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사람들과 여전한 가우디의 도시

12년 만에 다시 만난 바르셀로나

by 심루이

1.

헬싱키에서 인상적인 반나절을 보내고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올랐다. 스페인을 향해 날아오른 헬싱키발 비행기는 여러모로 다이내믹했다. 무엇보다 시끄러웠다. 승무원이 비상 상황 대처법을 선보이는데 신나게 웃고 떠들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수다는 비행 내내 이어졌다. 뒷좌석에서 소리 지르는 아이가 과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고즈넉하게 새소리가 울려 퍼지던 헬싱키 공항을 떠올리며 나는 약간 얼이 나가 있었다.


이륙과 착륙 과정도 거침없었다. 이제 뜨려나? 싶었는데 이미 상공을 질주하고 이제 착륙하려나? 싶었는데 이미 땅에 닿았다고나 할까. 성격 급한 기장님의 비행은 이런 것이로군. 압권은 마지막이었다. 착륙 후 기장이 엄청난 속도로 쏼라쏼라 기내 방송을 하는데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환호를 하며 박수를 치는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한 걸까?


베이징에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 시장에서 큰 싸움이 일어난 이유가 궁금해서 중국어에 대한 열망을 불태웠던 것과 비슷한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호기심에 괴로워하며 인상을 쓰고 있었더니 춘은 '축구의 나라이니 혹시 FC 바르셀로나 승리 결과를 기장이 알려준 것이 아닐까' 하는 매우 일리 있는 분석을 했다. 언젠가 스페인어를 하게 되고 왜 스페인어를 공부했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비행기 기내 방송과 사람들의 시끄러운 환호 소리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 성격 급한 기장님께 이 공을 돌립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생각보다 스페인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이 적고 스페인어를 잘하는 한국인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세비야에서 만난 가이드님은 스페인어 학원을 끊는 순간 스페인어 구사 능력 상위 5% 한국인 안에 드는 거라는 우스개를 했다. 순간 스페인어학원 등록할 뻔.


언어 통계 업체 에스놀로그에 따르면 사용 인구 기준으로 12억 8400만 명이 사용하는 중국어가 1위, 4억 3700만 명이 사용하는 스페인어가 2위다. 무려 21개국에서 스페인어를 첫 번째 언어로 사용한다고 하니 내 다음 언어는 기필코 스페인어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스페인 공항 화장실의 강렬한 레드


2.

비행기의 다이내믹과 시끌벅적함은 첫날밤 숙소에서도 이어졌다. 14시간 비행 + 헬싱키 관광 7시간 + 4시간 추가 비행으로 인해 내 몸은 락스물을 잔뜩 먹은 행주 같았다. 지친 몸을 질질 끌고 간신히 침대에 누웠는데 너무 시끄러웠다. 관광지 한가운데 위치한 숙소라서 그런가? 새벽 1시, (아마도 타파스에 와인을 들이켜고 있을) 그들의 에너지는 불금 9시에 어울릴 만큼 열정적이어서 좌절스러웠다.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1초 만에 잠드는 춘은 이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코를 골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자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 날 아침 8시, 가우디 투어를 신청해두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과도한 열정에 휩싸인 내가 처음 한 일은 바르셀로나 투어 예약이다. 아이가 재미있어 할 만한 요소는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집중되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도시의 콘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투어는 여행 초반에 하는 것이 좋다는 믿음으로 날짜는 도착 바로 다음 날로 했다. 시차 적응의 어려움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P 다운 선택이었다. (내 MBTI는 열정의 ENFP다.) 그러니 환승 포함 스물다섯 시간의 길고 긴 비행을 뒤로하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한지 9시간 만에 투어에 참여해야 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침대에 누워 살인적인 스케줄을 잡은 '과거의 나'를 마음껏 원망하며 계속 이 생각을 했다. 내일 프런트에 가서 이 그지 같은 방부터 바꿔야겠어. 다음 날 아침 퀭한 눈으로 나의 야심찬 계획을 듣던 춘이 창문을 몇 번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무심히 이렇게 말했다.


-문이 제대로 안 닫겨 있었네.


다음 날 밤은 아주 고요했다. 똔따!(tonta)*


*스페인어로 젠장!

바르셀로나 숙소 테라스에서.


3.

12년 전 우리의 가우디 종일 투어는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전세 버스였다. (이게 바로 불행 중 다행이란다, 얘야)


투어는 바트요씨 집과 밀라씨 집(카사 바트요와 카사밀라), 구엘공원을 거쳐 바르셀로나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마무리된다. 이 투어에서 엄마는 이번 여행을 관통하는 아주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아이는 위대한 건축물과 유적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까사 바트요는 즐겨 먹는 사탕 브랜드 '추파춥스'가 주인이라 신기한 건물(가이드님이 레몬맛 추파춥스를 주었을 때 가장 환한 표정을 지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바르셀로나에서 소매치기가 가장 많은 위험한 장소일 뿐이었다. 아이는 성당 앞에서 행여나 소매치기가 나타날까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입을 벌리고 성당을 바라보는 나에게 정신 차리고 가방을 꼭 안고 있으라고 여러 차례 주의를 줬는데 그 모습이 가제트 형사 뺨쳤다. '아이의 탄성은 짧고 엄마의 탄식은 길다'라는 명언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어쨌거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나는 이 성당을 사그'리'다 파밀리아라고 부르는 이상한 저주에 걸렸다. 뭘 그리 싸그리 다...) 아직도 완성되지 못했지만 12년 전에 비해 많이 지어졌다.

까사바트요

예전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들리지 않았지만 이번에 가기로 결정한 곳이 바르셀로나 근교 몬세라트 수도원이다. 톱니바퀴를 닮은 산(몬세라트의 뜻도 이것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압도당했고,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골목, 시장, 맛집 등 도시 투어를 선호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연을 천천히 관찰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몬세라트와 시체스 투어를 충동적으로 신청한 것도 이런 깨달음에 기반한 것이다. (절대 가우디 투어랑 묶으면 할인을 해주기 때문이 아니다.) 이 수도원은 1025년에 지어졌으며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카사 밀라를 짓는데 자연적 영감을 준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특히 기대했던 것은 에스콜라니아 소년 합창단이었다. 음악 영재들이라는 이들의 합창은 '천상의 소리'라고 했다.


여행 3일차 아침 일곱 시, 몬세라트&시체스 투어에 가기 위해 스페인 광장까지 전철을 탔는데 피곤해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는 게 왜 더 피곤할 걸까. 나의 이런 생각을 꿰뚫어보는 듯 발랄한 가이드님의 촌철살인 멘트가 귀를 때린다.


-여러분, 저는 일하고 있고 여러분은 놀고 계신데 왜 제 표정과 텐션이 제일 좋은 걸까요? 많이 피곤하세요?


순간 피곤해 죽겠다…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떠올리며 푸핫 웃음이 터졌다. 그러게요, 신나게 놀려고 여행 온 건데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요? 왜 다들 화난 표정을 짓고 있는 거 같나요? 춘, 심과 큭큭거리며 웃다가 가이드님 질문에 무조건 큰 소리로 대답하고 발랄하게 눈을 맞추기로 작정했다. 우리는 즐겁게 놀러 왔다고!


4.

해발 725m에 지어진 몬세라트 수도원으로 이르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마지막 10분은 멀미가 날 만큼 구불구불해서 차창 밖 먼 곳을 바라봐야 했는데 안개와 구름에 휩싸인 풍경이 가히 절경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본 자연 경관 중 아마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아닐까 한다.


몬세라트 수도원에는 1100년 목동들이 동굴에서 발견한 검은 성모상, 라 모레네타(La Moreneta)가 있다. 검은 성모상의 손을 만지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전해지는 까닭에 많은 이들이 8유로의 추가 비용을 내고 소원 성취를 하기 위해 줄을 길게 서 있다. 유머러스한 가이드님피셜, 몇 년 동안 성모상에게 스페인인 남자 친구가 생기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결국 스페인인 남편까지 생겼다고 하니 효험이 상당한 것 같다. 나무로 만들어진 검은 성모상은 치유의 능력도 있다고 한다.


에스콜라니아 합창을 보러 가는 길에 만난 산조르디 조각상이 낯설지 않았다. 뭔가 만들다 만 것 같은 단순한 느낌... 바로 가우디가 떠난 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서쪽 '예수 수난' 파사드를 맡은 건축가, 조셉 마리아 수비라츠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움푹 패 있고 찢어진 조각상의 두 눈이 심플하면서도 상당히 강렬한데 신기한 점은 이 두 눈이 언제나 나를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심이와 조각 앞에서 왔다 갔다 달리기를 하면서 '와! 계속 따라온다'고 한참을 웃었다.


들어가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에스콜라니아 합창단의 음색은 아름다웠다. 심이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 친구들의 다른 삶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자리는 선착순이니 일찍 가서 제일 앞자리에 앉는 것이 좋다. 경이로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아이들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함께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공연의 경우 코로나 이전에는 무료였으나 이후 8유로의 요금이 붙었다.

바르셀로나 근교 몬세라트
에스콜라니아 합창단


5.

우리의 이번 바르셀로나 여행 목적지에는 축구팬들의 성지인 '캄프 누'와 야경 명소인 '벙커'도 있었다. 9만 명까지 수용 가능하다는 캄프 누 경기장에 들어가자 압도되었다. 빈 운동장이 이 정도인데 실제 경기를 관람한다면 얼마나 특별한 경험이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심이는 이곳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싶다고 백 번쯤 이야기하며 아쉬워했다. 아쉬움을 맛있는 해산물 빠에야로 달래고, 벙커로 향했다.


바르셀로나 노을과 야경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벙커(Bunkers del Carmel)'도 12년 전에는 모르던 곳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스페인 내전 때 방공 시설로 이용된 장소다. 또 다른 야경 포인트인 몬주인 음악 분수쇼는 최근 물 부족으로 인해 잠시 운영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12년 전 환상적인 저녁 시간을 선사해 준 곳이었는데 아쉬웠다. 벙커까지는 택시나 버스가 아닌 전철을 탔더니 정상까지 올라가야 하는 길이 꽤 멀고 경사가 가팔랐다. 숨을 헐떡이며 중간에 앉아서 쉬기로 했는데 거기서 보는 뷰도 꽤 멋져서 굳이 끝까지 가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유혹에 타협하려던 나를 단호하게 꾸짖고 끝까지 가야 한다는 심이. 관광지에 오면 우리 셋 중에 제일 강단 있는 건 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긴 줄에 지레 겁먹고 그냥 가지 말고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이나 볼까... 하는 소심한 나를 늘 이끌어준다.


벙커 정상에서 본 야경은 아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해야 할 정도로 끝내줬다. 특히 어디선가 둠칫둠칫 흘러나오는 이디엠(EDM) 멜로디는 바르셀로나 야경을 더 몽환적이고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맥주와 와인을 신나게 즐기고 있는 대학생들을 바라보며 아이 손을 꽉 잡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확실히 예전과 같지 않고 제약도 많지만 특별했다. 종종 아이의 시선을 쫓으며 마흔의 눈과 열 살의 눈으로 동시에 도시를 바라봤으니까. 어쨌거나 더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끝까지 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밤이었다.


캄프 누
벙커에서 바라 보는 바르셀로나의 노을과 야경


6.

바르셀로나는 역시 맛있는 음식이 많다. 여러 가지 투어를 하느라 생각보다 맛집을 많이 찾아가지 못했지만 개그맨 권혁수님이 먹고 눈물을 흘렸다는 꿀대구와 감바스, 문어, 소고기 등 각종 타파스, 빠에야와 샹그리아를 마음껏 즐겼다. 12년 전에 먹었던 츄러스 맛집 '츄레리아'에 들러 얇고 바삭한 바르셀로나식 츄러스도 먹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핫초코에 찍어먹는 츄러스의 달콤함은 여전했다.


예상했지만 바르셀로나에서의 4박 5일은 너무 짧다. 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절반도 하지 못하고 떠나는 느낌이다. 가장 아쉬웠던 곳은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 미술관이다. 에스파냐 광장도 스치듯 지나간 게 전부였다. 가우디는 여전히 건재했고, 가우디를 가진 바르셀로나를 향한 나의 질투도 건재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이른 아침, 아쉬움과 부러움을 접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향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첫 번째 도시는 코르도바. 메스키타를 만나러 간다.


바르셀로나 왕의 광장

*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 공감과 댓글은 지속적인 콘텐츠 업로드에 큰 힘이 됩니다!

keyword
이전 02화핀란드 사우나와 행복지수, 그리고 연어스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