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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원 Aug 09. 2019

너는 참 간단해서 좋겠다



 어떤 말은 내 안에 들어와 산다. 들어온 말들 중 어떤 것은 시끄러운 저녁 술집에서 들어왔다가 조용한 새벽녘 담뱃재가 되어 떠나기도 했고, 어떤 것은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살며시 내 안에 들어왔지만 영영 떠나지 못할 것 같이, 아직 내 안에 살고 있는 것도 있다.

 여느 날처럼 집에 들어가기 싫던 날. 익숙한 골목에 접어들며 나는 내 안에 살고 있는 말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들이 내 마음 어디 한 구석 부수고 들어오는 것인지 혹은 내가 열어놓은 문으로 나가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좋든 싫든 함께 살아가던 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곤 했기 때문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나는 그 속담을 사라지는 말들을 통해 배웠다. 사라진 말이 아쉽기도 했으나 그 말이 갖고 있던 생명력이 다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곧 잊어버렸다.

 그러다 살면서 겪어야만 하는 입학, 인간관계, 연애, 군대, 죽음, 취업 같은 것들을 지날 때, 더 정확히는 인생에서 하나를 얻거나 하나를 잃을 때. 그때마다 내게 들어오거나 사라지는 말들을 보며, 어쩌면 말들의 생명력은 내가 쥐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잊히지 않는 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십 대 초반. ‘넘칠 때 낭비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라는 박완서의 어느 책 구절을 외우고 다니던 시절. 넘치는 젊음이었지만 또 넘치는 것은 젊음 밖에 없었던 날.

 어김이 없었던 가장 친한 친구와의 술자리. 술자리에서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던 나는, 친구의 고민들이 시시했다. 당시의 나는 자의식 과잉이었고 염세주의자였다. 친구의 고만고만하고 미시적인 고민은 그때의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친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상 다 그런 거야. 너만 힘든 거 아냐. 누구나 다 똑같아.’ 따위의 재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그렇게 친구의 고민들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자, 몇 번 참아내던 친구는 결국 내게 한 마디 했다.

 “너는 참 간단해서 좋겠다.”

 그 말은 뭐랄까? 마치, 영어 스펠링을 틀리게 말한 친구를 한참 비웃고 있는데, 검색해보니 내가 잘못 알고 있었을 때의 네이버 검색창. 그 네이버 검색창과 같은 정확함에 그제야 나는 재수 없는 말을 뱉던 입을 닫았다. 친구의 말은 정확하다 못해 아팠다. 내가 위악을 떠는 모습을 친구는 정확하게, 그리고 반어법으로 잘 표현한 것이다.

 친구의 말은 술잔을 오래 바라보게 만들었다. 내 간단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 받았을까. 잔을 한참 바라보던 나는 내 마음도 소주잔처럼 투명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시시했던 이십 대 초반. 다시 그 술자리로 돌아간다면 나는 내 가장 친한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힘내. 그때는 공허하다 생각했던 말. 비관을 선택하는 것은 다. 그래 힘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친구의 눈을 보며 진심으로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용기 있게 낙관을 선택하리라.


 친구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한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너는 참 간단해서 좋겠다'라는 말이 내 안에서 사라졌을 때. 이젠 어기는 일이 더 많아진 술자리에서 친구를 만난다면. 말할 것이다. 그 말과 오래 같이 살았다고. 비관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며, 다가오는 상처들 피하지 않고 다 받아내려 노력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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