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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Oct 22. 2021

셋이 합쳐 200살-고령 가족 여행기(3/10)

#3 길이 시작되었다. 

DAY 1> 5월 27일 15:00 프랑스 파리 드골공항- 몽파르나스역 Gare Montparnasse (우버)


드골공항에서 몽파르나스까지 우버 Uber로 이동. 셋이 이동하니 버스보다 싸고 편했다. 파리는 금방이라도 주르륵 비가 내릴 듯 어둡고 스산한 공기로 가득했는데, 예약 페이지의 사진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허름한 호텔 앞에 도착했을 때는, 기분이 그야말로 눅눅하고 쌀쌀해졌다. '아...... 이럴 땐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이지....'라고 삐걱거리는 호텔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다. 


검색해보니 호텔 근처에 '도깨비'라는 한국식당이 있었다. '도깨비'라..... 예전에 도깨비는 못생김과 옛날스러움, 촌스러움의 대명사였으나 드라마 덕분인지 왠지 로맨틱한 단어로 탈바꿈되었다. 도깨비 하면 공유가 생각나니 도깨비 너 출세했다. 한국 음식을 먹기로 한 이상 다른 선택지는 없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보니, 분위기만으로도 괜찮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사장님의 미소와 따스한 보리차, 정갈한 음식에 위로받았다. 우리는 결국 낯 모르는 이들의 친절에 의존해 살아가는 것일까. 


식당에서 감기약까지 얻어서 호텔에 돌아왔는데, 이 호텔은 종이로 지은 집인 듯, 창 밖 도로 소음이 그대로 들렸다. 아버지가 여기가 정말로 예약한 호텔이 맞느냐고 물으셨고, 나는 내 어리석음이 민망해 신경질을 냈다. 


DAY 2> 5월 28일 07:00 몽파르나스역- 바욘- 생장  피에 드 포 Saint Jean Pied de Port (기차)


잠은 설쳤지만 몸은 가볍다. 계획은 아침 7시에 테제베 TGV를 타고 바욘 Bayonne을 거처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의 시작점, 생장으로 이동하는 것. 바욘-생장은 종종 버스로 대체된다. 우리도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탔다. 여기서부터는 산티아고 순례길 상징인 조개껍질을 배낭에 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모두 제 나라 말로 떠들며 들떠있었다. 생장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경쾌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오후 1시경이었다. 


생장은 순례자들을 위한 작은 마을로, 시작 지점답게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큰 슈퍼, 아웃도어 용품 판매점, 약국, 레스토랑들. 그리고 꽤 많은 수의 알베르게(여관). 아무 준비 없이 와도 바로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5월은 본격적인 시즌이 아니어서 인지, 비어있는 알베르게들이 많고 주인장들이 나와서 호객을 한다. 우리는 마킬라 Makila라는 알베르게를 예약하고 온 상태였는데, 다른 곳에 비해 2배는 더 비싸지만(27유로/인), 4인실에서 조용하고 여유 있게 순례 첫날을 기념하고 싶었다(라고 나 자신을 납득시켰다.) 

마킬라 알바르 게 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2019


순례길 사무국에 들러 크리덴셜(순례자 여권으로 2유로에 살 수 있다. 여기에 도장을 찍는다.)과 각종 자료들을 받았다. 프랑스길은 생장에서 시작해서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이어져 있으며 전체 800킬로 남짓한 거리다. 안내문에서 보면 보통 34일 동안 걷는 것 같다. 


트레킹 첫날은 대부분 27킬로를 걸어 론세스바예스 Roncesvalles 까지 가는데,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한다. 프랑스 루트에서 가장 힘든 코스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사무국에 물어보니, "노 프라블람. 한국 사람 할 수 있어요"라고 밑도 끝도 없이 파이팅이다. 끈기와 근성의 대한민국. 아버지가 답하셨다. 


"노우, 노우, 아니요. 우린 못해요." 


나는 사실 내심 이 힘든 코스를 기대하고 있었다. '순례길'이라면 응당 내 체력과 인내의 바닥을 확인하며, 그 처절함 뒤에 오는 궁극의 카타르시스를 맛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와 그래야 되노? 와 무리해야 되냐고?" 라며 아버지가 손사래를 치신다. 믿었던 어머니 마저. 첫날을 고작 8킬로에서 멈춰야 하다니. 아.. 이 타오르지 못한 젊음이여.....  


어찌 되었건 둘째 날부터는 숙박 예약을 하지 않아서 서둘러야 했다. 중간에서 자려면 옵션이 '오리손 산장' 하나뿐이다. 급하게 전화를 해보니 내일 오후 12시까지 오면 잘 수 있다고 해서 일단 안심했다. '8 킬로면 2시간에 거뜬하겠지' 생각하고 잠을 청했다. 


첫날과 마지막 날만 숙박 예약을 해 놓고, 중간중간 컨디션을 보아 가며 루트와 숙박을 정하자고 부모님과는 합의가 된 상태였다. 인터넷 여러 후기에서도, 극 성수기가 아닌 경우는 숙박 예약을 할 필요가 없다고 되어 있었고, 내 경우도 하루 전 예약이나 당일 예약으로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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