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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마녀 Apr 10. 2024

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서 지음 ㅣ 유혜자 옮김 ㅣ 문예춘추사

#시작  


며칠간 병원을 들락날락

거실에서 안방 문을 지켜보며 들락날락

작은 기척에도 벌떡 일어나 들락날락


걱정과 한숨, 두려움과 안도 사이에서

심장에 꽂힌 불안의 통증은

나흘 밤을 아픔으로 지새우게 했다.


약물 알레르기가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2주가 넘는 기침가래로 고생한 엄마는

병원 처방약을 먹고 심한 피부발진 증상을 보였다.


모두가 편안할 수 없던 밤

열을 낮추려던 고군분투의 낮

그렇게 나흘 밤낮을 보내며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안방을 주시하고 있노라니

신경이 머리를 쪼아대는 듯했다.


몸을 아프게 하는 병과, 치료가 되기까지
오래 참아야 하는 기다림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를 훌륭하게 가르치며 이끌어 주는 스승이다.


- � P48 '잠 못 이루는 밤' 중에서



책장에서 눈과 손이 가는 이 책을 고르고

페이지를 몇 장 넘기지 못한 날

어두운 우울의 밤이 시작되었다.


삶을 견디는 기쁨


저녁이 따스하게 감싸 주지 않는
힘겹고, 뜨겁기만 한 낮은 없다.
무자비하고 사납고 소란스러웠던 날도
어머니 같은 밤이 감싸 안아 주리라.


- � P23 '절대 잊지 말라' 중에서

 


열과 두드러기를 잡으려던 냉찜질은

오한과 기침을 다시 일으키며

도돌이표 같은 한숨을 내뱉게 했지만


한 번에 하나씩, 해결하자

열이 내리고 발진도 잦아들었으니

안도할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하며


걱정을 내려놓는다.

심장에 꽂힌 통증도 잦아든다.

불안을 견딘 끝에 작은 기쁨을 맛본다.



내일, 내일은 어떻게 될까?
슬픔, 근심, 약간의 기쁨,
무거운 머리, 쏟아붓는 포도주.
살아라, 아름다운 오늘을!


- � P39 아름다운 오늘 중에서


오늘은 오늘을 살고

내일에는 또 내일을 살다 보면

그날그날의 삶의 기쁨도 누리겠지


아주 지혜로운 기쁨일 거야

매일 애틋한 기쁨일 테고

힘든 시절도 웃게 하는 기쁨일 테지.


삶을 견디는 기쁨



#중에   


헤세와 그림들 展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문학과 미술과 디지털 기술이 만난

최고의 전시회가 아닐까.

운동화 신기를 잘했다.

전시 공간 한 곳도 놓칠 수가 없었다.

시간에 쫓겨 반 밖에 못 봤다.

다시 이곳에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2015년 7월 8일


지금이야 '5D다, 몰입형이다' 등

디지털 전시가 많지만,

2015년에 3D 디지털 전시는

그야말로 신기함 그 자체였다.


당시 앞선 고흐의 그림전부터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디지털 전시인 데다

배우 김수로 씨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해

큰 화제가 됐었다.


그렇게 헤세의 그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데미안보다 헤세의 그림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전시회가 자주 열리진 않았지만.


고흐의 그림을 좋아해서일까

묘하게 닮아있는 그림들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애틋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화가 헤세,

나에게는 낯설지 않은

그의 그림들이 또 다른 색채로

다가왔다.


헤세와 그림들 展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2015년)



'삶을 견디는 기쁨'

그의 소설보다 더 다정하다

2015년에 디지털로 본 그림보다는

다소 어두운 색채가 눈에 밟히지만


고통스럽다고도 행복해 죽겠다고도

마냥 아우성치지 않는다.  

매일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흐름을

때론 담담하게 때론 설레게 찬양한다.



우리 인간의 삶이 새나 개미의 삶보다 더 힘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더 편하고 수월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삶의 잔혹함과 죽음을 회피할 수 없음을 불평불만하지 말고
그런 절망감을 몸으로 느끼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의 무시무시함과 무질서함을 자기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그런 거치 자연의 모습에 맞설 수 있고,
그곳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써 노력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 가운데 제일 뛰어난 것이며,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것 말고 다른 것들은 동물들이 더 잘한다.


- � P103-104, 유일한 능력 중에서



#마침


어휴, 브런치는 힘들어
내가 책을 읽으려고 하는 거야

브런치를 하려고 책을 읽는 거야


그냥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받아들이고, 내 마음을 꺼내놓고

대화하는 게 좋았는데


요즘 나는 어때?


책을 사는 속도보다 느린 읽는 속도

읽는 속도보다 느린 게시물 업로드 속도에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의 소리를 건네는 대화는커녕

뭐가 좋을까, 어떤 문장이 좋을까

그저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 같아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한때나마
내게 그토록 중요하고 신성했던
그 시들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지에
놀라면서도 나는 내 마음속에 아직
약간의 오만함이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
가수나 낭송자가 흔히 그렇게 하는 것처럼
시 속에서 어떤 단어를 생략하거나
다른 단어로 바꿀 때마다 실망하고
상처받는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 � P253, '삶을 받아들이기‘ 중에서



내게 오만함이 있었던 걸까

애써 나만의 속도, 방향을 외치면서도

따라가지 못하는 내 모습에 실망하는


불행은 비교에서 시작된다는데

브런치를 괜히 시작했나

나의 짧은 식견만 확인한 것 같아


슬프다

기쁘지 않아

그냥 관둘까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다가 마음을 툭 치는

문장을 만나면 위로를 받고



화요일에 할 일을
목요일로 미루는 일을
한 번도 하지 못한 사람이 나는 불쌍하다.
그는 그렇게 하면 수요일이 몹시 유쾌하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 � P280,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하하하

헤세는 내 마음을 알아주었어.

위트 있는 문장의 위로에 ’ 그래, 나는 나니까 ‘ 생각한다.



가재는 새우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짝사랑으로 머물러
무의식의 세계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죽음에의 충동으로 바뀌었다.

심리학자가 면밀히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그 사이에 가재가 달아나 버렸다.
진료비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
.
가재는 의사의 도움 없이도 병이 나았고
다른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사는 가재의 고뇌가
돈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 P255, ’ 심리학‘ 중에서



나의 불평과 스트레스는 어쩌면

성취에 대한 엉뚱한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본질을 잊지 않으면 저절로 나을 텐데



그렇게 이런저런 책을 읽는 동안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영원한 수수께끼와 같은 문제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헤쳐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끝에 가서 결국 삶은 우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을 새로운 욕구와 열의로
추진할 수 있는 곳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 � P264, ’ 불가능한 것을 다시 시도하기‘ 중에서



그래,

다시금 책의 문장과 구절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내게 필요한 건 삶에서

’ 기뻐할 줄 아는 능력‘

그거였어.



바로 그렇게 의기소침해진 상태에서
나는 쓸모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계속해 나가려는 완고함과 고집스러움을
또다시 얻는다.
인간은 궁핍하고 위태로운 삶의 한가운데서도
자연이나 그림에서의 색채, 폭풍이나 바다 혹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 소리와 같은 것들에
대해 기뻐할 수 있고, 이해나 고민거리를 떠나
세계를 전체로 보고 느낄 수 있다.


� P299-300, ’ 기뻐할 줄 아는 능력‘ 중에서



브런치에서 책 이야기를 하면서

숱하게 많은 좋은 책들을 소개받고

또 얼마나 다정한 북친들을 만났던가


드문드문 올려도 ’ 마침‘이란 단어로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기쁨은 또 어떤가

책으로 문장으로 소통하는 그 기쁨을


내가 기뻐할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삶은 책, 읽어가는 날에 ‘삶을 견디는 기쁨’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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