간신히 말을 떼도 상대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재앙의 나날들이 이어진 것이다. 청력에 문제가 있는 건가 싶어서 열심히 귀지를 파보기도 했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새로운 언어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방인 선배들의 말을 수긍하면서도 얌체처럼 내 시간은 남들보다 조금 짧기를 기도했다. 


다들 현지에서 언어를 배우니 정말 좋은 기회라고 부러워했지만 말 한마디 떼기 어려운 외국인에게 그것은 큰 메리트가 아니었다. 길을 걷거나 식당에 가면 누가 나한테 말을 걸까 봐 겁이 났다. 중국어를 제대로 말하고, 들을 수 있을 때까지 깊은 산에 들어가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수련을 하고 싶었다. 나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를 꼭 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경비실에 택배를 찾으러 갈 때가 그랬다. 내 생명줄과도 같은 ‘파파고’를 열심히 돌려서 ‘너의 똥시(东西_물건)를 우예(物业_관리실)에 맡겼다’는 택배 직원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잔뜩 긴장한 채 관리실 문을 열었다. 얼굴에 한가득 친절함을 묻히고 인사하는 직원에게 열 번도 넘게 연습한 문장을 이야기할 차례다. 


-택배 직원에게 문자를 받았는데, 제 물건을 여기에 맡겼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찾으러 왔는데 저희 집 주소는…


우물우물 얘기하다 보니 성조는 다 틀린 것 같고,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나의 횡설수설 문장을 듣던 직원 얼굴에 친절함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음…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짤랑’하고 사무실 문이 열린다. 우리 단지에 거주하는 어느 중국 남성분도 택배를 찾으러 왔다. 그 남성분 입에서 나온 명쾌한 한 단어. 


-콰이디(快递_택배)!


내 앞에서 변비에 걸린 사람처럼 얼굴을 구기고 있던 직원이 갑자기 환한 표정으로 “하올러하올러!”를 외치며 30초 만에 택배를 찾아주었다. 아… 저렇게 간단한 건데 나는 참으로 친절한 문장을 구사하려고 했다. 초보자들이 구사하는 언어의 특징은 지나치게 길고, 자세하고, 구질구질하다는 것이다. 나도 그 중국인을 따라 ‘콰이디’라고 소심하게 얘기해 보았다. 그제야 나의 방문 목적을 파악한 직원이 택배 명단을 살펴보며 언제 도착한 건지 묻는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제'였다. 얼마 전에 배운 시간과 날짜 관련 단어들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다. 그러니까 진짜 ‘그제’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정말 그랬다. 그런데 긴장한 탓인지 갑자기 뇌 속의 단어 리스트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내 입에서 불현듯 튀어나온 단어는 모레라는 의미의 ‘허우티앤(后天)’. 직원의 작은 눈이 정말 동그래졌다. 


-허↑우/티앤? 


난 내일모레 도착할 택배를 찾고 있는 ‘시간을 달리는 바보’가 되어 한참을 서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말하기에 아주 눈곱만큼의 자신감이 붙어 여기 저기 ‘니하오(你好)’를 외치고 다니던 어느 오후. 큰 생수통을 들고 오시던 어르신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한국인의 친절함을 뽐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몇 층까지 가세요?”라고 공손하게 물었다. (가끔 내가 누군가에게 ‘대화를 나눈 첫 한국인’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지나치게 공손해진다) 어르신은 아주 인자한 표정으로 고맙다며 쏼라쏼라 대답을 하셨다. 그런데 숫자가 오른쪽 귀로 들어와 바로 왼쪽 귀로 빠져나갔다. 뇌까지 제발 가달라고! 예상보다 길고 굴러가는 생소한 느낌의 이 단어는 도대체 뭐람! (베이징 사람들은 모든 단어의 끝에 ‘얼’을 붙이는 버릇이 있다. ‘얼화’라고 부르는 일종의 북방계 사투리인데 이것 때문에 더 안 들린다.) 당황한 나머지 "션머?(什么_뭐?)"라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친절하고자 했던 외국인 1은 1초 만에 아주 건방지고 버르장머리가 없는 외국인 1로 변신했다. 매우 당황하신 듯한 어르신이 생수통을 땅에 놓고 직접 버튼으로 손을 가져가셨다.


엘리베이터가 우리 집이 있는 10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빨갛게 달아 오른 볼을 쓰다듬으며 어르신의 발음 그대로 ‘얼스빠알’을 세 번 외쳐보았다. 얼스빠, 얼쓰빠, 얼쓰빠. 아, 시X, 이십팔!! 숫자 이십까지 완벽하게 연마했는데 어르신은 왜 그렇게 높은 곳에 사시는 거야. ‘우리 아파트가 참 높구나’라는 사실과 이따위 실력으로 함부로 오지랖 부리지 말라는 교훈을 깨닫게 된 오후였다. 


아, 그런데 한자 7과 9는 지금도 가끔 헷갈리는데, 중국어가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https://brunch.co.kr/brunchbook/thebeijinger2


내 콰이디는 대체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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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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