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먹고 마시고 걷습니다.
DAY 7 6월 2일 08:00 무르자발Murzabal - 푸엔테 라 레이나 Puente La reina - 로그로뇨Logrono
(7km/도보+76km/버스)
오늘은 휴식 타임을 갖기로 했다. 내일 잘 걷기 위해 오늘 잘 쉬는 것은 베리 임폴턴트. 많이 걸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는 아프지 않게 가야 한다. 아직 남아 있는 생에서 마지막 까지 잘 걷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침 산책 겸 2시간 정도 걸어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알베르게 주인장 아저씨가 잘 차린 아침을 내주고, 집 앞까지 나와 배웅을 해준다. 레이나까지 가는 길은 폭이 좁지만 양쪽으로 나무와 풀이 울창해서 걷기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걷기 좋았다고 느낀 것은 다분히 말랑말랑했던 내 기분 탓이다. 시내에 도착해 정류장을 확인하고 근처 바에서 생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 오렌지 2-3개를 넣고 바로 착즙해 주스 한 컵을 만들어 준다.
이 스페인 오렌지 주스는 정말 정말 정말 맛있다
버스 정류장 표시를 찾아본다. 어떤 버스 정류장들은 지도 앱을 확인하고 찾아가도 표식이 따로 없어서 제대로 온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있다. 나는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고, 각자 다른 언어를 써도 어떻게든 소통이 되었다. 이미 많은 순례객들이 그 근처를 어슬렁 거리고 있다. 다들 "여기 인 것 같은 느낌"으로 모여 있는 상태였지만, 여유로워 보였다. 뭐 시간도 많고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로그로뇨는 꽤나 유명한 관광지고, 우리가 숙소로 잡은 작은 아파트(Apartment logrono Centro, 54유로)는 번잡한 시내 한가운데 있는 빌딩의 2층이었다. 근처에는 맛집으로 알려진 타파스 바들이 즐비하고, 단체 관광객들도 많다. 우리도 오랜만에 관광객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아, 왁자지껄 일주일간의 소회를 나누고 타파스를 이것저것 잔뜩 먹었다.
로마-파리를 지나며 고비가 있긴 했지만, 여행은 매우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10년 전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로 부모님과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이 없었다. 한편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이 길 위에서 서로 거리를 두고 자기 페이스대로, 조용히 자기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셋이 함께 있었고, 또 따로 있었다.
DAY 8 6월 3일 08:00 로그로뇨Logrono - 나바레떼Navarrette (13km/도보)
우리는 대부분의 저녁식사를 간단하게 만들어 먹었다. 알베르게가 아닌 아파트나 펜션을 이용하기로 하면서 이외의 비용은 줄여보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기 위함 이기도 했다. 10유로 정도면 셋을 위한 그럴싸한 저녁이 탄생했다. 아버지는 이번 여행에서는 소주를 끊고 와인의 세계에 발을 들이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저녁 식사마다 와인을 곁들였는데, 1병에 2-3 유로의 테이블 와인이었다. 그러나 플라스틱병에 담긴 작은 소주병들은 여전히 아버지 가방 속이나 식탁 위에서 성스러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를 지나며 스페인 최대의 와인 산지인 리오하Rioja로 들어서게 된다. 식당에서 다양한 음식들과 함께 테이블 와인을 한병 6-7유로에 마실 수 있고 숙성 기간이 오래된 그랑 리제르바Gran Reserva급 와인들도 한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싼 가격에 마실 수 있다. 잘 숙성된 와인과 올리브 절임, 그리고 잘 구워진 빵, 이것 말고 또 무엇이 필요할까. (고추장이다. 고추장이 필수다.)
우리는 이른 오후부터 늦은 저녁까지 여러 식당들을 돌아다니며 올리브가 주가 된 타파스와 함께 와인을 3병이나 마셨다. 한 때 둘도 없는 사이였으나 소식이 끊겼던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난 듯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아버지가 한때 문학청년이었고 대학도 최초에는 국문학과에 진학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가족이 되기 전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이후 우리 셋은 어깨 동무를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어깨를 들썩 들썩 거리며 마을길을 걸어 펜션으로 돌아와 완전히 뻗어 버렸다.
이쯤에서 나는 이 여행을 더 이상 "순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이거 '술'례 아냐?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에 머리가 복잡해 지곤 했지만, 그 길의 끝에 다다르면, "오늘 저녁 뭐 먹지?" 정도의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 길은 일찍 시작되고 일찍 마무리된다.
걷고 먹고 마시고 자고,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 단순하고 강력한 삶의 리듬 안에서 오늘 이뤄야 할 것은 다 이루었다.
DAY 9 6월 4일 나바레떼Navarrette- 부르고스Burgos (103km/버스)
아침 일찍 유쾌한 주인 아주머니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보통 3-5유로인데, 예외 없이 생과일 오렌지 주스와 커피, 토스트가 메뉴로 나온다. 이쯤 되면 순례길 아침식사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 같다. 아주머니는 그 지역 올리브 오일은 세계 최고라며 너스레를 떨고, 우리는 엄지 척을 해주며 아주머니의 흥을 돋웠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지 아직 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버스를 타기로 했다. 혼자 정류장에 가서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돌아와 짐을 챙겼다. 버스는 하루에 4번 다닌다. 시간에 맞춰 부모님과 함께 정류장으로 나갔는데, 1시간 전에 있던 사람들이 여전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알고 보니 한국 사람들이었다. 거의 3시간째 기다리고 있다고 체념한 목소리다. 시간표는 있지만, 버스가 언제 올진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함께 30분쯤 기다리고 버스를 탔다. 운이 정말 좋았다. 시간표에 있는 것과는 다른 버스이지만 지금은 무엇이든 타야 하고,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부르고스까지 가게 되었다. 버스에 자리를 잡고 서둘러 시내 아파트를 예약한다. 이런 즉흥적인 여행은 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불안해서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마에 주름을 늘리고 있었지만, 일주일이 지나고는 그 무계획성을 조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숙소 쪽으로 걸어가며 부르고스 대성당을 지났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마음에 번개를 맞은 것처럼 자리에 서 버렸고 완전히 압도당했다. 우리는 홀린 듯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그 복잡함과 깊이에 다시 한번 놀랐다. 고딕 양식의 이 건축물은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러하듯,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고 첫 삽을 뜬 지 300년 만에 완성되었다.
나는 20대 한 시절 프라모델 만들기에 빠져 있었다. 미동도 없이 어떤 의식을 치르듯 조립 설명서를 펼쳐 놓고 앉아, 세상에서 가장 깨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 숨 쉬는 것도 조심스럽게 '플라스틱'을 사포질하고 있던 내가 있다. 그리고 지금 부르고스 대성당은 아마 신이 인간을 핀셋으로 이용해 만든 광적인 정교함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후부터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그칠 줄을 몰랐다.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우리는 날씨를 핑계 삼아 내일 하루 더 부르고스에 머무르기로 했다.
DAY 10 6월 5일 부르고스Burgos all day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길을 떠나지 않는 느린 아침을 맞았다. 아침을 먹으며 추적추적 빗소리를 들었고, 계획도 없이 창밖을 쳐다보고 앉아 있었다. 10여 일 만에 드디어 주말이 찾아온 것이다.(사실은 수요일이었지만 이미 요일에 대한 감각을 잊었다.) 매일 짐을 꾸리고 새로운 길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무척이나 신나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두려움, 아쉬움 같은 것과 뒤섞여 있었다. 한 없이 게으른 평일 11시였다.
아버지는 2시간째 축구를 보고 있다. 이게 얼마 만에 영접하는 텔레비전인가. 게다가 축구라니. 아버지의 눈은 다이아몬드보다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도무지 '골' 말고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는 시끄러운 해설에 귀가 따가워졌다. 해설자의 입이 선수들의 발보다 빠르게 드리블을 이어 가고 있다. 그리고 정말 골이 들어갔을 때는 골골골골골골골, 그야말로 EDM골잔치가 벌어지는 것이었다.
어머니 말씀대로 '정신 사나운 그놈의 골골골골'에서 탈출 하기 위해 우리는 우비를 입고 집을 나섰다. 부르고스 가로수길을 지나 시내로 나가면 낯익은 브랜드의 상점들과 타파스 바들이 늘어서 있다. 부르고스에서 한국 컵라면을 살 수 있는 슈퍼가 있다는 글을 보고 찾아가 봤다. 나는 오늘 한국 컵라면과 김치를 사서 먹어볼까 생각했지만, 가격 앞에서 바로 생각을 바꿨다. 작은 컵라면 하나에 3유로였다. 지금 여기서 싼 것을 잔뜩 먹고 가자. 그래서 우리는 체리와 아스파라거스를 샀다. 3 유로면 정말 잔뜩 먹을 수 있다.
슈퍼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데, 창문 밖으로 우박이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그 엄청난 소리와 내리는 기세에 주눅이 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슈퍼 처마 밑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이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하늘에서 인간들을 향해 엄청난 양의 비비탄을 쏘아대며 웃고 있는 듯했다. 마치 지구 최후의 날을 맞은 것처럼,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장면 속에 서 있었다.
오늘의 부르고스는 추적추적, 골골골골, 타다다다의 다분히 의성어적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