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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May 10. 2022

'매일'이라는 '매직'에 관하여

오늘 책을 읽다가 (왠지 밝혀야 할 것 같아 쓴다. 정확히는 만화책이다 < 나는 아직 친구가 없어요- 나카가와 마나부>) 만난 문장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요즘 내 인생의 화두이기도 해서일까. 책에서는 '어떤 사상가의 이야기'라고 했는데, 누가 한 말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뭐 누가 했다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무슨 일이든 1분이라도 1초라도 괜찮으니 매일 계속하다 보면 반드시 그 길로 먹고살 수 있게 된다.



17년간 수학교사로 일했던 주인공은 이름도 낯선 <지주막하 출혈> 이라는 병 때문에 생사를 오간 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하고 싶었던 일을 하자고 마음먹는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 뒤로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드디어 단칸방에서 만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것이 행복한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보여준 것처럼 꿈을 이뤘다고 행복한 것 같지도 않다. 먹고사는 일에 대한 비애다. 지긋지긋하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상 내 손으로 일하여 나를 먹일 수 있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9 to 6의 회사생활과 개인 생활을 철저하게 분리한다. 그것도 의미가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내 하루의 일부분을 기꺼이 헌신하는 것이다. 나는 5년 전까지는 일 하는 것이 싫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일을 그만 두면 이런 걸 해야지 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승진해야지', '어떻게 하면 연봉을 더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어떤 벽 같은 것에 부딪혔다. 유리천장 같은 그런 거창한 벽이 아니다. 그냥 하기가 싫어졌다. 사명감 없이 일한 사람의 끝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일에서 맺은 관계들에 대해서도 회의가 생겼다. 사무실에서 일도 잘 풀리지 않았다. 될 데로 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냥 그만뒀다. 빈둥거리기 시작했다. 책 100권을 읽고 인생의 다음 스테이지를 도모해 보려고 했는데, 33권째에 멈춰 버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고 아르헨티나와 페루를 다녀왔다. 코로나19가 시작되었다. 세상이 바뀌었고 나는 다시 집에 처박혔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어떤 포스트는 조회수 1만이 넘었다. 그렇다고 돈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글을 쓰고 글을 읽는 것이 재미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왜 시작했는지는 딱히 기억이 안 난다. 아마 그냥 다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작했던 것 같다. 다시 일을 시작하니 몇 개월은 재미가 있었다. 뭔가 집중할 것이 생기니 생기가 돌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 것이 흥미로왔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뭔가 조금씩 어긋났다.


다시 재미가 없어졌다. 도대체 왜 이걸 하고 있어야 하지? 하는 일들이 많았다.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일을 못하겠다. 10개월 만에 그만뒀다. 그만두면서 그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을 2주 동안 매일 글로 썼는데, 윌라 공모전에 당선이 되었다. 멋진 퇴사 선물이었다.


다시 빈 둥 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산악회에 들어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산행을 갔다. 내가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내친김에 장거리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행 카페에 세계여행 동반자를 구하는 게시물을 올려 보았다. 사람들이 연락을 해 왔다. 또 다른 영역의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몇 마디만 해 봐도 정말 맞지 않는 사람들이 가려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요즘 내가 매일 하는 것은, <달리기+걷기>, <글쓰기>, <도서관 가서 책 읽기>, <넷플릭스/유튜브 보기>, <맥주 마시기>, <레몬 물 마시기>이다. 이것으로 어떻게 먹고살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여기에 '의식적으로', '몰입하여'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집중해서 열심히 하면 뭔가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뻔한 얘기를 하고 싶어 참을 수 없다.



어찌 되었건 중요한 것은 나에게 무언가를 계속 해내고 있는 내면의 힘이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여기서 시작될 수 있다. 게으른 나의 삶을 합리화하기 위해 여러 변명들을 빌드 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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