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1.
여행에서 맛집 투어를 하는 우리의 모습은 대략 이렇다. 맛집 서치 담당인 내가 오늘 가볼 만한 가게들을 메신저 전체 창에 4-5개 투척한다. 함께 꼼꼼하게 살펴보고 목적지를 정한다. 최적 이동 경로는 춘 담당이다. 가게에 도착하면 셋이 머리를 파묻고 메뉴판을 일독한다. 파파고와 구글 후기를 최대한 활용해 그곳만의 시그니처 메뉴와 이유 없이 당기는 메뉴를 적절히 섞어 가능한 다양하게 시킨다. 음식이 나오면 한 명에게 맛을 보게 하고 반응을 먼저 살피는데 심이가 주로 기미 담당이다. 심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엄지를 들어 올리면 맛있다는 것이고, 엄지 두 개가 동시에 올라오면 최고라는 뜻이고, 갑자기 흥분해서 흰자가 지나치게 많이 보이면 굉장하다는 의미다. 우리는 호들갑을 떨며 함께 먹기 시작한다. 절반 정도 먹었을 때 우리는 심각하게 하나, 둘, 셋을 외친다. 각자 제일 맛있는 메뉴를 픽 하는 시간이다. 아무도 관심 없는 이 결과가 우리에게는 사뭇 중요하기에 나는 진지해진다.
-하나, 둘, 세엣! 아 잠시만! 이거 한 번만 더 먹어볼게.
-하나, 둘 셋! 잠깐만, 1분만 더 줘!
이렇게 주저하는 건 결정 장애가 있는 내 담당이다. 이건 매콤해서 좋고, 저건 식감이 낯설어서 좋고, 이 고기만두 육즙도 장난 아닌데... 하고 장황하게 늘어놓다 보면 심이가 단호하게 말한다.
-그냥 빨리 하나 정해.
우리의 픽은 대부분 엇갈린다. 우리 셋의 입맛과 취향은 큰 카테고리에서는 비슷하고 세밀하게는 다르다. 이 차이가 우리 여행의 크고 작은 다이내믹을 만들어낸다.
어쨌거나 눈알을 굴리며 동시에 하나, 둘, 셋을 외치는 그 순간이 좋다.
2.
서로의 마음이 자주 궁금한 우리는 동행자의 최고의 순간을 캐기 위해 질문을 많이 한다. 여행의 끝에서 "뭐가 제일 맛있었어?", "어느 도시가 제일이었어?"라고 묻는다. 나의 발랄한 질문 끝에 나온 심이의 대답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렸다. 심이는 여행의 가장 좋은 시간은 '공항에서 짐 찾는 순간'이라고 했다. 매일 열광하던 야시장 투어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리스본의 28번 트램은? 타이베이의 101 타워에서 본 야경은? 많고 많은 순간 중 하필 그때? 나는 질문했다.
-그때가 여행이 주는 설렘과 내 짐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서 그런 거야?
-아니, 비슷비슷한 캐리어 사이에서 우리 것 찾을 때 제일 재미있어.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코끼리를 타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쇠약한 어머니를 모시고 푸껫으로 향한 작가. 부축을 받지 않으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어려운 어머니가 과연 코끼리를 탈 수 있을까, 자식들은 걱정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코끼리 등에서 싱글벙글 마음껏 행복해 한 어머니. 어머니의 버킷리스트도 이루고 좋은 추억도 만든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딸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가는 비행기에서 본 후지산이 제일 좋았다고.
공항에서 캐리어 찾는 소리네요...라고 일갈하고 싶을 만큼 코끼리 이벤트를 열심히 준비한 입장에서는 다소 맥 빠지는 답변이지만 여행은 이토록 개별적인 경험이다. 순수한 기쁨은 강요할 수도, 꾸며낼 수도 없는 성질인 것이니까.
짐 찾는 것이 제일이라는 심이에게 시시하다는 눈빛을 보내니 심이가 반격한다. "그럼 엄마에게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데?!!" 마음에 떠오른 순간들이 만만찮게 시시해서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사실 내게도 최고의 순간은 유명 관광지에 있지 않다. 늦잠꾸러기인 내가 일찍 일어나 조용한 도시의 아침을 만날 때, 주문한 음식이 너무 맛이 없어서 심이와 눈을 마주치며 빵 터질때, 해방감에 사로잡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거리에서 아이와 춤 대결을 펼칠 때나, 낯선 골목에서 만난 커피의 첫 한 모금, 그리고 맛집에서 각자의 픽을 가리키며 폭소하는 순간. 이런 찰나들이 세포를 깨우고 온몸에 스민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 둘, 셋 하면 떠올려 봅시다.
당신에게 여행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언제나 설레는 이 길.
우연히 좋은 장소를 발견했다. 타이난 더 스프링
조금 전에 발명한 새로운 게임에 열중하는 우리.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