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필수다.

by JJ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당연히 대학에 가야 했던 시절, 당연히 결혼도 해야 했다. 형은 결혼을 하고 싶어 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결혼할 수 없었고, 누이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는데 결혼해서 살고 있다. 나 역시 운 좋게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누이도 나도 이번 생(生)얼떨결에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그런데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어떨까? 결혼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대답은 Yes다. 결혼을 하고 가족이 탄생한다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대함과 존엄이 있다. 가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면서부터다. 나도 싱글 때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난 동물이라 있으면 있는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살기 마련이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족이 없다고 혼자 못 사는 것은 아니다. 누구의 설득도, 권유도, 강요도 아니었다. 내게는 당위고 직관이었던 것 같다. 돈이 많고 적고의 문제도 아니고, 나의 자아실현과 행복에 결혼이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인가?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이런 1차원적인 생각으로 판단할 문제도 아니었다. 내게는 숙명이고 사명이었다.



그래서 결혼해서 행복하던가? 마냥 좋던가? 꼭 그렇지는 않다. 다 좋은 건 없다. 그렇다고 불만족스럽거나 불행한 건 아니다. 비혼으로 살며 더 많은 것을 이루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얻는다고 해도 그 삶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인연을 맺고, 결혼을 하여 가족이 탄생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절대적 가치가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지금의 결혼 생활이 힘들고 버겁다고 해도 다시 태어난다면 반드시 결혼을 할 것이다. 가치관의 차이고 관점의 차이다.


Why? 왜일까?

몇 줄의 텍스트로는 다 말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과 많은 이유들이 있다. 꼭 해야 하냐고 물으면 꼭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반대로 결혼을 안 할 이유도 없다. 내 인생에서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 이상으로 가치 있는 일은 없다.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기에 다른 것을 포기하고, 나를 희생해서 결혼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결혼 때문에 내 꿈을 펼치지 못했다는 비겁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면서도 꿈을 이루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 때문에 자아실현이 불가능했다고 하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지만 다 맞는 말도 아니다. O, X의 문제는 아니고 역량(力量)의 차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결혼을 한 것이고 내가 태어나서 두 번째로 잘한 일이 아이를 낳은 것이다. 만약 내가 결혼을 안 하고 혼자였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커리어를 쌓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을 테고, 좋아하는 취미에 몰입해 있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더 자주 먹었을 테고, 좋아하는 여행도 많이 다녔을 것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나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즐겁고 행복할까? 커리어를 쌓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행을 자주 가는 것은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행복과 보람에 비하면 천분의 일도 안되는데 그것을 선택할리 없다. 간단하게 말하면 보육교사로 일을 하려면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린이집에서 일하면 서로에게 비극이다.



그것이 본질이다. 나의 행복은 궁극적으로 나를 온전히 채워줄 순 없다. 더한 욕구와 욕심만 생길 뿐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과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세계의 부호들의 왜 전재산을 기부하는 이상한 행동을 할까? 이미 그들은 차원이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하물며 자식을 키우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골드미스 A 씨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유모차를 밀며 산책하는 부부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 녀는 모든 걸 다 가져도 본인은 그 모습을 만들 수 없다며 씁쓸해했다.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돈은 두 번째다. 중요한 것은 사랑과 가치관과 신념이다. 단언컨대 그것으로 결혼을 하고 가족이 형성되는 것이다. 출산했다고 돈 몇 푼 쥐어주는 것으로 결혼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늘어나지 않는다. 본질적인 것이 바뀌지 않은 제도 개선은 카드 돌려 막기에 불과하다.


생각해 보면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듯이 부모님께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결혼을 선택했더라 해도 가정을 이룬 지금의 행복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었다. 세상 살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없다. 반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있다. 다음 생에도 결혼과 가족 보다 나에게 가치 있는 일들은 없을 것이다. 가족이 있다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결혼을 하자. 단, 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