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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투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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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 Feb 11. 2022

간병 1일 차 몸살 난 못난 딸

투병 25일 차

2022년 2월 11일 날씨 맑음


새벽엔 딸 마리가 아팠다. 열이 나서 해열제를 먹이고 아침에 병원을 다녀온 후 어린이집을 보냈다. 이렇게 아픈 날엔 엄마가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아픈 엄마를 보기 위해 아픈 딸 마리를 남의 손에 맡긴다.

병원대기중인 백일된 딸 마리

엄마 영은 아침부터 무료하다는 듯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다. 텔레비전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볼 게 없다. 실은 핸드폰을 해도 재미는 없다. 영은 그저 수술 날짜를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중이다.


점심은 영이 끓인 시래기 된장국을 함께 먹었다. 영의 식습관은 육류보다는 늘 채소 위주, 고춧가루보다는 된장을 자주 먹는다. 소식하는 데다 인스턴트 음식도 거의 먹지 않는다. 뜨끈하게 데운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던 영이 말한다.

"이렇게 먹는데 암이 걸렸다는 것이 희한하네."

수술 후 영이 회복기에 있을 때 난 영을 위한 된장국을 끓여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레시피를 받아 적고 다음번엔 실습을 해볼 요량이다.


영이 끓인 시래기된장국.
영의 시래기된장국 레시피.

내 딸 마리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아파서인지 분유도 평소보다 적게 먹었는데.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


아픈 사람 하면 나를 빼놓을 수 없다. 원체 체력이 약한 데다 여기저기가 자주 아파 엄마 영과 남편 바리를 어지간히 속 섞인다. 영은 나를 보며 '골골 백 년'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알려줬다.


이번 설 연휴 때 영이 병원에 재입원했던 첫날 그녀의 침대 옆에서 잠을 잤다.(정확히는 잠을 설쳤지만.)

우습게도 난 그 하루 만에 몸살이 났다. 정말 우스웠다. 앞으로 우리는, 영과 나는 병원에서의 생활, 암과 함께 갈 길이 먼데 간병 생활 하루 만에 몸살이 나다니. 육신은 깨어있지만 정신은 물먹은 수세미처럼 쳐져있었고 눈으론 영의 거동을 살피고 있었지만 속으론 마냥 눕고 싶었다. 불편한 병원의 보호자 침대가 아닌 편안한 내 집 매트리스에서 잠 한숨 자고 싶다는 마음이 불끈불끈 솟았지만 이토록 이기적이고 못난 마음을 차마 남들에게 드러낼 수 없어 주먹을 꾹 쥘 뿐이었다. 가까운 남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부끄러운 마음이라 이렇게 일기에서나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아침 9시 반 딸 마리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침 10~11시께 엄마 영의 집으로 와서 저녁 7~8시까지 그녀와 시간을 보내는 한가로운 일정을 보낸다. 그럼에도 피곤하다. 새벽 마리의 잠투정을 받아주고 아침엔 영의 집으로 와서 그녀의 기분을 살피는 일이 이렇게 피곤할 일일까. 나의 저질스러운 체력과 정신력에 혀를 내두르며 비난하고 싶다. 그런 와중에도 딸 마리를 등원시키고 내 방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며 낮잠을 자던 몇 주 전의 일상이 떠오른다. 난 비난받아 마땅하다.


오늘 저녁은 영의 집에서 남편 바리와 딸 마리와 함께 잘 생각이다. 늘 커다란 집에서 우두커니 혼자 생활하던 영에게 '당신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이다.

딸 마리가 오늘 밤은 아프지 말아야 할 텐데. 오늘은 영의 건강보다, 나의 건강보다 마리의 건강이 걱정되는 그런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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