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

형을 보내며

by JJ

2021.12.21 04:23

어머니가 요양원으로 가신지 3년이 지났다. 작년,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가지 못했다. 10m쯤 떨어진 곳에서 손을 흔들고 목소리를 높여서 "엄니 저 왔어요. 막내아들!"을 몇 번 외치다가 오는 게 전부다. 요즘은 귀도 잘 안들리시는 모양이다. 어머니 휴대폰의 전원은 대부분 꺼져 있고 요양원 원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배터리를 충전기 켜 달라고 하여 간신히 한 번씩 통화를 한다. 이제 전화받으시는 것도 힘드신가 보다.


2년간 요양원 현관문 앞에서 눈을 마주치며 손을 흔들고 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게 갈수록 힘들고 죄스럽다. 얼마 전에 뵈었을 때는 부쩍 쇠약해지셔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한 참을 울었다. 주말에 큰누이에게 전화가 왔다. 요양원 원장님이 전화를 했는데 어머니께서 위급상황이 오면 심폐소생술을 하실 것이지 동의여부를 물었다고 한다.


큰 누이는 심폐소생을 하면 어머니가 뼈도 약하신데 갈비뼈가 부서질 수도 있다고 하는 말을 한다. 작은 누이와도 통화를 하며 생각을 물었는데 어머니가 더 고통스러워하실 수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대답을 피한다. 누이들의 의도야 그렇지 않았겠지만 누이들의 말이 서운했다. 나도 심폐소생이라는 말을 많이 듣기는 했지만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이 돼서 의료행위를 하고 치료를 하는지는 모른다. 그런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가깝게 지내는 의사 후배와 전화 통화를 하고 요양원 원장님과 긴 통화를 하고 난 후 심폐소생은 하고 연명치료는 그때 상황 봐서 의논하기로 했다. 어느 자식이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셔 놓고 마음이 편할까? 나 또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온 날도 차에서 울었다. 혼자 사는 형이 어머니를 수년간 모시면서 버티다가 한 계를 느끼고 요양원에 모셨다.


그런 형은 작년에 암으로 갑자기 3개월 만에 하늘로 갔다.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또 어머니의 심폐소생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원장님 말로는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신 거는 아니고 요양원 전체적으로 모두 동의서를 받는 것이라고는 하나 불안한 마음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형이 암진단을 받았을 때도 형은 암전문병원에서 다시 검사받고 치료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형은 척추에도 암에 전이가 되어서 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전문병원으로 옮기고 치료를 하고 케어를 할 사람이 없었다. 형은 가족도 없고 형제들은 모두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케어를 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집사람은 전업주부이나 아이들이 아직 어렸고, 아이들이 어리지 않았다고 해도 말을 꺼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마 말을 꺼냈으면 싸움만 되었을게 뻔했고 상처만 더 입었을 것이다. 내 욕심일 수도 있으나 때론 욕심인지 알면서, 안되는지 알면서도 말해보고 싶은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나도 하지 못하는 것을 누이들이나 아내에게 바라는 것은 아닌가? 깊이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현실이 너무 싫고 슬펐다.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끝까지 최선을 다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쉽게,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래도 죽어가는 형제, 부모님들께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나만 의인이고 누이와 아내가 악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런데 조금 더, 조금만 더 가시는 그 순간까지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형님, 어머니를 살려내겠다고 했는가? 의사도 못 살린다는 형님을 살리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인가?


그게 아니다. 그냥 너무 쉽게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을 하지 말자는 얘기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미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미련도 아니다. 가시는 그날, 남은 시간만큼이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래야 형에게, 어머니에게 죄스럽지 않고 나도 살아가면서 후회하지 않을 거 같아서다. 힘든 상황이 보이면 미리 다 포기해 버리고 결과가 뻔한데 굳이 그런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응으로 들려서 누이들에게 화가 났다.


아무 잘못도 없고 아이들 케어에 지쳐있는 아내의 얼굴만 봐도 짜증이 났다. 어머니를 일 년에 한두 번 만이라도 집으로 모시고 싶은데 그런 말조차도 꺼내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싫고 싫고 싫을 때가 있다. 나 혼자 살면 내가 모시고 와서 단 하루라도 함께 주무시고 다시 요양원으로 가시게 하면 될 텐데 결혼이 뭐고, 처자식이 뭐길래 그거 한 번을 못하고 어머니를 요양원에서 돌아가시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씁쓸하고 서글프고 화가 난다.


내가 어머니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죽기전에 자식이랑 단 며칠이라도 함께 먹고 자고 싶지 않았을까? 어머니의 생각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고 싶을 것 같다.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거 한 번 하고 눈감고 싶다는 생각도 할 것 같다. 말처럼 쉽지 않다고 상황이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의 욕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요양원에서 돌아가시고 싶은 부모님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나도 늙고 병들면 요양원으로 가야 하겠지만 상상하기 싫다. 나도 내 집에서 죽고 싶다.


사람은 왜 사는가? 톨스토이의 작품명처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가정꾸리고 아이를 낳고 책임감 때문에 사는 것이다. 한 동안은 그랬던 것 같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열정이 사라진 탓도 있겠지만 뭔가 다시 해보야겠다는 열정보다는 아이들 혹은 가족에게 더 충실해야 한다는 열정이 앞서던 것이다. 요즘의 나는 또 다르다. 조금이라도 어머니께 최선을 다하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산다.


무엇으로 사냐고 물으면 "어머니께 잘하려고 산다"라고 말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 가정이라는 울 타리를 잘 지키기 위해서 살았는데 지금은 순번이 바뀌었다. 아이들의 자아에서 아빠가 차지하는 부분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제 스스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경제적 물질적 지원만 해주면 나머지는 스스로 잘한다. 아내도 비슷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다.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시고 보고 싶어 하신다. 지난번에 면회를 갔을 때도 멀리서 얼굴만 보다가 왔는데....현관문 밖으로 나오실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휠체어를 밀고 나오시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꾸 손을 내밀면서 내 손을 잡으시려고 하는 것이다. 요양보호사들이 휠체어를 막았다. 나는 멀리서

"엄니, 조금만 참아, 이제 곧 면회된데"라며 손만 흔들었다.


그날도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한 참 울었다. 내가 울고 싶을 때 유일하게 울 수 있는 공간이 차 안이다.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많이 울었다. 세상에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한 명 없다는 게 서러웠다. 이렇게 팍팍하게들 사는 걸까? 힘들어도 따뜻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내 삶만 이렇게 메마르고 팍팍한 것일까? 아내에게도 친구에게도 형제에게도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나만 있는 것일까?


지난 주말에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앞산에 산책을 나갔는데 눈이 금방 쌓여서 너무 예쁜 풍경이 펼쳐졌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촬영했다. 이 기분을 함께 느끼고 싶은데 아무에게도 보낼 사람이 없다. 억지로 찾아보면 있을 수 있겠지만 보내도 별 반응이 없을 것이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인가? 아니면 다들 이만큼의 나이가 되면 즐거워도 그냥 혼자서 마음으로 즐거워하면서 끝내는가? 너무 팍팍하다. 리액션해줄 사람하나 없다는 내 삶이 너무 팍팍하고 실망스럽다.


아버지도 하늘로 가시고 형도 하늘나라로 가고 어머니도 많이 쇠약해지셨다. 나를 위로해 주고 보호해 주고 사랑해 주시던 분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시고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말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 슬프고 슬프다.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말할 수도 없다는 현실이 슬프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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