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고군분투하는 세계적인 브랜드의 이름들
중국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는 명쾌한 것 같았다. 중국에 오는 사람이라면 응당 중국어를 알아야 된다고 믿는 태도 혹은 중국어 모르는 사람은 패스(!) 한다는 의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애칭의 느낌으로 ‘사과폰’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매체에서는 당연히 ‘아이폰’이라고 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공식으로 사과폰이라고 쓴다. 아이폰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그럴 만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든다. 자국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세상 천지에 그렇게 많은데 중국어 외의 다른 언어를 굳이 왜 해야겠다고 생각하겠는가?
조지영, <아무튼, 외국어>
아래 문장을 해석해 보시오.
-나는 ‘따종’이라는 차를 타고 ‘씨얼뚠’ 호텔에 가서 하룻 밤을 자고, ‘싱바커’에서 ‘메이스’를 마시고 ‘컨더지’로갔다.
이 외계어는 무엇일까요? 바로 중국어입니다. 해석해 보면 ‘나는 ‘폭스바겐’을 타고, ‘힐튼’ 호텔에 가서 하룻 밤을 자고,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KFC’로 갔다’가 되시겠다. 아니, 이게 ‘머선 일이고’.
베이징에 처음 와서 가장 이질적이었던 것은 세계적인 브랜드의 이상한 이름이었다. 영어가 썩 잘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브랜드를 자기들 식대로 마구 바꿔 놓았을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튼, 외국어>의 조지영 작가가 표현했듯이 ‘‘호텔’이라는 말, ‘에어포트’라는 어휘, ‘아메리카노’라는 단어를 못 알아듣는 세계에 처음, 당도’한 것이다. 변환의 명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혼란스러움은 배가됐다. 처음 접한 혼란은 스타벅스와 맥도날드였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노래하는 나에게 남편은 자못 진지하게 말했다.
-근데 여기는 스타벅스가 스타벅스가 아니야. 아메리카노도 아메리카노가 아니야.
-응? 그럼 뭔데?!! 장난치지 마.
스타벅스는 ‘씽바커(星巴克)’였다. 발음도 낯설어서 여러 번 반복해 보았다. 씽바커씽바커씽바커. ‘스타’라서 별이라는 뜻을 가진 ‘星’에다가 ‘벅스’라서 비슷한 발음의 ‘巴克(bake, 바커)’를 붙여두었다. (하지만 정작 스타벅스는 별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허먼 멜빌의 소설을 좋아한 스타벅스 창업주가 소설 속 일등 항해사인 ‘스타벅’에 복수형 S를 붙인 것이다.) 아이와 치킨 너겟을 먹기 위해 찾아 본 맥도날드는 ‘마이땅라오(麦当劳)’였다.
중요한 건 중국어와 영어 둘 다 통하면 좋을 텐데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请来一个플레인 와플(플레인 와플 하나 주세요)’이라고 했을 뿐인데 주문을 받던 직원이 뒷걸음질을 쳐서 영어를 하는 직원을 불러올 때의 충격이란. 본인이 일하는 가게의 대표 메뉴 정도는 영어로 알아들어도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을 뒷걸음질 치게 하지 않으려면 ‘原味华夫(위앤웨이화푸)’라고 주문해야 했던 것이다.
조지영 작가가 중국인들에게 종종 느꼈다는 ‘중국에 오는 사람이라면 응당 중국어를 알아야 된다고 믿는 태도 혹은 중국어 모르는 사람은 패스(!) 한다는 의지’ 같은 것을 나도 매번 느끼게 되었다. 그러니 나의 아름다운 아메리카노와 디저트를 위해서 나는 각종 브랜드의 이상한 이름과 친해져야만 했다.
물론 나름의 규칙은 있었다.
우선 비슷한 음을 찾아 이름 붙이는 경우다. 소위 음역이라고 한다. ‘초컬릿’은 ‘巧克力’인데 발음해보면 ‘치아오컬리’다. 빠르게 열 번 발음해보면 ‘초컬릿’과 매우 비슷해진다. ‘KFC’는 ‘켄터키’를 따서 ‘肯德基(컨더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디다스는 ‘阿迪达斯(Ādídásī)’로 브랜드 원명(原名)과 발음이 매우 비슷하다.
의미를 중심으로 이름 붙이는 경우는 의역이다. IT 분야에 이런 경우가 흔한데 우선 ‘애플’은 사과라는 뜻의 ‘핑구어(苹果)’다. 페이스북은 ‘얼굴 책’이라는 뜻으로 ‘脸书, 핫도그는 ‘뜨거운 개’라는 뜻으로 ‘热狗’ 되시겠다. 제일 첫 문장에서 언급한 폭스바겐도 이 경우다. 폭스바겐이 독일어로 대중을 위한 차라는 의미인데 이에 착안해 대중이라는 ‘大众’을 사용했다.
음도 비슷하면서 좋은 의미까지 찾아서 붙이는 경우가 제일 많다. 대표적으로 코카콜라. ‘可口可乐’로 발음이 ‘크어코우크어러’로 빨리해보면 코카콜라와 매우 비슷한데 뜻도 ‘입에도 맞고, 즐겁다’여서 브랜드가 추구하는 이미지와 딱 떨어진다. 훌륭한 브랜드 네이밍 사례로 자주 꼽히는 이유다. 한국 소주 ‘처음처럼’도 비슷하다. ‘初饮初乐’, ‘처음 마시는 첫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의역이지만 ‘추인추러’로 음도 비슷하다. 뚜레주르는 ‘多乐之日(뚜어르주르)’. 뚜레루즈가 프랑스어로 ‘즐거움이 가득한 날들’이라는 의미이니 뜻과 음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특별한 연결고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스프라이트는 ‘슈에삐(雪碧)’인데 두 단어 사이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호텔들은 주로 음역이다. 힐튼은 希尔顿(시얼뚠), 샹그릴라는 香格里拉(샹끄어리라), 소피텔은 索菲特(쑤페이트어) 되시겠다. 택시 기사들이 영어 호텔명을 한 번에 알아들을 확률은 매우 낮으니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호텔의 중국 이름을 메모하고 다니는 것이 좋겠다.
외국인들에게 중국어가 어렵게 다가오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 사랑벌레에 물려 오십일곱에 본격적으로 프랑스어를 배운 윌리엄의 문장을 빌려보면 ‘외국어를 바닷물에 씻어' 새로운 언어로 탄생시킨다. 새로운 중국어를 보며 바닷물에 씻기기 전 모습을 유추하는 건 우리들의 몫인데 지난하고도 어려운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중국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고유 명사가 너무 어려워서 ‘아, 진짜 저한테 왜 이러세요’ 싶은 마음이었다. HSK 시험을 볼 때도 역사 속 인물의 이름이나 지명이 나오면 갑자기 귀가 닫히고 머리가 멍해졌다.
5년의 시간이 지나니 희한한 이름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프랑스어를 순수하게 지켜내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거국적 학술기관 ‘프랑세즈’ 이야기를 읽었을 때처럼 자신들의 언어를 지키려는 중국인들의 굳은 심지가 오히려 조금 부럽기도 하고, 이 고유 명사는 어떻게 중국스럽게 바꾸어 두었을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오늘도 자연스럽게 ‘씽바커’에 들려 ‘이 베이 메이쓰(一杯美式)’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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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