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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원 Mar 22. 2021

아버지의 장발


 아버지는 머리가 길었다. 당시 아버지는 농사를 짓던 터라 외모적인 부분은 본인 마음대로 하고 다닐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아주 어렸으니까, 아마 아버지 나이는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한 30대 중후반? 정도였을 거다. 머리가 꽤 많이 길었었다. 단발을 넘어서 등허리 중간까지 내려왔었다. 머리뿐만 아니라 수염도 길렀다. 내 추측인데 아버지는 80년대 자유로운 '히피' 느낌과 영화 '이지라이더(1969)' 속 할리데이비슨 타고 다니는 마초적인 '바이크족' 느낌을 내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단정한 걸 좋아한 엄마는 아버지의 그 긴 머리와 수염을 끔찍이도 싫어했다(지금도 싫어한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어린 내가 봐도 아버지에게 긴 머리와 수염은 어울리지 않았다. 당신이 원했던 히피 스타일, 바이크족 보다는 지리산 도인, 조선시대 사람 느낌이 강하게 났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의 긴 머리가 좋았다. 긴 머리를 능숙하게 묶는 모습도 좋았고, 겨울엔 긴 머리 위에 군밤장수 모자를 쓰는 것도 좋았다. 긴 머리 덕에 귀가 시렵지 않은지, 항상 군밤장수 모자에 달린 귀도리를 내리지 않았는데, 그것도 좋았다. 그리고 뒤로 묶인 머리를 찰랑이며 휘적휘적 걷던 뒷모습이 좋았다. 아버지는 걸음걸이가 멋있었다. 걸을 땐 그 긴 머리가 정말 잘 어울렸다.


 그래도 가장 좋았던 건, 아버지가 다른 애들 아빠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당시 친구들 아빠 중엔, 나의 아버지 같이 머리를 기른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아빠는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나이임에도, 아버지의 특별함 마치 내 것인  자랑스럽게 여겼다.




 우리 집 첫 차는 현대 '스텔라'였다. 집 근처에는 농가들뿐이어서 포터 같은 트럭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서울 나가면 볼 수 있는 승용차가 우리 집에 생긴 것이다. 날씨가 좋던 어느 날. 세차를 하고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나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나섰다. 시내 레코드점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어린 내 키보다 훨씬 큰 매대를 가득 채운 음악들 사이를 누비다, 테이프 하나를 골랐다. '비틀즈'였다.


 아버지는 차로 돌아오자마자 새로 산 테이프를 재생했다. 흥겨운 노래가 나왔다. 그는 글러브박스에서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잠자리 모양의 선글라스를 꺼내 꼈다. 아버지는 노래 중간중간 내가 따라 부를 수 있게 가사 몇 줄을 알려줬다. 나와 아버지는 잘 모르는 부분은 흘리고 아는 부분에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된 그 노래 제목은 '오브라디 오브라다, Ob-la-di ob-la-da(=인생은 흘러가는 것)' 였다. 차창 밖 쏟아지는 햇살과 레이밴 보잉 선글라스를 끼고 긴 머리를 흩날리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버지 모습은 레코드점에서 봤던 비틀즈 포스터 속 '존 레논' 같았다.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를 들어갈 때쯤 농사를 그만뒀다. 같이 농사를 짓던 옆집 이씨 아저씨에게 연대보증을 서줬는데, 그 아저씨가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매일 등하교 길에 만나면 인사하던 아저씨였다. 많은 빚이 생겼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렸던 내겐 생소했던 단어들. 파산, 개인회생, 이혼 같은 얘기를 했다. 우리 집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우는 분들도 있었고, 앞으로의 대책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살한 아저씨를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농장이 정리됐다. 차를 팔았다. 살던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됐다. 어머니는 이사한 곳 근처로 일자리를 구했다.


 한동안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다. 끊임없는 숙취로 인한 두통 때문에, 아버지 머리엔 꽉 쪼인 넥타이가 항상 묶여져 있었다. 어느 늦은 밤. 잠에서 깨 화장실을 갈 때. 아버지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으로 들어본 아버지의 울음소리였다. 아버지울음소리는 내가 우는 소리랑 똑같았다.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옷걸이에 못 보던 옷이 걸려있었다. 어느 공장 이름이 새겨진 작업복 상의였다. 집에서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출근을 위해 수염을 깎고 긴 머리를 잘랐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된다. 10대, 20대 때는 어머니에게 더 감정이입을 했다. 30대가 되면서 아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점점 내 얼굴에서 아버지가 많이 보이기 시작해서 그런가. 내가 겪은 일들을 먼저 겪었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지금 내 나이였을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지금 내 마음과 비슷할까. 그 많은 일들 어떻게 다 견뎌냈을까. 결국엔 다 지나가는 걸까.


 아버지의 머리가 길었 때.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가장 자유로웠던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그래도 노래 정도는 같이 흥얼거릴 수 있지 않을까. 머리 기르기 힘들겠지만 뭐 어때. 내가 운전하고, 아버지는 조수석에 타고. 같이. 오브라디 오브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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