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원 Aug 25. 2019

양조위의 눈빛 같은 것


 누군가 "홍콩 영화 중에 어떤 영화를 제일 좋아해?"라고 묻는다면 숨도 쉬지 않고 ‘중경삼림.’ "그럼 홍콩 배우 중에 누구를 제일 좋아해?"라고 묻는다면, 주성치와 잠깐 고민하겠지만 결국 말할 것이다. ‘양조위.’




 중경삼림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때였다.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중경삼림의 개봉은 1995년. 당시 나는 6살이었으니 중경삼림을 극장에서 본 세대보다 뒷 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학생 때, 나는 형과 같이 영화를 많이 봤다. 나와 형은 비슷한 점이 거의 없었다. 좋아하는 것부터 싫어하는 것까지 모든 게 달랐다. 하지만 한 가지는 비슷했는데 둘 다 영화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아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영화를 좋아했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를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집에 컴퓨터가 1대밖에 없었기 때문에. 형은 나보다 월등히 많은 시간 컴퓨터를 사용했다. 하지만 혼자서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에게 눈치가 보였을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그는 ‘동생과 함께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 좋은 형’의 모습을 선택한 것이리라. 형 입장에서는 컴퓨터의 소유권을 계속 가질 수 있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게 되면 좋고, 부모님에게는 동생과 같이 좋은 영화를 보는 우애 넘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컴퓨터 독과점에서 오는 비난의 눈초리도 피할 수 있으니, 1석 3조에 안 할 이유가 없는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덕분에 많은 좋은 영화를 보게 되었으니 형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당시의 한참 느린 인터넷으로 장장 1시간여에 걸쳐 다운 받은, 지금 보면 촌스러울 UI의 곰플레이어로 중경삼림을 틀었다.




 영화의 초반부는 훌륭했다. 리즈 시절 금성무의 얼굴 조각 같았다. 그리고 그가 연인과 이별한 지 한 달째 날의 유통기한을 가진 통조림을 사 모으며 말했던.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다면 내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라는 대사는 20대 내내 연애 할 때마다 되뇌었을 정도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경찰 제복을 입은 양조위가 카메라로 다가오며 모자를 벗고 그의 눈빛을 보여줄 때. 알았다. 이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양조위의 눈빛은 금성무의 잘생긴 얼굴을 잊게 만들었다. 훗날 어떤 여자들이 ‘나는 양조위를 좋아해’라고 말하면 이해했다. 그는 남자인 나도 반할만한 눈빛을 가졌으니까.


 영화의 마지막. 왕페이가 냅킨에 다시 비행기 티켓을 그려주며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묻자, ‘아무 데나,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라고 말하며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양조위의 눈빛보며. 느꼈다. 이 영화와의 사랑은 오래갈 거라는 걸. 그리고 그 사랑은 애증이라는 것도.

 중학교 때 중경삼림을 처음 본 이후로 다시는 중경삼림을 보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은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나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걸 좋아하지 않아.’라고 합리화했다. 그리고 오늘 유튜브에서 우연히(유튜브에서 우연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 중경삼림 OST 인 ‘California Dreaming’을 듣게 되었다. 뮤직비디오로 중경삼림의 영상이 나왔다. 양조위가 카메라로 다가오며 모자를 벗었다. 24년이 흘렀지만 그 눈빛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순간 왜 중경삼림을 다시 보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그 눈빛은 재능이었다. 그 눈빛은 재능이었다. 글자 하나 안 바꾸고 두 번 써서 강조할 정도로, 그것은 재능이었다. 삶을 귀찮아하지 않는 재능. 무엇이 다가오든 버텨내고야 말겠다는 의지. 그 눈빛은 그걸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게 없는 재능이었다. 중경삼림 속 양조위는 마치 나와 다른 종(種)의 인간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나보다 우월하게 느껴졌고 또 그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재능은 잔인하다. 살면서 재능과 마주쳤을 때는 항상 잔인했다. 나와 달리 아무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형의 재능이 잔인했고,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3번째 떨어지던 겨울이 잔인했고, 서울예대 입시 시험장에서 만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의 모습이 잔인했다.


 모든 걸 준비하려 했던 면접. 계절감을 맞춰야 할까 고민하다 계절감도 맞췄지만, 정작 원하는 것을 몰라 헤맸던 면접. '열심히 하는 걸로는 부족합니다.’라고 돌려 말하는 면접관 말에, '그럼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묻지 못했다. '너는 재능이 없다.'라 말까 봐. 모든 것을 준비하다 어느 하나 잘하는 게 없었던 날. 그렇게 재능과 마주칠 때면 내게 없는 그 재능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그래서 내가 먼저 포기했다. 포기는 귀찮음으로 포장했다. 누군가 왜 그만뒀냐고 물어보면 귀찮아졌다고 말했다. 포기가 계속되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삶이 정말 귀찮아졌다. 하지만 양조위의 눈빛은 여전히 삶을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그 눈빛은 잔인한 재능과 마주치더라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California Dreaming’에서 양조위가 나오는 장면을 계속해서 돌려봤다. 양조위가 걸어온다. 모자를 벗는다. 머리를 쓸어올린다. 왕페이를 바라본다. 몇 번을 봐도 멋있는 등장 씬. 보다 보니 양조위가 참 젊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검색해보니 중경삼림을 찍을 당시 양조위의 나이 서른 넷이었다. 서른넷. 지금 나보다 겨우 세 살 많은 나이. 서른넷이 되면 나도 저런 눈빛을 가질 수 있을까. 내 삶을 귀찮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잔인한 재능이 닥쳐와도 버텨낼 수 있을까.

 영화 마지막. 양조위는 '아무 데나,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라고 말한다. '아무 데나' 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 아무 데나에서도 자신의 삶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낼 것 같다. '당신이 원하는 곳'은 내 것을 포기하고 귀찮아 하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른 것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지 않을까. 어디에서든 내 삶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가장 미워하는 것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나는 내 삶이 싫지만 나를 가장 사랑한다. 내일은 중경삼림을 다시 봐야겠다.



이전 06화 인간관계와 아웃 오브 사이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