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에 잠시 머물다.
1.
헬싱키를 거쳐서 스페인으로 간다. 15년 전 남미로 떠날 당시 (아마도 제일 쌌던 비행 스케줄을 택했던 터라) 서른 시간을 지나 페루 리마에 당도했을 때 기내식을 한 여섯 번 먹었었나. 좁아터진 이코노미석에서 무한 사육의 굴레에 빠져 있자니 소화가 안될뿐더러 엉덩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기내식을 서서 먹어도 되는지 승무원에게 정중하게 물어볼 뻔했다. 어쨌거나 기내식을 서서 먹지는 못했지만 화장실에 다녀올 때 엉덩이 감각을 조금이라도 복원하고자 일부러 뱅뱅 돌아왔다.
갈수록 이코노미석은 좁아지는 느낌이니(어쩌면 조금씩 불어나는 내 살 때문인지도) 이번 경유는 더 힘들 것이다. 최민석 작가가 <기차와 생맥주>에서 '갈수록 이코노미석의 공간이 줄어들어 십 년후쯤엔 선 채로 안전벨트를 매고 앞 승객 뒷통수만 보고 이동하는 비행기가 생기지 않을까'하고 예언했던데 과연 일리가 있다.
간만의 장기 여행을 준비하며 나는 몇일간 새벽 5시까지 호텔과 투어 예약에 열을 올렸고, 아이는 소매치기 영상을 살펴보며 고뇌에 빠졌고, 춘은 다이소에서 소매치기 방지 용품들을 싹쓸이해왔다. 이쯤되니 인간은 왜 이 피곤하기 짝이없는 여행이라는 것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김영하 소설가의 산문 <여행의 이유> 뒷 면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우리가 여행을 소망하는 순간은
-풀리지 않는 난제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여행을 준비하며 더 많은 난제들을 맞딱뜨렸다)
-소란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고요하고 싶을 때 (우리 삼총사는 21일간 60끼 정도를 함께 해야한다. 고요는 먹는 건가요)
-예기치 못한 마주침과 깨달음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 (이 항목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예기치 못한 깨달음은 준비 과정에서부터 찾아왔다. 컵라면 부피 줄여서 야무지게 싸는 요령 같은 거...쩝)
어쨌거나 여행을 준비하며 나의 피로도는 최고조에 이르렀고 마늘 주사 링거라도 맞아야 할 판이었지만... 더 험난한 여정이 마련되어 있었으니 바로 마흔 넘어 맞이한 첫 장기 비행이었다.
2.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북극으로 빙 둘러 가다보니 기존보다 다섯 시간이 추가된 무려 열 네 시간이 걸려서 헬싱키에 도착했다. (푸틴이 내 인생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줄은 미처 몰랐다. 곡선 항로를 보고 있자니 내가 아는 모든 욕을 그에게 하고 싶었다.) 그래도 운좋게 '눕코노미*'의 행운을 누릴 수 있었고 여행이 주는 엔도르핀이 피곤함을 옅게 했다.
* 눕코노미: 이코노미 좌석 한 줄이 통째로 비어 있어, 마치 비즈니스 좌석처럼 누워갈 수 있다는 뜻
핀란드 헬싱키에서 경유 시간이 길었기에 반나절 시내 투어를 하기로 했다. (언제 또 와보겠냐 심리가 또 다시 발현됐다.) 새벽의 헬싱키는 '내가 바로 북유럽이다'라고 선언하는 듯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고, 우드와 그레이를 적절히 섞어 놓은 반타 공항은 이 정도면 건축물 대상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나 싶게 멋이 넘쳤다. 공항 화장실에서는 꾀꼬리같은 새소리가 났는데 정말 새가 근처에 있는 줄 착각할 정도의 청아한 소리였다. 헬싱키라는 도시도 그 소리처럼 단정하고 청아했다. 거리와 카페에 수트를 멋지게 차려 입은 키 큰 장정들이 많았고, (북유럽 사람들은 눈에 띄게 키가 컸다.) 그 옆으로 영하의 날씨가 무색하게 수영복 차림으로 노천 사우나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곧 얼어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노천탕의 피어오르는 연기와 그들의 행복한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 추운 날 헐벗은 몸으로 차가운 물에 즐겁게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가? (핵심은 '즐겁게'에 있다. 추위에 떨며 몸을 웅크리고 있는 건 그들이 아니라 6겹을 껴입은 우리였다.)
과연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 지수가 높은 사람들'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자격이 있었다. 유엔 산하 자문 기구에 따르면 핀란드인들의 행복지수는 7.821점으로 세상에서 가장 높다. 그것도 무려 5년 연속. 일본인들보다도 낮은 5.9점의 행복지수를 기록한 한국인으로서 어쩐지 크게 패배한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핀란드인들의 담대한 행복의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패배자의 모습으로 연어 스프를 먹으러 갔다. 왜 연어 스프였을까. 이유는 없다. 핀란드에서 단 한끼를 먹어야 한다면 카모메 식당 혹은 연어스프가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카펠리>라는 있어보이는 이름을 가진 멋진 레스토랑이었는데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봐서 핫플레이스인 듯 했다. 제일 좋아보이는 통창 자리에는 현지인처럼 보이는 커플이 있었다. 남자는 커피 잔을 우아하게 들고 창 쪽으로 고개를 30도 정도 돌린 여자의 사진을 오백만장정도 찍고 검수를 받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여자는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남자가 보여주는 사진들을 지적하며 다시 사진을 요청했다. 댄디해 보이는 핀란드 남자는 결국 무릎을 꿇고 연사를 찍어댔다. 그 모습을 본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행복지수를 가지고 있는 핀란드인들의 연애도 우리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남자에게 제일 중요한 능력이 무엇인가하는 어려운 질문의 대답이 앞에 있었다. 본인과 비슷한 처지의 핀란드 남자를 보는 춘의 얼굴이 통쾌해보였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면서 느끼한 연어 스프가 왠지 핀란드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맛있었지만 느끼해서 자주 먹기는 힘들것 같았다. 다이소 샴푸통에 살뜰하게 챙겨 온 초장을 뿌려볼까 고심했지만 벌써부터 우리의 필살기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느끼한 맛을 질색하는 심이는 한 입 먹더니 스프는 입에도 대지 않고 연어 샐러드에 집중했다.
3.
점심을 간단히 먹은 우리는 헬싱키대성당과 우스펜스키 성당을 가는 것으로 이번 여행 성당 투어의 화려한 막을 올리게 된다. 루터교의 교회로 초록 지붕이 인상적인 헬싱키 대성당과 러시아정교회 소속으로 색다른 매력을 내뿜는 우스펜스키 성당은 무척이나 달랐다. 이 성당의 역사를 찾아보며 약 100년간 핀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 그 전에는 스웨덴 왕국의 영토였다는 것, 핀란드의 원래 수도는 투르쿠였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됐다. (핀란드는 1917년에 독립했다) 아무 재미도 없는 성당을 나와 원로원 광장에서 심이는 점프샷을 찍겠다고 했다. 아이를 10초 만에 즐겁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점프샷을 찍는 것이다. 부모가 함께 뛴다면 즐거움은 두 배가 된다. 유럽을 대표하는 건축 거장 알바 알토의 작품인 아카데미넨 서점에 들러 무민 노트를 구입했다. 오랜만에 만난 이국의 서점. 천장의 유리판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따뜻했고 무심히 펼쳐본 책 위의 핀란드어는 생경했다.
우리는 정확히 3주 뒤에 이곳 헬싱키로 돌아오게 된다.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보다 무사히 계획대로 돌아올 수 있겠지? (목표는 오직 하나, 무사귀환!)
*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 공감과 댓글은 지속적인 콘텐츠 업로드에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