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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원 Sep 08. 2019

착하다는 귀찮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얘기를 하려 한다. 착하다 라는 말을 다시 정의하겠다. 착하다의 진짜 뜻은 ‘귀찮다’ 다.




 살면서 나는 ‘착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면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착한 것은 조용한 것인가? 그렇다. 착한 것은 조용한 것이다. 아까는 착하다는 게 귀찮은 거라고 했잖아? 라고 물어본다면 삼단논법으로 말할 수 있다.  것은 찮은 것이다. 귀찮  사실  있고 싶다는 것이다. 따라서 것은 용한 것이. 

 사실 재미가 없었다. 새로운 모임이든, 친한 친구들과 있든, 재미없으면 말하기 귀찮아서 조용히 있었다. 아 뭘 하긴 했다. 술자리면 뿜빠이로 내는 돈이 아까워 술만 들입다 마셨고, 밥자리면 밥값이 아까워 배불러도 꾸역꾸역 먹곤 했다. 신기하게도 이런 재미없는 술과 밥은 항상 탈이 났다. 술은 토로 도로 나왔고 밥은 배탈로 나갔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가면 나는 조용하지 않다. 그 자리에 누구보다 말을 많이 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된다. 나를 착하게 보는 사람들은 거꾸로 말하면 나에게 정말 재미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 재미없는 사람들에게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는 자주 웃었다. 그러다 너무 많이 웃어서 나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미칠 것 같았다. 그 모임이나 그 자리에 더 붙잡혀 있게 되곤 했으니까. 웃는 것도 힘들어지면 문을 바라보며 도망칠 기회만 봤다.




 물론 착한 것에 장점도 있다. 착하면 사람들이 잘해준다. 내가 착해서 좋다고, 내게 잘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세상에 이런 착한 사람들이 있다니...' 그리고 나를 돌이켜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누 착하다고 해서 잘해준 적이 .


 ‘착하다’라는 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내 생각에 착하다 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천재다. 자신의 인간 혐오 또는 인간들에 대한 귀찮음을 착하다 라고 포장하다니. 이보다 더 문학적인 사람이 있을까?

 아니 애초에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나? 사람은 다 이기적이다. 어떤 사람이 착하다면 그 사람은 착한 척을 통해 얻는 게 많아서 그렇게 행동할 뿐이다. 얻을 게 없을 땐 그저 재미없는 사람들이 귀찮아서 착한 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살면서 재미없는 사람들을 항상 피할 순 없으니까. 이 재미없는 사람들을 한동안 잘 피해 다녔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정신 차리면 어느새 더럽게 재미없는 모임이나 술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또 똑같은 미소를 지었다. 이쯤 되자 확신했다. 내가 재미없어 하는 이 사람들도, 내가 귀찮아하는 것을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라고.

 이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또 보고 하는 일이 지겨워질 때. 한 스물 후반쯤? 사람들이 갑자기 이 시기를 ‘노잼 시기’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약속자리가 줄어들었다. 만세. 나도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요즘 뭘 해도 재미가 없어요." 라고 말하, 격렬하게 사람들을 덜 만나기 시작했다.




 이젠 내가 재밌어라 하는 모임에만 나가서 신나게 떠든다. 신나서 떠들다가 자리가 파할 쯤에서야 내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한다.

 극적이지 않은가? 영화의 반전과 인간의 깨달음은 왜 항상 마지막에 오는가. 나도 누군가에게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재미없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와 똑같은 미소를 그들도 짓고 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보며 나도 말해야지. ' 진짜 착하구나?' 으으 너무 싫다.

 나도 누군가에게 재미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고 해서, 내게 착하다고 말했던 사람들을 그리고 나를 긍정하고 싶지 않다. 그들과 나는 그저 자신의 생각들. 예를 들면 “술자리에서 아무 말 안 할 거면 왜 왔어?”나, ‘분위기 깨지니까 얘한테도 말 한 번 시켜야겠다.’ '내 말이 맞다고 해줘.' 등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위해서 그런 것일 뿐이니까. 진정 나를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 관심 갖고 말도 시키려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다 이기적이니까. 너무나도 이기적이니까. 나도 그렇고.




 그럼에도 나는 내가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게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리고 그걸 나중에 깨달았다면. 나는 아마 못 견디게 창피했을 거다. 그리고 슬펐을 것 같다. 근데 또 참 희한한 건 정작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사람인 줄 모르고 평생을 잘 살아가니, 이 얼마나 위대한 자연의 이치인가.  

 이런 사람들. 꼭 이런 재미없는 모임에서 만난 재미없는 사람들이, ‘넌 너무 착한데, 착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어’ 라고 말한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할 때. 나는 착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사람과 있을 때 짓는 귀찮은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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