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말 갈 수 있을까?
여행 6개월 전 인천-로마-파리-마드리드-인천 항공권을 구입했다. 장거리 비행을 하는 김에 로마도 가 보고 싶다는 어머니의 요청이 있었고, 심지어 항공료도 직항보다 더 싸다.
순례길 전에 로마에서 일주일을 보내며 시차 적응을 하는 것이 컨디션 조절에도 좋을 것 같았다. 고령의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알이탈리아 항공의 낡은 비행기 안에서 12시간 동안을 묶여 있다 내리니, 그저 땅을 두 발로 밟는다는 것 만으로 행복감이 밀려왔다. 바티칸 근처의 에어비앤비를 잡았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 숙소였지만, 꽤 넓고 쾌적했다.
시차 적응을 한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우리 셋은 서로를 독려하며 잠이 들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허탕이었다. 초저녁부터 선잠에 빠져든 우리는 이른 새벽이 되면 말똥말똥 “끝내 지고 말았다”는 얼굴로 하나 둘 주방 식탁으로 모여들었다.
화투라도 가져올걸 그랬나요, 아버지.
화투, 도박 등의 단어는 알게 모르게 우리 집 금기어(외할아버지가 노름으로 과수원을 날렸다고 한다)였으나 어느 날부터 화투치기가 치매 예방에 좋다며 어머니도 화투판에 뛰어드셨다. 건강에 진심인 편이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너편 빵집은 새벽 4시가 되면 불이 켜졌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아버지는 내내 시계를 지켜보다가 6시 50분이 되면 이탈리안 젠틀맨 스타일로 머리를 매만지고 나가 빵집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하얀 앞치마를 맨 인심 좋아 보이는 이탈리아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아버지를 맞이한다.
내가 이 광경을 창문으로 지켜보고 있을 때, 나이 70에 바리스타가 되신 어머니가 커피를 갈고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린다. 지금도 그 빵과 커피 냄새를 잊을 수 없다. 여행의 어떤 장면들은 냄새로 기억된다.
3시간 이상 줄을 서 콜로세움에 입성했다. 매일 아침 바티칸을 가고, 비를 맞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도 들었다. 천사의 성 꼭대기에 올라가서 시내를 보고, 피자와 파스타도 실컷 먹었다. 마지막 날은 순례길 준비를 위해, 스포츠 용품 점에 들러 침낭과 옷가지들을 사고 결의를 다졌다.
일교차가 커서 밤에는 상당히 춥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신경을 쓰셨지만 아무래도 컨디션이 안 좋은 모양이었다. 가져온 옷 들은 있는 대로 다 꺼내 껴 입고 있었지만 집이 많이 추웠다. 쾌적하고 널찍한 이 집은 난방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지금도 로마를 생각하면 추웠던 기억이 가장 먼저 난다고 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간이 약국을 차릴 수 있는 수준으로 이런저런 상비약을 챙겨 오셨기 때문에 약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프랑스로 떠나는 공항에서 어머니는 감기몸살을, 아버지는 복통을 호소하여 나는 매우 심란해졌다. 믿었던 아버지 마저. 두 분이 한꺼번에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최악의 상황.
유리 멘털의 나는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든 심각한 얼굴로 두 분 주위를 서성거렸다. 많이 안 좋으신 거예요? 딸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안절부절못해 하자, 긍정의 화신 어머니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각성한 어머니가 요구르트로 아버지의 배를 낫게 하시고 당신에게는 따듯한 차와 감기약을 처방하시옵시며, 비행기 안에서 숙면을 취하시어, 몇 시간 후 드골 공항에 도착했을 때, 우리 중 아픈 사람은 아무도 없게 하는 기적을 행하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