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나지 않기로 결정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에 태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아마도 노란색 때문인 게 분명했다. 아니다. 파란색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할까. 파란색이라기엔 누르딩딩한, 그래, 노란색이라는 불순물이 섞여버린 타락한 파란색인 초록색 때문이다. 세상은, 지독스럽게 초록색이다.
"356413678번, 앞으로."
수감 번호. 저자는 어떻게 저 숫자를 한번도 틀리지 않고 부를 수 있는 걸까. 매번 신기하게 여기면서 한발 앞으로 디뎠다.
"출생 번호 356413678번. 왜 이렇게 행동이 굼뜨지?"
미간에 잗주름이 잡히는 걸 느끼면서 간수를 노려봤다. 수감 번호가 아니라 출생 번호? 혀를 끌끌 차는 저자를 세차게 밀치고 철문을 향해 곧장 줄행랑을 놓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 철문이라는 게 있기라도 한다면 정말 그렇게 하고도 남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456413678번이 팔꿈치로 등을 쿡 찔렀다. 아프지 않았지만 은근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 의도는 너무나 명확했다. 더 이상 개기지 말라는 의미렸다.
주변에는사람이 현저히 많았다.그러니까, 동그란 뒤통수와 앞 얼굴 외에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실내인지 실외인지, 규모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아, 바닥은? 바닥은 존재하는가. 물론 두 발이 혹은 네 발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뭔가를 딛고 있으니 바닥은 존재하겠지. 암, 그건 분명하다. 팔꿈치에 찔린 등허리를 슬쩍 문지르던 중에일순간 몸이 추락하여 허우적거리는 몸짓이 상상되자 뒷목이 뻣뻣하게 경직되는 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사물이라고 할 만한 건 구름이었다. 구름은 순식간에 응집되었다가 흩어지고 부풀었다가 비틀리며 일정한 모습을 갖추지 않은 생물에 가까웠지만 생명체의 온기가 전혀 없어서 무생물이라고 보는 게 타당해 보였다. 말랑한 마시멜로의 촉감을 기대해봤자 한기가 드는 은회색만이 실재할 뿐이다. 주어진 번호대로 줄을 서서 태어나기 전에 훈련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헤아려 보려다가 관두었다. 속이 메스꺼워졌다.지난 생애에 7년을 겨우 채웠다. 한여름 밤을 시끄럽게 하는 매미의 삶이었다.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매미일 때 양쪽 날개를 하나씩 쥐어뜯던 일곱살짜리 고문 전문가가 생각나선 아니다. 다시 태어나는 게 죽기 보다 싫기 때문이다. 침은 계속 흘러가 구름에 더해져 물이 되었다. 세상의 순환이모두 저런 것.
눈을 떴다.익숙한 침대였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뻐끔 벌렸고, 입 밖으로 말이 흘러 나왔지만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따뜻한 품, 나를 안고 있는 한사람은 아기가 옹알이를 한다고 기뻐하는 중이었다. 그것이, 지극히 기쁜 일인가.
-2화에서 계속
�호림만의 색다른 컬러 강연/전시�
컬러 강연이 재밌다는 후기들이 감사하네요:D
컬러를 주제로 여행, 글쓰기, 심리, 퍼스널컬러, 역사 등 다양한 주제로 호림만의 색다른 강연을 선보여요❣️
- 2023 세종도서 교양 부문 선정
- 2023 약 8주간 여행 부문 베스트셀러
- 2023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있는 책 선정
- 2024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있는 책 선정
호림은?
J컬러소통연구소 대표로 색채심리상담사 1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여행이 가진 색깔들로 테라피합니다. <모든 여행이 치유였어1>, <모든 색이 치유였어2>를 썼습니다. 15년간 베테랑 기자로 일을 하면서 300명에 달하는 CEO들을 전문적으로 인터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