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 병원에서 퇴원했고(병원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영을 퇴원시켰다.) 수술 날짜는 2월 말로 잡혔으며 외래 진료도 설 연휴로 인해 미뤄진 상태였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담도암과 관련된 정보를 찾고 다른 병원에 연락을 취해도 보며 외래진료를 기다렸다.
연휴 내내 영은 열과 통증에 시달렸다. 열이 38도에 가깝게 올랐고 명치 통증이 점점 심해졌고 메쓰 거움에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가려움증도 나타났다.
나는 아픈 영을 보며 "이래서 집안에 의사가 있어야 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내가 될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결국 영은 응급실을 통해 병원에 재입원했다. 의사 소견으로는 지난주에 한 담도 내 삽입한 스텐트 시술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간수치가 올라갔고 황달도 다시 나타났다. 아무래도 담도가 막힌 것 같다.
응급실 입장 비용은 비급여 항목인 코로나 검사 10만 원. 코로나 시대는 아픈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그러니까 오늘 일기는 재입원 첫째 날에 쓰는 일기이다.
그동안 글을 쓰지 않은 것은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기에 눈앞에 너무 많은 의미모를 활자가 떠다녔고 퇴원해 집에 온 영과 함께 있다 보면 내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기를 써서 그 괴로운 사실을 굳이 상기시키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시 병원에 들어오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어 일기를 쓴다.
내 엄마 영은 암 환자이다.
응급실에서는 며칠 전 열이 있던 영을 보며코로나 의심환자로 분류해 격리 병동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긴급 코로나 검사를 한 뒤 의료진이 쓰는 쉴드 마스크를 쓴 영을 보니 나는 참지 못하고 또 소리 내서 웃어버린다. 엄마, 살면서 별걸 다 해보네 낄낄.
영은 어처구니가 없다.
쉴드마스크를 쓴 영. 사진을 찍자 화를 냈다.
5인실 병실은 유독 소란스럽다. 누군가는 휴대전화로 소리를 켜고 영상을 보고 누군가는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한다. 이 소란에도 영은 잠이 든다. 며칠 내 통증 때문에 잠 한숨 자지 못한 그녀의 고단함에 마음이 무너진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쉴드 마스크를 쓴 영의 사진을 꺼내본다. 웃음이 나오는데 눈물도 흐른다. 희한하다.
오늘 낮 응급실 앞에서 오빠 운과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서로를 안았다. 애처럼 우는 날 안은 오빠 운은 처음으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 내가 우는 딸 마리를 안고 토닥이듯이 운은 날 토닥인다. 엄마가 낫는 과정이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
일주일만에 다시 온 병실.
암환자가 된 지 고작 2주, 영의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2주의 시간이 이토록 낯설고 무서울 수 있구나. 옆 침대 환자 보호자가 뒤척이며 자꾸 영의 침대를 친다. 잠든 영이 깜짝 놀라 깬다. 1인실에 있는 누군가가 부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