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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Nov 10. 2021

뭉쳐야 산다 – 서로 체온을 나누는 동물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해하는 이를 냉혈한(冷血漢)이라고 합니다. 반면 어떤 대상에 대해 마치 타는 듯한 강렬한 열정을 지닌 이들을 ‘열혈한(熱血漢)’이라고 하고요. 이런 느낌은 문화권이 달라도 마찬가지여서, 영어의 cold blood는 ‘냉혹한’이라는 뜻이며, hot blood는 작은 일에도 쉽게 끓어오르는 ‘다혈질’의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입니다. 개인의 성격을 피의 온도에 견줘 표현하는 말이 흔히 쓰인다는 건 체온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가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뜻한 피는 온기와 열정과 너그러움으로, 차가운 피는 한기와 단절과 냉정함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느낌 말입니다. 






정상 체온 및 체온 유지 방법은 동물 종마다 다르다


이런 보편적 정서는 다른 동물들에게까지 확장됩니다. 혀를 날름거리는 뱀을 냉혈한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떠올리고, 포효하는 사자를 열혈한의 상징으로 흔히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지요. 하지만 체온을 기준으로 동물을 온혈동물과 냉혈동물로 나누는 분류법은 과학적으로는 그릇된 접근입니다. 온혈동물의 피가 늘 따뜻한 것만은 아니며, 더더군다나 냉혈동물의 피가 늘 차가운 것도 아닙니다. 대개의 동물들은 종마다 정해진 범위의 체온을 유지합니다. 사람의 경우 정상 체온은 36.5±1℃ 내외인데, 체온이 38℃ 이상으로 올라가거나 34℃ 이하로 내려가면 고열과 저체온증으로 인한 이상 증상이 나타나며, 이를 방치할 경우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동물 종에 따라 정상 체온의 범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일정 범위 내로 체온조절(thermoregulation) 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견딜 수 있는 체온의 범위를 벗어나면 다양한 신체 반응을 조절하는 효소의 기능이 떨어지고, 세포막의 유동성이 변화되어 물질 교환 양상이 달라지며, 생존에 필수적인 생화학적 기능이 저하되는데, 이 상태가 지속되면 더 이상 생존이 어려워지니까요. 따라서 동물들은 저마다 체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여러 진화적 전략을 구축해왔습니다. 체내의 물질대사 시스템을 이용해서 스스로 필요한 열을 만들어내는 내온동물(endotherm)과 체온 유지에 필요한 열을 외부환경에서 공급받는 외온동물(ectotherm), 주변의 온도에 맞춰 체온을 변화시켜 에너지 효율을 높인 변온동물(poikilotherm), 기온에 상관없이 일정한 체온을 유지해 활동성을 높인 항온동물(homeotherm) 등으로 말입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인간은 내온성 항온동물입니다. 흔히 항온동물은 내온성이고, 변온동물은 외온성인 경우가 많기에 이들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심지어 각각의 대립 상태가 배타적인 것도 아니구요. 예를 들어 새들은 내온성 항온동물이지만, 날이 추워지면 날기 전에 마치 외온동물처럼 햇빛을 등지고 서서 몸을 따뜻하게 데운 뒤에 날아오르곤 합니다. 동면 중에는 체온을 거의 빙점 가까이 떨어뜨리는 다람쥐는 내온성이기는 하지만 변온동물의 특성을 갖습니다.


반면 열대의 바다에 사는 해파리들은 비록 변온동물이지만 주변의 환경이 안정적이기에 일평생 체온의 변화가 거의 없는 항온성 상태를 유지하며, 심지어 차가운 바닷물 속에 사는 장수거북은 비록 외온성이기는 하지만 주변 온도에 비해 체온을 약 15℃ 이상 높은 상태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항온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장수거북이 ‘따뜻한 피’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그 어마어마한 몸집 때문입니다. 장수거북은 이름 그대로 수명이 매우 긴 동물이며, 다 자라면 몸무게가 700kg에 달할 정도로 체구가 어마어마합니다. 이렇게 큰 몸집은 그 자체로 열을 가두는 단열 기능을 보유하게 됩니다. 이는 간단한 수학적 결과입니다. 몸길이가 2배 증가하면 체표면적은 4배, 체구는 8배 증가합니다. 따라서 몸집이 클수록 부피당 체표면적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단 한번 몸이 따뜻해지면 쉽게 식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을 ‘거대항온성’이라고 하는데, 과학자들은 이에 근거해 이전 세기 ‘냉혈동물’로 알려진 공룡의 상당수도 ‘온혈동물’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공룡의 커다란 체구는 그 자체로 훌륭한 열 보관소였을 테니 말이죠. 





몸집이 크면 체온을 유지하기가 더 쉽지만…


이 거대항온성 덕분에 몸집이 크면 클수록 열을 저장하기는 쉽지만, 그만큼 열을 발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몸집 크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코끼리들은 진화 과정에서 털을 탈락시켰습니다. 이전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털은 매우 효율적인 단열 기관이어서 체온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내온성인데다가 덩치가 커서 거대항온성까지 갖춘 코끼리의 경우, 털은 보온의 도구가 아니라 열사병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코끼리의 피부에서는 털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늘 몸에 진흙을 발라 이들이 마를 때 필요한 기화열을 제공하여 체온을 식히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몸집이 클수록 체온을 유지하기 수월하다는 것은 반대로 몸집이 작을수록 체구 대 체표면적의 비율이 커져서 체온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작은 동물일수록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먹어야 합니다. 코끼리는 하루에 건초를 100kg씩이나 먹는 대식가이지만, 체중이 5톤 가까이 나가는 것을 감안한다면, 체중의 2% 정도만을 먹는 셈입니다. 몸집이 작은 생쥐는 하루에 3-4g 정도의 먹이만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생쥐의 몸무게는 30g 남짓에 불과하기에, 생쥐는 하루에 제 몸무게의 10~15%에 달하는 먹이를 먹는 셈입니다. 이렇듯 작은 동물은 체온 유지를 위해 많은 먹이를 먹어야 합니다. 








추운 겨울을 나는 펭귄들의 허들링


먹이가 풍부하고 기온이 따뜻한 시절에는 큰 상관이 없지만, 먹이도 부족하고 날도 추워지는 겨울이 오면 작은 생물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추워질수록 한데 모입니다. 작은 체구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한데 모여 커다란 무리를 이루며 거대항온성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런 동물들의 대표는 단연 펭귄입니다. 황제펭귄은 짝짓기를 한 뒤 암컷은 알을 낳고 먹잇감을 찾아 바다로 떠납니다. 그 사이 수컷은 남아서 알을 넓적한 발 위에 올리고 배 아래 늘어진 알주머니로 알을 덮어 따뜻하게 품고 무려 115일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버팁니다. 이 시기는 추운 남극에서도 유난히 더 추운 겨울이라 외부 기온은 영하 45~50℃까지 내려가고 시속 160km에 달하는 칼바람이 부는 혹독한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36℃에 달하는 체온을 유지하면서 넉 달 동안 버티는 것은 무리 같지만 황제펭귄은 긴 세월 동안 이를 묵묵히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황제 펭귄과 새끼

이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집단적 거대 항온성입니다. 수천 마리의 황제펭귄들은 좁은 지역에 빽빽하게 모여들어 서로 몸을 밀착시켜 온기를 유지합니다. 펭귄이 이렇게 모여 있는 것을 허들링(huddling)이라고 합니다. 허들링이 잘 된 펭귄 집단의 가운데는 가만히 있어도 후끈할 정도의 열기가 유지됩니다. 물론 가장자리는 여전히 춥습니다. 그대로 있으면 가장 바깥쪽의 펭귄들이 추위를 이기지 못해 쓰러질 것이고. 그럼 허들링 집단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 열을 보존하기가 더 어려워질 겁니다. 그래서 펭귄들은 마치 끊임없이 돌아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이동해가며 안팎으로 움직여 체온을 나누며 혹독한 겨울을 버텨냅니다.


펭귄이 허들링을 하는 것은 단지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허들링은 이 시기 펭귄들의 절대적 생존 전략입니다. 과학자들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남극의 환경에서 넉 달 동안 체온을 유지하고 버티기 위해서는 약 25kg 이상의 지방 조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각각의 펭귄들이 체내에 저장할 수 있는 지방의 최대량은 20kg을 넘지 못합니다.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이들은 절대로 겨울을 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펭귄들은 허들링을 통해 체온을 나누면서 에너지를 절약합니다. 허들링은 펭귄의 신체대사 효율을 16% 이상 증가시키기에, 비록 기진맥진해지더라도 겨울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킹펭귄 새끼들의 허들링 by David Stanley, CC BY 2.0 / Wikimedia Commins






날갯짓하며 온기를 나누는 꿀벌들


꼭 내온성 동물만 거대항온성을 유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온성 변온동물인 꿀벌은 겨울이 되면 벌집 가운데로 모여서 열심히 날개를 떨어댑니다. 날개의 떨림은 열을 발생시키는데 이들이 한데 모여 있을수록 열손실이 적어 높은 온도를 더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깥이 영하로 내려가는 한겨울에도 벌집의 한 가운데는 32℃의 한여름 날씨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꿀벌들도 펭귄들처럼 순서를 지켜 한동안 가운데에서 꿀을 빨며 온기를 즐기다가도 순서가 되면 바깥쪽에 있는 동료들과 자리를 바꿉니다. 온기는 나눌수록 커지는 법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기라도 하는 듯 말이죠.



팬데믹의 영향으로 비대면이 일상화된 2021년, 어찌보면 사람들과의 소통은 더 쉬워졌습니다. 전화로, 메신저로, 영상으로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니까요. 하지만 소통이 쉬워졌다고 해서 외로움이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체온 조절이론을 정립한 한스 이저맨 박사는 내온성 항온동물인 호미닌(인류의 조상)의 진화사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기록이라 주장합니다. 혹독한 세월 동안 우리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서로의 체온을 나눠주며 함께 협동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우리 유전자에는 수백만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아로새겨진 온기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인간은 외로움과 추위를 제법 훌륭하게 견뎌낼 수 있지만, 시련을 견뎌내는 것만이 미덕은 아닙니다. 애초에 시련을 피할 수 있거나 시련을 겪으며 서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게 있다면 말입니다. 함께 나누는 온기는 외로움과 추위를 훨씬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당신의 체온이 36.5도로 유지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참고문헌

- 캠벨 생명과학 제 11판, 켐벨 외 지음/전상학 외 옮김, 바이오사이언스출판, 2019

- 따뜻한 인간의 탄생-체온의 진화사, 한스 이저맨 지음/이경식 옮김, 머스트리드북, 2021

- 인체해부생리학, David Shier 지음, 한국약학교육협의회 병태생리학분과회 옮김, 라이프사이언스, 2020

- ‘멍~ 때리는 동물?’ 파충류는 억울해, 박진영, 동아사이언스 201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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