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암 판정을 듣고 난 문득 사춘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피카츄의 백만 볼트 벼락이 머릿속을 때린 순간, 이제 정말 영의 밥상을 마주하지 못할 날이 오겠구나, 싶었다.
언젠가 동네 작은 서점에서 본 독립출판물이 떠오른다. 할머니의 레시피를 모은 레시피북이었다. 언젠가는 영의 레시피를 정리해두자는 생각을 이제야 조금씩 실행해보려고 한다.
영은 그동안 내게 요리를 하지 못하게 했다. 흥미도 없고 실력도 없는 내게 요리를 시키느니 그냥 본인이 하고 만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그녀도 자신의 병을 알고 나서 내게 요리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 영은 스텐트 재시술을 마치고 일요일 퇴원했다. 연휴 내 영은 명치, 갈비뼈, 등 통증을 호소했고 열이 지속됐으며 메쓰 거움으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의사는 이 모든 증상이 스텐트 문제라고 했다. 플라스틱 스텐트가 담도 찌꺼기에 막혔었고 그로 인해 간수치, 황달이 올라갔었다고. 수술 일정은 여전히 2월 말로 고정. 하루라도 수술 일정이 당겨지길. -
영은 첫 퇴원 후 자식들 밥을 챙기기위해 두부와 돼지고기를 사 와서 김치찌개를 끓였다. 이를 보고 내 남편 바리는 '어머니는 뼛속까지 엄마'라고 말했다. 오늘의 요리는 영의 시그니처 메뉴인 김치찌개.
영의 김치찌개.
영의 손맛까지 재현할 순 없겠지만 그 근처 흉내라도 낼 수 있다면 우리 남매는 훗날 영을 덜 고통스러워하며 그리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