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내가 브런치에 썼던 FI/RE 경제적 자립과 조기은퇴란 글을 다시 읽었다. 누군가가 어제 라이킷을 눌렀기 때문이다. 글은 계획대로 만 40에 은퇴했다가 다시 취직을 한 것으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후일담을 쓰자면 10개월 후 나는 정말 은퇴를 했다.
이후 6개월은 그냥 책상에 앉아 놀면서 하루를 보냈다. 하루종일 넷플릭스를 보고, 책을 보고, 유튜브도 보고, 오만가지 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그러는 동안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찌들었다. 불안이란 놈이 스멀스멀 일상을 점령하고, 나를 살찌웠다. 고등학교 이후 최고 몸무게로 돌아갔다. 근 30년 만이었다.
새벽까지 밖에서 술을 퍼마신 어느 날, 술병이 제대로 났다. 며칠을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있었다. 두통이 가시고 나자 제정신이 돌아왔다.
아무리 태어난 김에 산다지만, 이렇게 사나?
나는 그때 크게 각성하고 ‘내 다시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지금은 사람이 아닌 채로 살고 있다. 그 후 매일 10킬로씩 걷기 시작했다. 종일 어딘가 걸어 다녔다. 살이 빠진 것은 아니지만, 불안이 조금씩 달아났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삶에 루틴이 생기면서 10킬로를 걷는 것이 너무 지겨워졌다. 10킬로를 빨리 채우기 위해 걷다가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뛰기만 했다.
6개월을 달렸다. 그 사이에 소개팅을 했는데 까였다. 쪽 팔린 김에 식단 조절을 시작했다. 걷기 시작한 후 3개월 동안 꿈쩍도 안 하던 체중이 그다음 3개월에는 6킬로가 빠졌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2킬로가 더 빠졌다. 몸이 곤충처럼 가벼워졌다. 나는 한 마리의 외로운 사마귀처럼 뛰어다녔다.
오랜만에 가벼운 몸으로 술을 마시러 나가려고 신나게 걷다가 발목을 접질렸다. 나는 이미 이 즐거움에 압도되었기 때문에 아픈 줄도 모르고 기분 좋게 마셨다. 다음 날 일어났는데, 발목과 발이 풍선처럼 부어 있었다. 좀 더 부었으면 왼쪽 발을 타고 날아갈 수도 있었겠어.라고 생각했다.
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조급증에 걸린 나는 몇 번을 나갔다가 통증을 느끼며 다시 돌아왔다.
무리해선 안 돼. 쉬어야 해.
나는 또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뛸 때 왼쪽 무릎이 시큰 거렸다. 정형외과에서는 별 이상 없다고 했다. 달리기를 관두고 다시 요가와 걷기를 시작했다. 조금씩 다시 살이 쪘다.
1년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남아도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돈을 쓰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나는 1백만 원이 좀 넘는 월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더 이상 수입이 없는 연금생활자와 같다. 게다가 꽤 많은 돈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활황이었던 2020년에는 여유돈이 좀 되는 것 같은 환상에 빠졌었지만, 시장이 이렇게 절망적일 때는 거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것은 느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당장 죽는다면 내 주식계좌 꼬락서니 때문에 쪽팔려서 어쩌지.
그래서 지금은 안 돼.라고 생각한다. 나는 건강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나는 사실 소설을 써 보겠다고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글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것이 코딩 수업이었다. 출석만 채우면, 수강료는 내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4개월 동안 하루 8시간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공부했다. 이 수업은 출결이 매우 엄격해서, 내가 화면에서 좀 사라지기만 해도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무서운 빅브라더 놈들.
나는 고등학교 때처럼 쉬는 시간에 나와서 라면을 먹었다. 매일 코딩 테스트가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도 이해할 수 없어서 헤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프로그래밍이란 것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리고 꽤 열심히 참여했다. 조금씩 코딩을 하고 문서를 읽는 것이 수월해졌다.
이 수업에 최초 참여한 70명 중에서 40대는 나를 포함해 2-3명 정도인 것으로 보였다. 이력서를 쓰는 법이나 면접 잘 보는 법 같은 강의들이 보충 강의로 딸려 있었다. 취준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며 그들의 고민, 열정, 불안, 희망, 이런 예전의 감정들이 되돌아왔다.
나는 기회가 되면 이 중년 훈련생으로서의 여정을 글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쓰지 않고 있다.
4개월 동안 수업을 들으며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끝나고 나서는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원정 등산을 다니고, 제주도에도 여러 번 갔다가, 일본도 여러 번 갔다가….. 그리고 돌아와서는 다시 공모전 준비를 위해 하루에 5 천자씩 쓰는 일에 몰두했다. 그래서 엉망으로 호러소설 단편을 완성했다. 공모전 당일에 제출을 하긴 했지만, 퇴고도 하지 않고 글자수도 채우지 못한 미완성의 졸작이었다.
나는 또 <겁쟁이 페달>이나 <하이큐> 같은 <피구왕 통키류>의 판타지 스포츠 애니메이션이나 즐겨 보는 주제에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외설적인 로맨스로 한 탕 벌어 보고 싶은 욕망에 휩싸였다. 책상에 앉아 온갖 추잡한 상상을 짜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는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시작이라도 할라치면 계속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시작 부분을 고쳐쓰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또 다른 아이디어가 나왔다. 또 다른 아이디어가.. 이렇게 해서 앞에만 쓰다 만 소설이 쌓이고 있었다. 글을 쓰는 게 맞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싸돌아다니면서 써 재낀 돈 때문에 카드값이 많이 나와서 몇 개월간 주식을 팔아 메꿔야 했다. 이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Upwork(미국의 크몽)에서 찾아 운 좋게 인터뷰를 보고 한 달에 4-50만 원 정도를 버는 글 쓰기 알바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1-2번 글을 의뢰받고 주어진 주제에 대해서 500-2000자의 글을 쓴다. 종종 아니 상당히 많이 ChatGPT의 도움을 받는다. 나는 빙, 노션, 미드저니 등 여타 생성형 AI 들을 잘 활용하고 싶다. 아주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처리하고 나머지 시간을 놀기 위해서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숏츠만 보다가 하루가 다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집에 인터넷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집 바로 앞에 있는 도서관으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이것이 적응되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는 핸드폰으로 밤새워 유튜브를 보다가 그날만 데이터 요금이 5만 원이 나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금은 도서관 시간에 맞춰 하루를 보낸다.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도서관에도 다양한 인간상이 있다. 나는 언젠가 이것도 글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 한 여자에게 꽂혀있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와서는 같은 자리에 성경을 펴 놓고 앉아 있지만, 하는 일은 밖에 나가서 전화하는 것이 대부분인 뽀글 머리의 슬리퍼 신은 아주머니다.
금요일은 도서관이 문을 닫기 때문에 부모님을 뵈러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간다. 이번 주 금요일에 제주도에서 올라온 조카를 데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지점에서 <게임사회> 전시회를 봤다. 조카는 처음 접한 펌프에 미쳐서 발을 구르며 춤을 추며 집에 갈 생각이 없었다. 그 시절의 나처럼.
그리고 함께 교보문고에 들러 벽돌만 한 두께의 <동물의 숲> 일본판 공략집을 사 왔다. 한글을 겨우 깨친 조카는 이제부터 네이버 사전을 참고해 번역을 하면서 공략집을 보겠다고 떼를 썼다. 나는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조카는 일본어라는 것을 처음 보았지만 상관없었다. 동물의 숲에서 평판 좋은 이웃들을 맞이하는 일이 현실에서 친구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은 시간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잘 맞았다. 나도 구마의식 같은 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라틴어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간혹 요즘 어떻게 살아요?라고 물으면, 나는 “쪼금만 먹고살아요"라며 엄지와 집게를 모아 먼지를 잡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쪼금만"과 앞에 보이는 “다소 건강한” 내 육체 사이에서 간과할 수 없는 괴리감을 느낀다. 그 혼란을 틈 타 스몰토크의 현장을 벗어난다.
저번 주에는 함께 코딩을 공부한 청년 동료들과 그룹을 짜서 해커톤에 나갔다. 운이 좋게도 상을 탔다. 오랜만에 3일 밤을 자지 않고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컨디션을 잘 유지해 온 것은 이럴 때 도움이 된다. 해커톤에는 전 세계 해커톤을 쫓아다니며 상금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삶에는 여러 방식이 있고, 돈을 버는 방법도 한 백만 가지쯤 될 것이다.
은퇴 후 1년 8개월이 지났다. 나는 최소한의 소비만을 하며 살고 있지만, 경험의 크기만큼은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 세상은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들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나는 더 많이 읽고 보고 먹고 걸어 다닐 생각이다.
Photo by Towfiqu barbhuiy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