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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원 Mar 27. 2021

돈도 안 되는 거 왜 해요?


 회사 동료들과 담배 피우러 나가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 나눌 때.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면, 엄청 오바하면서 무슨 신기한 동물 쳐다보듯 본다. 그리고 묻는다. "도 안 되는 거 왜 해요?" 이런 말 들을 때마다 깊은 빡침과 함께, '쳐 제발.. 너 보라고 쓰는 거 아냐...'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위해 웃으며 '그냥 좋아하는 취미'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속으로 사회생활 단어를 만트라 처럼 외우며 깊은 빡침을 달래고 있을 때. 돈도 안 되는 거 왜 하냐고 묻는 사람들은 꼭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요즘엔 유튜브 같은 걸 해야 돈을 벌지. 나도 유튜브나 해볼까?ㅎㅎ" 

  

 자주 듣는 얘기다 보니 이젠 그러려니 한다. 예전엔 이렇게 말하는 상대방의 좋아하는 게 뭔지 물어보고, "그거는 왜 좋아하세요? 돈도 안되는데?" 하고 웃으면서 꼽주기도 했지만. 부질 없다. 이런 질문을 하는 상대가 좋아하는 거라곤 대부분 술, 담배, 유흥, 스포츠토토 같은 거라 그냥 요즘엔 말을 아낀다. 교훈도 없고 재미도 없는 사람들이랑 말싸움해서 뭐하나.  




 그래도 세상에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없다. 공자님 말씀에, 내 앞에 세 명이 걸어가고 있으면, 그중 한 명에겐 반드시 배울 점이 있다고 했다. 이 질문듣고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나를 돌아보게 만들어줬으니 어쨌든 의미가 있. 이 '돈도 안 되는 거 왜 해요?' 라는 물음에, 나는 '그냥 좋아하는 취미' 라고 답했지만 정확하진 않다. 진짜 나는 돈도 안 되는 거 왜 하지?


 내 경우 브런치로 예를 들면, 브런치에 올리는 글 한 편당, 보통 A4 용지 1장~1장 반 정도 쓴다. 글에 대한 주제 선택이나 구성을 다 해놓은 상태라고 치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한 번도 안 일어나고 스트레이트로 써도 평균 3~4시간 걸리는 것 같다. 구성까지 포함하면, 한 5시간 걸리는 것 같다. 나는 글 쓰는 게 느리다. 약 5시간이라는 많은 시간을 쓰고 얻는 것은, 나만의 에세이 한 편을 썼다는 뿌듯함.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 좋은 문장을 썼을 때의 기쁨. 하지만 자본주의적 개념으로다가 보자면 내가 쓴 글은, '리소스는 많이 들어가는데, 아웃풋이 적은 일'  것이다. 회의 시간에서 맨날 듣는 지겨운 말.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종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 미술, 체육, 문학, 언어, 종교 등등. 내 경우는 글쓰기였다. 대학을 다닐 때, 학교에서 하는 문학공모전에 참가했었다. 시를 제출했었는데, 장원이 됐다. 살면서 처음으로 1등이란 걸 해봤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글'이라는 걸 깨달았다. 글에 대한 자신감 조금 생겼다. 누군가 "뭐야 신춘문예 등단한 것도 아니잖아." 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당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재학생들 중에서, 그해에 시는 내가 제일 잘 썼다는 인정이었으니 기분 좋았다.

 

 나는 감정 기복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데 소설, 시, 수필에서, 내가 절대 떠올리지 못할 것 같은, 신선하고 좋은 문장을 볼 때면, 정말 그 작가에게 너무 질투가 나고, 그런 문장을 생각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다. 얼른 집으로 달려가 나만의 좋은 글을 쓰고 싶어 진다. 근데 문학 말고 다른 어떤 것에서도 나는 이 정도의 큰 감정적 동요를 느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거는 내가 진짜 좋아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정말 좋아하고, 가장 잘하는 것에 매달리게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더 좋아하게 되고 더 잘하게 되는 것.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예로든 감정 기복과 그 이후에 생기는 무엇이든 쓰고 싶은 마음 말고는,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다행히도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마음은 나 혼자만 갖고 있는 게 아닌 듯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도 이런 글을 썼다.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당연히 나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김연수 작가를 질투다.




 결국,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쓴다. 돈 벌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글만 써서 먹고 살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글로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돈은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일을 해서 벌면 된다. 물론 나도 돈 많이 벌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 잘 쓰는 부자'가 되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은 건, 글 쓸 시간을 많이 갖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것 말고는 별로 바라는 게 없다.


 "돈도 안 되는 거 왜 해요?" 라고 묻는 사람들은 비웃겠지만. 비웃 수도 있지 뭐.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라고 말했던 윤동주 처럼, 돈 안 되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방망이 깎는 노인 처럼. 독 짓는 늙은이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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