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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광고의 공식이 무너진 날

'브랜드는 더 이상 광고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야기한다.'

처음 마케팅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광고가 전부'라고 믿었다. 좋은 카피, 유명한 모델, 완벽한 노출 빈도. 그게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공식이라 생각했다.


'그래, 이 맛이야.'

15초짜리 TV 광고 하나가 전국을 들썩이게 하던 시절이었다. 유명 연예인이 웃으며 한마디 던지면, 그 브랜드는 다음 날 매출이 치솟았다. 우리는 그것을 '마케팅의 정답'이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광고를 건너뛰었고, 기업의 메시지는 점점 닿지 않았다.


2018년 어느 날, 나는 임원 면접장에서 이런 말을 던졌다.

'이제 SK텔레콤 유튜브의 경쟁자는 MBC가 될 겁니다.'

회의실 공기가 얼어붙었다. 한 임원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방송국이요? 우리가요?'

'네. 기업 채널은 더 이상 홍보 창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재미로 찾아오는, 방송국 같은 채널이 될 겁니다.'


그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징조들을 포착하고 있었다. 넷플릭스는 방송국을 위협했고,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연예인을 앞질렀다. 그렇다면 다음 차례는? 기업이었다.

유튜브가 등장하고, 기업들이 하나둘씩 채널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광고를 업로드했지만, 조회수는 늘지 않았다. 나는 고민했다.


'왜 사람들은 브랜드의 말을 듣지 않을까?'

그 답은 단순했다. 브랜드가 '자신의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광고가 아니라, 이야기에 반응했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가 직접 말하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광고 문장을 벗어나, 하나의 이야기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그게 바로 '브랜드의 말하기'였다.


2019년 SK텔레콤 <동물 없는 동물원> 캠페인을 만들 때, 나는 확신했다. 사람들은 기술 스펙에 감동하지 않는다. 그 기술이 만드는 세상에 감동한다. 우리는 5G를 팔지 않았다. 세상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진심을 알아봤다.


댓글 중 하나가 지금도 기억난다.

"SKT는 항상 사회가 무엇을 추구해 나가야 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일하는 기업인 것 같아요"


그 댓글을 보고 나는 울컥했다. 그날 나는 확신했다.

'사람들은 광고를 피하지만, 이야기는 받아들인다.'


이후 수많은 브랜드 콘텐츠를 만들면서 깨달았다. 브랜드가 콘텐츠를 만드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광고주가 아니라 미디어가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토스는 구독자 42만의 경제 교양 채널 <머니그라피>를 운영한다. 컬리는 장원영 등 아이돌이 출연하는 <덱스의 냉터뷰>를 만든다. <오늘의집>은 다른 브랜드의 광고를 받는 미디어가 되었다. 롯데홈쇼핑은 <벨리곰>이라는 IP로 200여 종의 라이선스 상품을 판매한다.


기업은 이제 광고를 집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야기를 발신하는 존재가 되었다.

브랜드가 미디어가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술이 아니라, 감정으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말하기는 결국 인간의 말하기다.'

사람이 공감하고, 감동하고, 웃고, 때로는 행동하게 만드는 그 말. 그 말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

이 책은 그 변화를 기록한다. 광고의 시대가 저물고, 브랜드가 미디어가 되는 이 순간. 브랜드는 어떻게 말하는 법을 배웠고, 어떻게 돈을 버는 미디어가 되었으며, AI 시대에도 왜 인간적이어야 하는지.

그 여정을 함께 걸어보길 바란다.

당신의 브랜드도 이제 말을 배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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