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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투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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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Feb 10. 2022

닉네임의 마음

투병 23일 차

2022년 2월 9일 날씨 맑음


요새 틈만 나면 네이버카페에 들어간다. 담도암 환자들을 위한 정보공유 카페와 암환자 보호자들이 활동하는 카페이다. 그곳에서 암에 대한 정보를 얻고, 희망을 얻고 절망하기도 하고 슬픔을 공유하기도 한다. 며칠 전엔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는 아들의 글을 읽으며 울었고, 오늘 아침엔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의 글을 보며 눈물 흘렸다. 반대로 (극히 드문 글이지만) 담도암 발병 8년 된 어머니와 잘 지내고 있다는 희망적인 글을 보기도 했다.


며칠 카페에 암 수술에 관련해 질문을 올렸다. 댓글이 여러 개 달렸는데 댓글의 내용보다 사람의 닉네임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를 지키자', '비온뒤 무지개'.

내 닉네임을 본다. '할수있어꼭'.

가상공간에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새삼 체감다.  


어제는 오빠 운이 연차를 내고 분당차병원 대리진료를 다녀왔다

오전 10시에 집을 나선 운은 저녁 8시 반이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분당차에선 선 항암 후수술을 이야기했다. 현재 PET-CT(암 전이 여부를 알 수 있는 전신CT) 상으론 전이가 없지만 임파선이 부어있어 전이의 가능성이 있다는 전북대 의사의 소견에 따라 선항암을 먼저 해보자는 것이다.

운과 나는 생각한다. 암 진단 후 급격한 체력 저하를 겪고 있는 엄마 영이 타 지역에서의 항암을 견딜 수 있을까? 우리 집과 분당까지 걸리는 시간은 자차로 2시간 반. 과연 어떤 것이 정답일까. 아니 정답이 있긴 한 걸까. 


영은 꽤나 의연하다. 그녀는 "타 지역까지 항암을 받으러 가는 것은 불가능이다. 그냥 지역에서 하자"고 말한다.

실은 영은 담도암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췌장암과 더불어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이고, 전이가 쉽고 재발이 많이 되는 암이라는 사실에 대해.

언젠가 그녀의 핸드폰에서 '담낭 역할' '담낭 없이'라는 검색 기록을 보았을 뿐이다.


영이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고 딱 한 번 내 앞에서 운 적 있다

MRI 촬영이 있던 날이다. 촬영을 마치고 나온 영의 눈에 눈물을 흘린 자국이 있었다. 난 촬영이 힘들었나 싶어 걱정스레 그녀를 보니 영은 나를 보며 "슬프다"며 울먹거렸다. 열심히 직장 다니며 돈 좀 벌어볼까 했는데 암이라는 벽이 또 생겨 나를 멈추게 한다고. 그래서 슬프다고. MRI 통 안에서 검사를 받으며 혼자 울고 있었을 영을 생각하니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병원 한가운데 서서 서로를 안고 울었다. 별일 없을 거야 엄마. 그래도 눈물이 난다면 울어. 펑펑 울어버려.


영은 여전히 입맛이 없다. 어제까지 누룽지를 끓여먹었고 오늘은 추어탕에 밥을 말아먹었다. 꾸준히 처방약을 먹고 있으며, 병원 외래 진료는 의사 개인 사정으로 또 미뤄졌다. 암을 알게 된 지 벌써 20일이 넘었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수술 날짜는 아직도 보름 이상 남았다.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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