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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Oct 22. 2021

셋이 합쳐 200살-고령가족 여행기(5/10)

#5. 제발 잠 좀 잡시다. 

DAY 5 5월 31일 07:00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 팜플로나Pomplona (47km/버스)


삼일 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제 내 머릿속에서 인류는 인종, 국가, 성별, 연령을 아우르며 대통합을 이루었고, 오직 코를 골게 생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코를 골게 생긴 사람들이 다짜고짜 미워졌다. 자야 할 시간이 되는 것이 무서워졌다.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예민한 사람인가. 나 자신과 사람들이 모두 싫어졌을 때,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는 것을 포기했다. 


제발 제대로 잠 좀 자보자. 


일단 아침에 버스를 타고 도시 쪽으로 나가기로 했다. 구글맵에서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나갔는데 1시간은 넘게 기다렸다. 이런 작은 도시들은 시간표가 몇 년이고 업데이트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후 롬투리오Rome2Rio라는 앱이 스페인에서 대중교통 이용 시, 많은 경우 훨씬 더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 일찍 팜플로나 시내의 작은 아파트(50유로)를 예약 해 두었다. 작은 마을버스를 타고 무려 2시간 동안 지독한 멀미에 시달리며 팜플로나에 도착했다. 우리는 일단 맥주를 한잔씩 마시고, 짐을 다시 싸기로 했다. 팜플로나의 우체국에 가면 순례자들을 위해 종착지인 산티아고 성당까지 화물을 보내주고 15일 동안 보관해 주는 유료 서비스가 있다. (15일 이후로는 1일 단위로 추가 요금을 받는다) 

팜플로나 2019


본격적인 짐 줄이기에 들어간다. "아이 참, 티셔츠를 2개씩이나 갖고 있었네. 무슨 패션쇼라도 할 참이었나?", "샴푸가 꼭 필요해? 비누 하나면 되잖아. 빗? 지금 이 상황에 머리를 빗어? 로션과 에센스 둘 다 바르다니 연예인인가?" 혹독한 자기반성 시간이다. 


짐을 다시 싼다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변을 하는 시간이었다. 무척이나 대단한 의미를 붙여 보았지만, 나는 노트북을 킵하기 위해 많은 것을 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플라스틱 소주병들을 넣다 뺐다 하며 내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고 어머니는 모자 3개를 썼다 벘었다 하며 선택의 기로에 섰다.


팜플로나는 축제로 유명한 도시다. 매년 7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산 페르민 축제가 열리고, 스트레스받은 소들이 좁은 골목을 미친 듯이 뛰어 내려올 때 사람들은 뭐가 좋다고 소리를 지르며 함께 달리고 서로 밀치고, 엎어지고, 또 다치기도 한다. 내가 본 사진 속 팜플로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이 없는 지금의 이 조용한 이 골목은 왠지 생활감이라는 것이 전혀 없이, 촬영이 끝나 적막해진 거대한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고 그야말로 꿀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꿈마저도 이 궁극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았다. 


DAY 6 6월 1일 08:00 팜플로나 Pomplona - 무르자발Murzabal (18km/도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연극 무대의 배우처럼 기지개를 켜며 이렇게 말했다. "아...... 너무 잘 잤어요." 그리고는 그야말로 껄껄껄 웃으며 거실로 나왔다. 부모님도 오랜만에 정말 몸이 가뿐하다고 하셨다. 콧노래가 나왔다. 짐도 가벼웠다. 별로 웃기지 않은 농담에도 자지러지게 웃을 수 있는 그런 깨방정 상태로 길을 나섰다.  

나무를 만나면 꼭 쉬어가야 한다. 2019


그러나 일찍부터 짱짱한 햇살은 한낮의 무더위를 예고하고 있다. 이 길은 그늘이 거의 없어서 한낮에는 태양과 맞짱이라도 뜨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인간 따위가 태양에게 이길 수는 없다. 


몇 시간이 지났을 때는 땀이 촛농처럼 끈적하게 흘러내리고, 내가 태양열에 조금은 녹아버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까지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하며 입에서 침이 흐르려고 할 때쯤,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난다. "살려는 드릴게"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리고 비슷한 간격으로 한 그루씩 서있는 나무가 작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작은 마을의 카페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지치셨다. "더 이상 가는 것은 힘들지 않겠느냐. 내 나이도 있는데....." 아버지는 민증 까기를 시도했으나, 어머니에게 그런 것은 통하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다고, 벌써 그만둬요. 나는 더 갈 거예요." 일단 오렌지 주스를 한잔씩 먹고 생각해 보기로 한다. 아직 어디서 잘지 정하지 않았고, 시간은 정오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양쪽이 말이 없이 지루한 눈치싸움만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현명한 중재자인 나는 2차로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단 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기운을 차리셨고, 우리는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이때 이미 무르자발Murzabal의 알베르게 3인실(49유로)을 잡아 놓은 상태였다. 어머니의 승리는 예견되어 있었다. 이것은 인간이 태양을 이길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이후 계속해서 그늘이 별로 없는 오르막 길이 이어졌다. 누가 정원을 가꿔놓은 것처럼, 나지막한 키에 빨갛고 하얗고 모양도 다른 꽃 들이 즐비해서 눈이 즐겁다. 어머니가 꽃 이름들을 가르쳐 주신다. 제라늄이다. 식물이 아니라 원소기호에서 외웠을 법한 이름이었다. 나는 40대가 되면서 꽃 사진에 집착하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작고 아름답고, 그러나 영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경배이다. 그러나 아직 꽃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못하겠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이 오르막 길은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on으로 이어진다. 이 언덕의 정상에 중세 순례자의 모습을 부식 철판으로 형상화한 핫 스폿이 있다. 누구든 여기서 사진을 찍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어색한 설정 사진, 아버지와 어머니 2019


내리막길을 지나 평지로 들어서면, 한 없이 이어진 보리밭 길이 펼쳐진다. 중간에 또 다른 마을을 지나고, 2시간 만에 무르자발에 도착했다. 지쳤다. 


마을의 입구에 있는 바를 발견했다. 유레카!! 바에서 맥주를 한잔 한다. 아니 두잔 한다. 여기가 천국이다. 옆 테이블에서는 휠체어를 탄 어머니를 모시고 나온 부부가 맥주를 마시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는다.  


미국 영화배우 오웬 윌슨을 닮은 알베르게Albergue Mendizabal의 주인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정말 꼭 닮았다. 저녁식사는 아저씨가 직접 차린 음식으로 프랑스 할머니 2명, 벨기에 아저씨 1명과 함께 먹었는데, 이 여행 최고의 식사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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