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녀책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친절한 마녀 Aug 15. 2024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소설 l 문학동네

#시작


어쩌지? 이 책을...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가?

아니 내 문해력이 떨어진 건가?


많은 사람들이 호평한 이 책을

오매불방하면서도 쉬이

펼쳐 보지 못했었다.


읽을 책도 많고

소설을 평소 가까이하는 편도 아니라

하지만 이 책은 꼭 읽고 싶다 생각했었다.


그렇게 큰 기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답답함을 불러온 걸까?


말 그대로 나는 작가의 의도와 행간을

첫 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주 희미하게 알듯 말 듯하면서도

빛으로'도'에서 '도'라는 조사가 품고 있는

뭔가의 가능성을 찾지 못했다.


계속 답답했고 그녀의 문장처럼

그녀의 글은 내내

자기 입장이 없는 무채색 같았다.

 


"그래도 편향되지 않고 균형감 있게 잘 쓴 것 같은데요.
.
.
내가 하고 싶은 말,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그대로 담았을 때 감상적이라고, 편향된 관점을 지녔다고 비판받을까 봐 두려워서 나는 안전한 글쓰기를 택했다. 더 용감해질 수 없었다.
.
.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일 뿐이고......"

- P31,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중에서


첫 편은 그런 고백 같았다.

더 용감해지지 못하고 고백하는 것

그저 무관심일 뿐이었다고


나는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덮을까? 읽지 말까?

그래도 시작했는데...


두 번째 편 '몫'에서

나는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의 답답함을


내 문해력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그 짜증을, 바로 내 얘기라서


나를 비틀고 있는 얘기라서

나는 쉬이 알아차릴 수도

바로 볼 수도 없었던 탓이라고


자기 입장이 너무 분명해

투명해 보일 정도로 명확해

나는 그 빛을 희미하다 착각한 것 같다.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P79, '몫' 중에서



'몫'은 글쓰기에 대한 통찰뿐만

아니라 글의 힘에 대해 얘기하며

나를 성찰하게 했다.


그리고 다음 편인 '일 년'까지

새벽녘 잠을 청할 때를 놓치고도

두 눈을 꿈쩍도 못하게 몰아쳤다.


'일 년'을 읽는 내내 마음은 차분해졌다.

다희와 지수에게서 종종 내 모습을 발견했고

또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해 함부로 입을 열지 말라는 경고도 받았다.



#읽는 중에


"언니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됐어.  아닐 거야.  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닐 거야."

- 답신 중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돌봐준 언니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사랑하는 언니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형부에게 폭력을 가한 동생이 사랑하지만 더는 사랑을 표현할 수 없는 조카에게 보내는 '답신'을 나는 한 편의 드라마를 읽듯 쉼 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파종'을 만났을 때 나는 왈칵 쏟아질뻔한

눈물을 몇 번이고 꾹꾹 눌러 눈가에 담았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묵묵한 오빠의 사랑으로

그녀도 그녀의 딸 소라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으리라



소리가 아이답지 않게 아무것도 조르지 않고
바라지 않는다고 그녀가 자랑하자 그는 놀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소리에게 물었다.  
소리는 뭘 먹고 싶어? 소리는 뭘 하고 싶어?
소리가 아무거나 괜찮다고 대답하면 아니,
소리가 진짜 먹고 싶은 거, 라며 다시 물었다.
아무거나는 답이 아니야. 소리야.  그는 그렇게 말했다.

- P190, '파종' 중에서



아이들에게 뭘 좋아하냐고

진짜 좋아하는 걸 먹고 하라고

나는 조카들에게 말할 수 있을까?

공부해야지 소리는 이제 줄여하겠다.



"민주야."
"응."
"너 힘든 거, 나 줘...... 가지고 갈게."
그녀는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여기"
그는 그녀의 마음이 무슨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자기 손 위에 그녀의 이야기를 올려달라는 듯이.

- P203, '파종' 중에서



아... 목이 턱 메었다.


그리고 더는 이어갈 수 없어 책을 덮었다.  

메이는 목을 '음음' 가다듬고 눈에

안약을 넣었다.  그리고 안약 탓에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휴지로 닦아냈다.



#마침  


옛날 사람들은 하늘 위에 하늘나라가 있다고 생각했다.
밤하늘의 별빛들을 보고 하늘에 구멍을 뚫어 지상의 인간들을 바라보는
저 너머 누군가의 눈빛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들에게 별빛은 신의 눈빛이거나 더는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존재들의 시선이었다.

- P. 265, '이모에게' 중에서


부끄러워도 돼요.  기남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말.

- P319,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중에서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요즘 그런 사람이 어딨어?

요즘 그런 곳이 있다고?



#아주희미한빛으로도 는


여자의 시각과 삶으로

우리 사회 구조의 어두운 일면을

잔잔하게 평범하게 드러낸다.



통속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폭력과 잔인함 속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살아내고 있는지

한 여자가 한 여자를 바라보는 7가지 방식으로 풀어낸다.

(자애로운 오빠와 여자이고 딸이라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다)



@ 여제자가 여교수를 - 1️⃣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여학생이 여학생을 - 2️⃣ 몫

@ 여사원이 여인턴을 - 3️⃣ 일 년

@ 여동생이 언니를 - 4️⃣ 답신

@ 엄마가 어린 딸을 - 5️⃣ 파종

@ 여조카가 이모를 - 6️⃣ 이모에게

@ 엄마가 어른이 된 딸을 - 7️⃣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바라보고, 추억하고,

기억하며, 통해 깨닫는다.

여자의 시각에는 복잡한 감정이 공존한다.

동경, 그리움, 슬픔, 분노, 미움, 외면, 결국엔 사랑과 이해



뾰족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아닌

잔잔하고 나지막한 소리로

그저 여느 평범한 삶처럼

그들의 치열한 삶을 깊이 풀어헤친다.



소리 없는 아우성, 고요한 외침처럼

우리 사회의 커다란 어두운 일면을

단단하게 응집하여 담담하게 풀어낸 글월이

모순적으로 느껴지며 혼란스러웠다.



폭력과 잔인함이 어디 뭐 특별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으며

누군가의 평범한 삶일 수도 있다는 혼란



너무 고요해서 그냥 지나쳐 버리거나

묻히고 잊히면 어쩌나 하는 걱정

날카롭고 시끄러운 글들에 익숙해진 탓이랴

나는 먹먹함 뒤에 오는 답답한 갈증을 느꼈다.


모두의 삶에는 빛이 있다.

어떤 빛깔이든, 강렬하든 희미하든

그 빛에서 희망도 절망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 빛을 놓치지 말라고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갈증


.

.

.

그저 읽고 공감하고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건가?

구체적이고 강한 어조로 무엇을 어떻게 치유하고

행동하라는 목소리를 듣고 싶은 갈망


.

.

.

독자에게 읽은 후의 것들을 온전히 숙제로 남긴 무거움


.

.

.

그럼에도 빛을 잃지 않고

그 빛을 보며 살아가고

살아지고 살아야 하는

여자들의 삶


.

.

.

요즘에도 그런 폭력, 그런 잔인함을 견디며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희망을 생각하며 이 책을 마친다.


❓나는 내 삶에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 가지고 있나

❓ 나는 세상에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 비치고 있나



&이런 분께 추천드립니다!



우리가 보는 밝고 강렬한 빛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고,

그 그림자를 뚫고 밝은 빛 속으로 걸어가려 스스로 치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고자 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

.

.

- 삶은 책, 읽어가는 날에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마치며


















매거진의 이전글 옮긴이의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