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미안해
보통 금요일은 항상 일이 바쁜데 오늘은 유난히 한가하다. 모처럼만에 일찍 퇴근하는 금요일 저녁이다. 그런데 즐거워야 할 퇴근길이 별로 즐겁지 않다. 지난 2016년은 참 힘들었던 한 해였다. 처음 실직이라는 것을 경험했고, 짧지 않은 실직의 시간을 보내고 어렵게 직장을 구했지만 급여는 전 직장에서 받았던 월급의 50%에 불과했다. 20년 동안 한 분야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내 능력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가? 자괴감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일을 해야 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얼마전 부터 음식을 먹으면 온 몸에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살면서 감기외에는 잔병치례도 거의 없었고, 음식도 어떤 음식이든 탈 없이 잘 먹었는데 갑자기 왜 이런 알레르기가 일어나는지 알수가 없다. 몹시 불편하고 신경 쓰인다. 몇 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쉽게 나을거 같지는 않다.
며칠전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한다. 지난봄에 묵시적 갱신으로 이미 전세계약이 자동연장되었으므로 인상해주어야 할 의무가 없다고 했으나 막무가네였다. 집요하게 계속 전화를 하길래 직접 만나서 부당함에 대해서 설명했지만 집주인은 해볼테면 해보라는식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10년간 시세에 비해 싸게 살게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며 고민 끝에 인상해주기로 결정을 했다.
아내는 요즘 병원을 다니고 있다. 허리와 관절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나와 결혼해서 그 지경이 됬다고 하니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를 만나서가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아프기 마련이다. 중병은 아니지만 치료를 오랫동안 해야 할 것 같다. 몸도 아픈데 치료비 생각을 해야 한다며 하소연을 한다.
주말에 형님과 누님들과 모여 가족회의를 했다. 지병으로 누워계신 어머니를 몇 년 동안 형님이 모셔왔으나 요즘 상태가 많이 나빠지셔서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한 것이다. 어머니는 용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시고 침대에 계속 누워 계셔야 한다. 그런 어머니를 결혼도 하지 않은 형님이 수발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요양원에 모신다고 가족회의를 하고난 후에, 정작 어머니를 위해서 지금껏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오히려 형을 야속하게 생각했었다.
참 못된 동생이다. 우리 형제 자매들 중에 형보다 어머니께 더 헌신적이었던 사람은 없다. 형은 그 동안 충분히 고생했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시는게 막연히 싫어서 한참동안 눈물이 났다. 그렇게 4형제가 모여서 요양원 비용을 똑같이 나누어 내자고 합의를 했다. 형편이 넉넉한 사람이 있으면 차등해서 비용을 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지만 차마 그 말은 꺼내지 못했다. 그 동안 어머니 병간호로 들어간 많은 비용도 형님과 누님들이 모두 해결했으니 양심이 있다면 나도 이제 가만히 있어서는 않된다.
아내는 요즘 계속 신경이 곤두서 있다. 아이들은 커가고 돈 들어갈때는 많은데, 남편 급여는 반으로 줄었고 예기치 못했던 지출까지 늘었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깨질것 같다고 한다. 나도 아내 만큼이나 걱정이 많다. 하지만 당장은 딱히 방법이 없기에 아내를 여러번 설득했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가 보다. 내게 돌아오는 것은 날이 선 대답과 뾰루퉁한 표정 뿐이다.
몇 번은 참기도 했고 피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반복되다 보니 감정이 예민해졌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감정이 폭발했다.
"당신 어머니 요양원비 내는게 그렇게 아까워? 왜 그렇게 맨날 말투도 그렇고 표정이 그래? 내가 매일 이렇게 당신 얼굴보면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이야해?"
지금 생각해보면 계속 피해 다니거나 다독여 줘야했던 것 같다. 항상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느끼는 것이지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고 상처만 남는다.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말을 받아쳤다.
"그러면 내가 이 상황에서 표정이 좋을 수가 있어? 당신 같으면 방글방글 웃으면서 말할수 있겠느냐고? 통장하고 도장하고 다 줄테니까 앞으로 당신이 돈관리 해!"
아내는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아내에게 기쁨조가 되라고 요구 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빨리 인정하고 해결법을 찾아보자고 얘기 한 것이 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나 보다. 아내는 결혼 후 10년간 늘 힘들어 했다. 지금처럼 급여가 반으로 줄지 않았을 때는 다른것으로 힘들어 했다. 이제는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쳐서 힘든 삶이 극에 닿았다고 말했다. 나도 점점 화가나서 이제 감정이 섞인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신은 왜 항상 힘들다는 말만해? 우리 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어. 그럼 그런 사람들은 힘들어서 다 죽어야 해? 잘 살아 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왜 힘들다는 말만 하냐고? 당신은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어. 힘들다는 말 이제 지겨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또 하고 말았다. 이제 내 감정도 격해져서 말이 어디로 튈지 스스로 걱정이 될 정도였다.
잠시후 아내가 끝장이라도 낼 듯이 분개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래 그렇게 서로 힘들면 갈라서던가 해야지. 나도 정말 한계가 온 거 같아. 우리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그렇게 아내는 고무장갑을 싱크대에 벗어 던지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궜다. 이 장면을 고스란히 9살 딸과 6살 아들이 지켜보았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가슴이 울컥했다. 최소한 아이들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되었는데.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비참했다. 나도 어렸을때 부모님이 다투는 모습을 종종 본적이 있다.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내가 커서 결혼을 하면 절대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다짐이 깨진지는 이미 오래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다투는 모습을 가끔씩 보았고, 그 중에 이번 싸움은 가장 충격이 클것 같았다. 목청 높여 난타전을 벌였기 때문에 아이들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 한 동안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나는 아이들에게 TV를 켜주고 작은방으로 와 불을 끄고 누웠다. 서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끝까지 아내를 달래주지 못한 것? 세련되게 말하지 못한 것? 아니, 가장 큰 잘못은 돈을 많이 벌어다 주지 못해서 인것 같다.
“그럼 도둑질이라도 해서 돈을 가져올까?”라고 내가 말했을 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던 아내의 얼굴 표정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거실에서 요란한 그릇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9살 딸이 6살 아들 밥을 챙겨서 먹이고 있다. 식탁은 온통 밥풀 투성이고 국도 없이 김치에 밥을 먹고 있다. 이 당황스런 광경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잠시 눈을 감고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입을 꾹 다물고 감정을 추스렸다. 얼른 국을 데워서 식탁위에 올려 놓았다. 배가 많이 고팠나보다. 허겁지겁 숟가락을 들더니 몇 숟가락 뜨다 말고 졸립다며 자리에 눕는다.
아내는 여전히 문을 걸어 잠근체 인기척이 없다. 졸린눈을 비비며 눕는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다시 작은 방으로 와서 누웠다. 무서웠다. 지금도 문제지만 더 두려운 것은, 앞으로 상황이 더 나빠지기라도 한다면 우리 가정은 아마 유지될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돈을 벌지 못하면 우리 가정은 당장 깨질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무엇인가? 이 집에서 그저 돈벌어 오는 사람에 불과한 것인가? 우리 아들,딸의 아빠이고 아내의 남편인 아닌 돈 벌어오는 기계에 불과한 사람인 것인가? 갑자기 한 없이 슬퍼졌다. 그렇게 불멸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왔다. 아침이 되도 아내는 여전히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보조키로 방문을 열어 보려고 했으나 열지 않았다.
빨리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 밥에 물을 말아 먹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회사에 출근했다. 해야할 일들이 많은데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오전 내내 뒤숭숭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오후가 되었다. 전화라도 할까? 미안하다고, 화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생각만 하다 퇴근시간이 되었다. 결국 또 내가 다 잘못한 것일까?
다른 남편들처럼 아내에게 관대하지 못한 나의 잘못,
다른 아빠들처럼 즐겁고 재미있게 못해준 나의 잘못,
다른 자식들처럼 여유있고 살갑게 해드리지 못한 나의 잘못.
다 미안하다. 모두에게 미안하다.
결혼 10주년이 되면 근사한데 여행이라도 가자는 말은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었고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딸에게는 너무 일찍 배워도 좋지 않다는 비겁한 변명했다. 그렇게 나의 2017년이 시작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아내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화를 냈던 것 같다. 최악의 경우 나는 죽어도 당신은 살아 남아야 하기에, 그래서 당신은 나보다 훨씬 더 강하고 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아내에게 이런 푸념도 해본다.
‘여보 당신까지 나를 힘들게 하면 도도체 어쩌자는 거야? 내가 비틀거리면 잡아 줘야 할 사람이 먼저 무너져 버리면 내가 누굴 믿고 사냐고......'
오늘은 유난히 더 복잡하게 느껴지는 지하철이다. 지하철역에서 한 참 동안 앉아 있었다. 몇 대의 지하철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몇 대의 지하철을 더 보내야 집으로 들어 갈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겨울밤은 깊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