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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Oct 22. 2021

셋이 합쳐 200살-고령가족 여행기(4/10)

#4. 부엔 까미노! 

DAY 3> 5월 29일 08:00 생장  피에 드 포Saint Jean Pied de Port - 오리손Orisson (8km/도보)


시작이다. 추적추적적 비가 오고 있지만, 우리의 기상을 막을 수 없다. 가는 내내 빗줄기가 오락가락, 우리는 우비를 입었다 벗었다 정신이 없었지만, 기분 좋은 풍경이 계속되니 신바람이 났다. 시작 후 40분 까지만 해도......  


마음은 신나서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데,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가방은 또 왜이리 무거운지 어깨가 천근 만근 이다. 분명히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정도로 콤팩트 하게 싼 짐인데도 말이다. 


지금껏 반 체육인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의지의 한국인이 이렇게 빨리 무너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2.5킬로 지점에서 우리는 휴식을 가지고 재정비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이것들을 다 먹어치워서 조금이라도 짐을 줄이자. 우리는 먹기 시작했다. 


파이팅의 화신 어머니의 눈에서도 열기가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앞질러 갔다. 순례길에서 '부엔 까미노'Buen Camino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데, 빵을 먹으며 설렁설렁 서른 번은 한 것 같았다. 기운을 차린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 표시가 매우 잘 되어 있어서 헤매는 일은 없다. 그저 오르막 길일뿐이다. 우리 셋은 말없이 걸었다. 비가 온 탓에 길은 진흙탕이 되어 있었고, 시꺼먼 진흙들이 앞으로 나가려는 내 발에 질척거리며 들러붙었다. 쌍욕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흠칫한다. 환경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11시 30분, 구글맵이 1킬로 정도 남았다고 알려준다. 12시까지 가지 못하면 더한 개고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두 발과 무릎이, 별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머리를 움직여 제 멋대로 가고 있다. 이것은 걷는 것도 아니고 기는 것도 아니다. 어정쩡한 스피드로 막판 스퍼트를 올려 12시에 겨우 도착. 


아... 나는 눈물을 조금 흘렸던가. 20여분 뒤에는 부모님과 상봉했다. 아버지는 우리는 못한다고 했던 당신의 선견지명이 자랑스러웠다. 

소들이 주인, 인간은 객식구, 오리손 산장 2019


오리손 산장은 40여 명이 잘 수 있다. 눈이 시원해지고 폐가 깨끗해지는 것 같은 그런 대자연 속 산장. 샤워는 코인을 넣고 7분, 시간을 이렇게 알뜰하게 쓴 것은 오랜만이다. wifi 같은 것은 없고 온갖 벌레들과 함께 소도 있고 양도 있다. 저녁 식사는 모두 모여서 자기소개를 하고 시작한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하려니 속이 울렁거렸다. 


한 방 8명씩 2층 침대에서 잠을 잔다. 다른 가족과 함께 방을 썼는데, 코골이 가족이었다. 엄청나게 피곤했지만 코골이 대환장 파티 속에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나는 무척이나 예민해졌다. 


DAY 4> 5월 30일 07:00 오리손Orisson -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17km/도보)


아침이다. 커피를 마시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다. 부모님은 배낭을 다음 도착지로 보내기로 했다. 순례길은 짐 운반하는 서비스가 매우 잘 되어 있다.(백팩 1개=8유로) 오늘 계획은 17킬로를 걷는 것이지만, (부모님은) 짐이 없으니 괜찮을 것 같다. 나는 젊음을 과시하며 짐을 지고 걷기로 했다.(그러나 그것은 그저 멍청한 객기였다.)

배낭이 없이 걷는 어머니와 아버지, 2019


오늘도 기가 막힌 풍경이 계속된다. 몸이 이제는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전투태세에 돌입했는지, 어째 걷는데 무리가 없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몸이 가벼워서인지 오늘은 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행이다.  


이 길에서는 식당이나 카페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먹을 것을 잘 챙겨야 한다. 카페가 없다는 말은, 또한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나의 공손한 뇌가 숲에서 볼일을 볼 수는 없다고 강력한 지령을 내린 탓인지 17킬로를 걸으며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그것은 젊음 때문이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늙으면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부모님이 꼭 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 주위를 둘러보면 화장실로 삼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있었고, 그곳은 이미 다른 여러 사람에게도 화장실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후 알게 된다. 어머니는 그것이 묘한 안도감과 불쾌감을 동시에 주는 그런 신비로운 체험이라고 하셨다.   


오늘의 숙소 론세스바예스 수도원까지 5킬로가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고 나는 야호를 외치며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이제 됐어, 다 왔어, 어머니 다 왔어요. "라고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내려간다. 


그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걸어갔을 때 또 다시 '5킬로'가 남았다는 표지판을  만났다. 어랏, 여긴 어디 난 누구? 이건 5킬로의 저주? 혹시 이건 다 꿈?  


그러니까 이 길은 조금 돌아가게 되어있고, 표지판은 정확하다. 제길, 도무지 동기부여를 하지 않는 표지판이로군. 나는 무척이나 실망해서 다시 걷기 싫어졌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은 대규모 공립 알베르게이다. 100여 명이 잘 수 있고, 상당히 깨끗하게 정비가 되어 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니 


행복을 만끽하고 나오니, 들어가기 전에는 없었던 샤워 줄이 길어져 있다. 나는 롱 샤워 민폐녀가 되었다. 

저녁식사를 기다리며. 대낮 같지만 6시가 넘었다.


순례자 저녁 식사 코스 티켓(12유로)을 사 두고, 레스토랑 앞에서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햇볕을 받고 앉아 있는데, 우리에게 "아, 한국 분이세요.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 청년이 있다. 책을 읽고 있던 예의 바른 한국 청년이다. 


우리는 맥주를 한잔씩 하려던 참이었고, 아버지가 저 청년도 한잔 사주라고 하신다. "청년, 맥주 한잔 사줄까요?"라고 했더니, "이런 행운이.." 라며 씩 웃는다. 나는 2유로로 누군가에게 행운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33살 청년은 1년째 세계여행 중이다. 4년 간 스타트업을 운영했고, 치열하게 일 했지만 끝내는 실패 했다. 나는 그저 그가 30대인 것이 부러웠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옆 사람이 얇은 판자 하나를 두고 천장이 떠나갈 듯 코를 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말 그 판자를 부숴버릴 수 도 있을 것 같았지만, 몸이 피곤해서 만사가 귀찮았다. 가져온 귀막이도 소용이 없고, 천둥소리와 함께 그저 시간이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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