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원 Oct 15. 2020

코로나 시대의 사랑


 "만나지도, 본 적도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누군가 이 질문을 20대의 내게 했다면, 나는 뭐 그런 뻔한 걸 묻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사랑할 수 있다." 고 확신을 담아 답했을 것이다. 그 당시 내가 그러했으니까. 나는 최승자 시인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1981)'을 읽고 난 뒤 그녀를 사랑했다.

 대학시절 기숙사, 자취방, 고시텔, 고시원 등으로 잦았던 이사에서도 ‘이 시대의 사랑’은 살아남았다. 시집을 매일 같이 읽진 않았다. 하지만 제목이 쓰여진 책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얻곤 했다.

 이제 30대가 된 내게. 만나지도, 본 적도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냐고 다시 물어본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이젠 마스크를 쓰는 게 어색하지 않고 QR코드도 빨리 찍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타인과의 만남 자체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줄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자연스럽게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데 막상 내가 나를 생각하는 일이 어색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나와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나 자신의 대해 생각하는 당연한 일이 어색한 이 모순적인 상황. 나는 왜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면서 나의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했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외모도 훌륭하고, 각자의 인생도 잘 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외모도 별로고 인생도 잘 살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비루한 내 모습과 삶에 대해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대신. 멋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과 나를 동일시 하려 했다. 사람과 오래 같이 산 원숭이가 자신을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20대 때 나는 만나지도, 본 적도 없는 사람을 사랑했다. 그러나 매일 만나고, 매일 보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받기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외적인 것 외에도 정신적인 이유도 있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생각할 때도 거리를 두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게 쿨한 것이라 여겼다.

 외적인 부분에는 정말 전혀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이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정신과 내면 세계에 더 몰두했다. 그래서 나는 최승자 시인의 글 만을 보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으리라.




 사회적으로 모임 자체도 줄었지만, 가고 싶지 않은 자리에는 코로나 얘기 살짝만 꺼내도 안 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사람들을 안 만났는데도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는다. 익숙해진 것 같다. 코로나를 겪다 보니, 사람에게 인간관계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면서, 나도 별수 없이 어색했던 나와 친해지고 있다. 여유로워진 일상을 혼자보내익숙한 이 새롭게 보였다. 좋아하는 것도 더 생겼다. 내 외모를 내 마음에 들게 바꾸는 일도 해봤다. 마음속에서 오래 잊고 지냈던 것들을 돌아보기도 했다. 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이라는  알았다.


 나와 친해지자 나는 나를 더 받아들이게 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라는 구절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변했다. 코로나로 인해 생활환경이 변했고, 30대가 되면서 육체도 변했다. 정신도 중요하지만 그걸 담고 있는 몸도 중요하다는 걸 이젠 안다.

 내가 갖고 있는 외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이 좋지 않은데 나를 사랑하라고 계속 요구하는 것은 어렵다. 물론 정신적인 성숙 없이 물질만 있다면 그것도 진정 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어렵겠지만.

 내게 코로나 시대는  사랑하게 만드는 시대 같다. 유치하지 않은 자기애를 만들고 정신과 물질이 조화로지는 시. 그렇게 나 자신을 조화롭게 사랑할 수 있다면  다른 이 또한 조화롭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나와 나 사이, 나와 타인 사이. 아무도 상처 받지 않는 아름다운 거리두기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제 30대이며, 코로나 시대의 한 복판을 지나고 있는 내게. 만나지도, 본 적도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사랑할 수 없다"고 답할 것이다.


 대신, 매일 보고, 매일 만나는 사람을 매일 새롭게 사랑려 한다고 말할 것이다. 나이 들어 한결 부드러워진 눈빛과 미소를 지으며.



이전 04화 나도 나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