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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선영 소장 Feb 25. 2022

중2님에게 호감을 얻는 법

아들 늦었지만 허그한번 하고 가라!

여기저기 회자되는 그분들. 중2님. 우리 집에도 계신다. 키도 체중도 엄마를 이겨버린 아들. 몸은 이미 성인에 가깝지만 아이처럼 대하기도 성인처럼 대하기도 모호한 그분들은 찬찬히 관찰해 봐야 할 의미와 재미가 큰 존재다.


중2병이라는 단어를 포털 검색창에 입력해본다. 일본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단어였군. 1999년 이주인 히카루라는 사람의 발언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하는데, 지금은 한국에서도 두루두루 사용하고 있다. 사춘기인 청소년들을 비꼬아 부르는 말이라고 쓰여있다. 사춘기는 주로 13~15세 사이에 온다고도 쓰여 있지만,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를 여럿 키워보고 만나보니 사춘기야 말로 제각기의 타이밍으로 제각기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사회과학은 그래서 어렵고, 그래서 더 열려있어야 한다고 느껴진다. 아이의 사춘기와 아내의 갱년기가 동시에 찾아왔을 때 벌어지는 가정 내의 일상다반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남편들을 코칭으로 만나보면, 사람들이 주로 겪게 된다고 해서 이름 붙여둔 인생의 어느 시기들은 모두 뭐라고 정의 내리기 어려울 만큼 다르다. 다르지만 모두 별스럽다고 느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2의 말과 행동을 관찰해 본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주제라서 관찰하는 엄마의 눈에 열정과 치밀함이 생긴다. 그래서 에세이를 쓰는 일은 실용적이다. 눈여겨봤어야 하는 순간과 대상들을 눈여겨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니까 더없이 유익한 작업이다.


중2인 그분은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냉장고가 궁금하거나 화장실에 가야 할 때 나오시는 게 대부분이다. 엄마가 와도 아빠가 와도 뛰어나오지는 않는다. 방에만 있는 게 중2님인가 생각하면 그건 또 아니다. 배달음식을 시키고 벨이 울리면 "네 잠시만요" 하고 웃긴 표정을 하고 뛰어나온다. 아들의 웃긴 표정을 보고 싶으면 배달음식을 시키면 된다. 가끔 등교가 늦어져도 뛰어나가긴 한다. 그분이 배달음식을 먹는 일만큼 제시간에 등교하는 일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중2의 표정을 관찰해 본다. 같은 집에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관찰이 시작되자 새로운 면들이 나 여기 있네 하며 정체를 드러낸다. 그분은 주로 무표정이다. 언짢은 표정도 자주 나온다. 어제도 무표정과 언짢은 표정 사이에 있는 표정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독서의 중요성을 전하는 어느 선생님과의 대화를 가진 날 그 성찰과 아하의 순간을 그분과 나누려고 했던 나의 시도가 어설펐던 모양이다.  


독서가 어떤 선행보다 중요하고 공부에도 효과적이라고도 구슬려 보았지만 그분은 듣지 않고 있다. 대화를 시작했으나 상대방이 듣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대화를 중단하지 못하는 게 부모인가 아니면 나인가 성찰해본다. 중단하지 못했던 대화를 이젠 대화를 시작한 사람인 나의 기분이 살짝 상하는 가 싶을 때 자연스러운 듯 자연스럽지 못하게 대화를 중단한다. 본인이 먼저 대화를 시작했다가 화를 내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집요하다. 저녁을 먹을 때쯤 이제 이야기가 먹힐까 하면서 독서만큼 삶을 지혜롭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친구가 없다는 이야기를 던져본다. 남편에게 대화를 거는 척해보지만 가족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 이야기가 누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인지.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이 대화에 관심이 있는 단 한 사람 호기심을 우주 최강으로 가진 막둥이다. 아직 막둥이는 이런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는데 초등 1학년 속사포와 단둘이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 문답을 하는 내가 안쓰러워 그만둔다. 이제는 내가 대화를 그만두고 싶은데 계속 질문을 하는 막둥이. 꺼지지 않는 저 아이의 눈 속에 반짝이는 호기심이 지금은 부담스럽다. 아참 저 아이의 큰형 중2님인 그분도 저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존재였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분 안에 저런 존재가 여전히 살고 있겠지?


그분이 책을 싫어하는구나 생각하자면 또 그렇지는 않다. "책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라." 하면 제 뛰어나온다. "몇 권까지 사도 돼요?" 능글맞은 눈빛으로 엄마인 나에게 바짝 다가와서 사근사근하게 두 손을 비비면서 묻는다. 저게 아부라는 거겠지. 결론적으로 그분은 책을 싫어하지 않는다. 엄마가 별안간 시작한 책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중2가 된 아이에게 호감을 얻는 방법은 그 아이가 나에게 바짝 다가와서 능글맞은 눈빛을 보내는 순간을 잘 활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중요하다는 일장 연설보다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사서 주면 좋겠다. 그냥 사서 주는 것보다 시간을 내어 광화문이라도 가서 너른 서점을 보여주고 다양한 책의 표지도 보여주고 이 책 저책을 직접 열어보고 골라보고 담아보고 읽어보는 기회를 주면 그 아이가 나에게 호감을 보여주리라. 해보니 정말 그렇다. 차를 두고 대중교통으로 가야 하는 수고, 가면서 조용히 가고 싶어 하는 아이와 최대한 부드러운 대화를 시도해 보는 수고, 아이가 고른 책을 나도 같이 읽어보고 밥 먹을 때 슬쩍 좋았던 문장을 던져보는 수고. 그 작은 수고들이 그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계기가 되어갔다.


"이 책 재밌어?"

"내 읽을만해요. 엄마도 읽어보세요."

"아하 엄마도 읽어볼게"

그날 밤 그분이 공부하시는 뒷 공간에서 나는 그분이 고른 책을 빌려 읽어본다. 그분에게 빌린 책 속에서 엄마인 내 마음에 들어온 언더라인을 연필로 살짝 그어두어도 되는지 물어보고 최소한의 언더라인을 그어본다. 그리고 다음날 그분이 먼저 책에 대해서 엄마인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과시하지 않음으로써 과시한다는 문장... 저도 좋았어요."

"아 하버드 졸업생이 보스턴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하거나, 피티 주최자가 고급 샴페인의 출처를 거래처 농장 누구에게 받은 것이라고 했던 사례 말이지?"

"네 기억하시네요." 오호라 그분과 책에 대한 진짜 대화가 시작된다.  


중2의 뇌를 관찰해 본다. 우리 집에 계신 그분이 좋아하는 단어는 성공과 최정상, 경제, 돈 또는 그와 연결된 것들이다. 성공하기 위해 누리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들이 한편 다행스럽지만 뭐가 성공이고 누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여러 번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을 아직 행동으로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워런 버핏, 일론 머스크, 스티브 잡스 정도로 알려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가끔 내가 저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어야 아들이 내 말을 들어줄까 싶지만, 저 정도로 유명인사가 된 사람들의 자녀들도 저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속사정을 잘 모르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아이들은 본인이 적당히 자랐다고 생각하면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는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다. 그러니 어쩌랴 그 말을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전하는 게 목적이라면 아이가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시작점을 찾아야 한다. 그 시작점은 내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순간이 아니라 아이가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경로를 위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아이의 경로로 부모인 내가 들어가야 한다.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 통화되세요?"

학교를 갔던 중2님에게 전화가 왔다. 어찌나 상냥한 목소리인지 그분에게 전화가 온 게 맞는지 핸드폰을 다시 확인한다. 교복인지 활동복인지 구분을 잘못해서 다시 집으로 와야 할 상황이었다. 엄마와 엄마 차가 필요했던 것. 날 엄마가 아닌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세상 간절하게 요청을 한다.

"어머니 한번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까지 내가 당한 민망한 순간들을 생각하면 태워주기 싫은 마음도 든다. 오늘 입고 가야 할 옷이 교복인지 활동복인지 알지도 못하는 새끼가 워런 버핏, 일론 머스크를 운운하는 게 맞냐는 정신교육을 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접어본다.


"어서 와. 우리 아들"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어 집 앞에 대기하던 나에게 그분이 다가온다.  

"어머니, 제가 착각을 해서요. 제가 아침에 정신이 없었나 봐요. 하하하. 바쁘신데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아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는 순간 나는 품위 있게 배려를 전할 수 있었다. 능글맞은 아들이 나타나는 순간 귀찮지만, 나는 참 행복하다.


"아들 늦었지만 허그한번 하고 가라!"

"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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