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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Jun 17. 2024

폭설이 내린 도깨비마을

화이트 테라피


노보리베츠 온천행 표를 기계에서 뽑았다. 도난버스를 타고 20여 분을 달려 종점인 도깨비 마을, 지옥 마을, 아니, ‘노보리베츠 온천마을’에 내렸다. 숙소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 미끄러운 눈길에서 몇 번이고 뒷발이 미끄러지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온천 호텔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오유누마 천연족욕탕이다. 이곳이 ‘지옥계곡’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화산 가스가 분출되며 유황 냄새가 가득하기 때문에 마치 ‘지옥 풍경’ 같다는 이유 때문이다. 도깨비마을 노보리베츠의 도깨비는 (험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착한 도깨비이다. 사람들의 행복을 빌어주고, 불운을 쫓아주는 도깨비로 통한다. 그해 홋카이도에는 최고 2미터가 넘는 폭설이 왔다. 특히 노보리베츠는 도심이 아니기 때문인지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차량이나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눈을 밀어놨는데, 길 옆에 쌓인 눈이 눈으로 된 견고한 성벽 같다. 오유누마 천연족욕탕으로 올라가는 길. 미끄러운데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따라서 가다보니, 지척에 있는 거리도 멀게 느껴졌다. 나무다리를 넘고, 숨을 고르다보니 누구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이 펼쳐졌다. 유황 냄새가 먼저 코끝을 자극했다. 유황 연기가 피어올라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폭설이 내린 이후라서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더 높이 올라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천연족욕탕에 발을 담그고 설산을 감상하며 머물 수 있는 한 오래 머물렀다. 







설산을 내려오니, 눈이 녹아 물기를 머금은 옷가지가 축축하다. 옷가지를 대충 말리고, 예스러운 나무 욕조에 담긴 뜨끈뜨끈한 온천물에 지친 몸을 풍덩 담그니 피로가 싹 가신다. 노천탕에서 머리 위로 하늘하늘 가루눈이 내리더니 온천의 열기에 금세 녹아버린다. 눈을 감고, 설산을 바라보며, 까무룩 선잠이 들기도 했다. 코로 들이쉬는 청량한 공기로 폐가 깨끗하게 씻기는 듯하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중략)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유황 연기가 깔려 있는 순백의 설원, 폭설이 내린 후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 뽀드득 뽀드득 발자국 하나 없는 눈 위를 산책하던 일. 지금도 폭설이 내린 그날을 생각하면, 백석의 시처럼 또 다시 머리 위로 푹푹 눈이 나린다. 눈이라면 원 없이 보고 온 듯한데, 그런데도, 느린 속도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언제보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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