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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원 Mar 24. 2021

나도 나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최근 이별한 친구와 긴 대화를 나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친구에게 위로가 될만한 얘기를 했다. 그 친구는 대화 후 기분이 나아졌다며 연신 내게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자, 나는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꼈다. 우울해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나 자신도 잘 모르겠는, 지금 이 마음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얼른 핸드폰 속 연락처들을 훑어봤지만.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나는 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전화를 받자 나는 내게 말했다. '나도 나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나는 너무 좋은 친구다. 좋은 친구였던 예를 들자면 너무 많아서, 한 문장으로 줄이자면. 나는 친구들을 '배려'했다. 여기서의 배려란 정신적, 감정적인 부분에서의 배려다. 내 생각에 배려는, 상대적으로! 타인 보다 정신적, 감정적인 부분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를 '배려해줄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앞에 문장에서 '배려하는'이 아닌 '배려해줄 수 있는' 이라는 표현을 썼냐면. 배려는 내게 해달라고 요청한다고 해서 상대가 바로 짠하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려는 당하는 거다. 상대가 해줘야지만 받을 수 있다.  


 친구들이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다고 찡찡대려는 게 아니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지금 내게 적지만 친구들이 남아있는데도, 나를 배려해줄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는 거다.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 내 상황을 대입하면, 나는 살아오는 동안 나를 배려해줄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도 선택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든다.




 '니가 그 정도 사람이니까 주변에 그런 친구들밖에 없나 보지.' 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아니다 할 말 있다. 그러면 날 배려해줄 수 있는 친구는 아니더라도, 나랑 비슷한 배려의 정도?를 가진 친구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니가 니 친구들 사이에서 유치한 정신적 우월감 느끼고 싶어서, 너보다 정신적으로 떨어지는 친구들만 사귄 거 아냐?' 라고 말한다면. 이건 확실히 아니다. 나는 내 친구들을 정말 좋아한다. 친구의 어떤 한 부분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 친구의 전부를 싫어하진 않는다. 친구에게 내가 원하는 부분이 없더라도, 친구는 분명한 장점들이 있고 그 장점들을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애초에 친구를 골라서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니가 착한 아이 컴플렉스 아냐?' 이것도 확실히 아닌 게. 나는 친구들에게 착하지 않다. 오히려 안 친한  사람에게 더 예의 차리는 편이다.

  



 살면서 경험한 바로는. 정신적, 감정적으로 많이 가진 사람들. 그리고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그 숫자적었던 것 같다. 따라서 타인 보다 민감하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소수인 타인 보다 민감한 사람들이 이해 받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일단 그들이 소수인 타인 보다 민감한 사람을 만날 일이 적다. 그리고 민감하지 않은 다수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사회에서, 민감한 사람들은 주류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민감하지 않은 척 하거나, 자신의 그런 성향을 바깥으로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너만 힘들어?', '또 너야?', '왜 너만 난리야' 등의 말들로 어렸을 때부터 선행학습 했을테니까. 그리고 민감한 소수의 사람들을 무시해버리고 민감하지 않은 자기들끼리만 놀아도 놀 사람 많으니까. 충분히 이해한다. 나 같아도 괜히 예민하게 구는 것 같고 귀찮은, 민감한 사람들에게 굳이 신경 쓰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들은 '타인 보다 민감한' 것이 무엇인지 모를 테니까.


 내가 나를 배려해줄 수 있는 '타인 보다 민감한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 것도,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이런 타인 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혼자 있는 상태가 익숙할 수도 있다. 혼자서도 너무 잘 살아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걸 수도 있겠다. 이젠 나도 혼자서 잘 지내는 편이니까. 정말 아주 가끔 우울할 때 빼고.




 "어두운 시절에 남이 내 곁을 지켜줄 거라 생각하지 말라. 해가 지면 심지어 내 그림자도 나를 버리기 마련이다."


 너무 멋진 말인 거 알겠는데. 구원은 셀프고, 나만의 십자가가 있고, 인생은 혼자고, 세상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 다 알겠는데.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짊어진 십자가는 짊어진 거고, 가슴 속에 이루지 못할 꿈 몇 개 가지고 있는 것도 괜찮지 않나. 서로를 배려해줄 수 있는 친구. 타인 보다 민감한 사람을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할 거다. 이런 희망도 없으면 살기 너무 팍팍할 거 같다. 그런데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로해주지? 아직 나 같은 친구를 못 찾았다고. 좀 더 외로워 하라고. 다시 내게 전화를 걸어 알려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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