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중년

by JJ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꽃피는 춘삼월에 궁을 산책하며 봄을 만끽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래지 않아 눈도 내리겠지. 돌아보면 쉬운 날들은 없었던 것 같다. 10대도 힘들었고 20대도 힘들었다. 판단에 흔들림이 없다는 불혹에도 힘든 일들은 생겼고,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이라는 지금도 삶이 녹녹지는 않다. 3년간의 코로나19 때문에 회사도 큰 어려움이 있었고 작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고생을 했다. 1-2년 사이에 갑작스럽게 어머님과 형님을 모두 하늘로 보내드리고 한 동안 힘이 들었다. 이젠 괜찮아졌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의미가 있겠지.


나들이를 다녀왔다.

가족 나들이도 아니고, 친구들 모임도 아니고, 회사 워크숍도 아닌 혼자만의 나들이였다. 남편으로, 아빠로, 아들로, 때로는 이 과장으로, 이 부장으로 쉬지 않고 달려왔다. 어느새 이렇게 많이 시간이 흘렀다. 잘 살아온 것인지 못 살아온 것인지 모르겠다. 열심히는 산 것 같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싫지는 않다. 며칠 전 집에서 염색을 했다. 처음 해보는 염색이었는데 어색하다. 아직은 머리에 염색을 하고, 돋보기를 쓰고 책을 보는 내 모습이 낯설다. 나도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고 출근하고, 통기타를 둘러메고 혜화동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낭만을 던 시설이 있었다. 이제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코스모스가 예쁘다. 꽃말은 순정


강변북로를 달리며 라디오를 볼륨을 높였다.

오늘은 유난히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많이 나온다. 20대 때 많이 들었던 노래들인데 어찌나 반갑던지...... 그때는 힘들었던 하루를 음악으로 위로받았다. 열심히 차 안에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혼자 있어서 가능한 행동이다. 오랜만에 음이탈도 하며 소리를 질러본다. 갑자기 울컥해진다. 소리 질러가며 노래를 불러본 기억이 언제던가?


회사에서 회식을 할 때나 거래처 손님들과 가끔 노래방을 가지만 편하지 않다.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만 추리고 추려서 오디션 보듯 소심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 마저도 이젠 추억이 되었다. 노래방에 갈 일이 없다.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 몇 가지나 있을까? 회사에서 점심 메뉴 정하는 것도 직원들의 의견을 존중해주어야 하고, 집에서는 가족의 입맛에 맞춰야 한다.


소리 지르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공간도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 이 노랫소리가 밖에서도 들린다면 아마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 취급 할 것이다. 가끔은 길거리에서 파는 붕어빵이나 호떡도 먹고 싶고, 분식집에 가서 혼자 떡볶이도 먹고 싶은데,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다. 내가 가야 할 곳은 떡볶이 집이 아니고 골프장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착잡해진다.


북한산 의상능선. 산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쉴 자리를 내어 준다. 갖은자든 없는 자든 동일하다. 선착순


얼마 전에 집 앞에 있는 가게에서 강냉이를 사 먹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강냉이인가? 아내는 요즘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잘 안 드시는 강냉이를 먹느냐고 타박이다. 먹을 것이 지척에 널려 있는데 왜 강냉이를 먹으며 궁상을 떠느냐고 디스(disrespect)를 한다. 강냉이 먹는 것이 잘못인가? 적당히 단맛도 있고,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도 좋고,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않아서 내게는 최고의 간식이다.


퇴근 후 강냉이를 먹으면서 넷플릭스 영화를 보는 편안함은 느껴 본사람만 안다. 산 꼭대기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과 흡사하다. 최고의 행복이다. 나도 한 때는 고급스러운 조명과 세련된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달콤한 캐러멜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별로 관심 없다. 어울리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다. 좋아하지 않는 팝콘과 콜라를 일부러 먹을 필요는 없다.


요즘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 몸에 힘이 없고 무기력하다. 움직이는 것이 싫고 식물이 좋아지면 중년이 된 것이라고 하던데 요즘 그렇다. 어젯밤에 또 부고 문자를 받았다. 한 달 사이 세 번째다. 고등학교 후배인데 너무 이른 나이에 하늘로 갔다. 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를 읽으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서른,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부르며 소주잔을 기울였던 서른.


서른 살이나 돼버린 내가 싫었는데 어느새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 결혼식과 돌잔치집을 정신없이 다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병문안 가는 날들이 늘어나고 부고 소식들이 자주 들린다. 이렇게 가을은 깊어 간다. 태어나서 몇 번째 가을인지 모르겠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시간이 이 가을에서 멈췄으면 좋겠다.

아내에게 번듯한 옷 한 벌 사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도 못해줘서 미안하다.

여러모로 미안한 남편, 미안한 아빠다.

휘리릭 가버리는 가을이 아쉽다.

휘리릭 가버리는 세월이 아쉽다.



Modern Talking – Brother Louie (1986년, 독일남성듀오)

https://youtube.com/watch?v=rzuOJ6JtYJg&si=hIVU37pH2UKi0k6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