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 17년 동안 1,000번을 싸운 사나이

by JJ

결혼 후 한 동안 많이도 싸웠다. 아내와 나의 성향을 역사적 인물에서 찾아보자면 나는 조선의 건국을 반대했던 정몽주스타일이고, 아내는 임진왜란 때 왜장을 껴안고 강물로 뛰어든 논개 스타일이다. 둘 다 나라를 위한 애국심이 있었고 소신과 기개가 있는 사람들이었으나 정몽주와 논개가 결혼해서 살았다면 안 싸우고 잘 살았을지 의문이다. 그 많은 싸움 중에 이른바 빅매치라고 할 수 있는 싸움은 두세 번 정도 되는 것 같다. 싸움에도 기술이 필요한데 팁을 하나 풀자면 아무리 심하게 싸워도 넘어야 할 선을 넘으면 안 된다.


샤우팅(shouting)까지가 맥시멈(maximum)이며 육두문자를 쓰거나 상대방을 비하 발언은 삼가야 한다. 시댁이나 처가를 언급하는 것도 절대 금기 사항이다. 자기 분에 못 이겨서 기물을 파손하는 행위도 안된다. 측근들의 조언에 따르면 그래봤자 나중에 정신 돌아오면 자기만 손해라고 한다. 이쯤 되면 그렇게 싸우고도 함께 살고 싶나? 그러고도 함께 살아지나? 하며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러고도 살아진다. 충분히 잘 살 수 있다.


부부싸움을 창피하게 생각해도 안되고 겁내서도 안된다. 어떤 심리상담 전문가가 한 말이 떠오른다. "원래 결혼은 지지고 볶으면서 사는 것입니다"라고 조언한다. 매일 행복해 보이는 부부는 연출된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이혼하는 부부도 종종 보았다. 벽에 걸려 있는 화목한 가족사진을 너무 믿지 말라. 상위 0.1%의 잉꼬부부는 매일매일 행복할 수도 있지만 부러워하지 말자. 민주주의에서는 나머지 99.9%가 정상이다.


살다 보면 앵그리 한 날도 있고


나는 싸움을 정말 싫어한다. 경쟁하는 것도 싫어서 학창 시절에 달리기 시합을 해도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았다. 왠지 모르지만 그냥 경쟁하는 게 싫었다. 심지어 연애시절에도 인기가 많은 여자는 경쟁상대가 많을 거 같아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렇게 경쟁도 싫어하고 싸움도 싫어하는 나는 어쩌다 싸움닭이 되었을까? 지금은 많이 초연해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하는 파이터였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거래처와도 보이는 족족, 나의 레이다에 걸리면 무조건 싸웠다.


그렇게 싸워도 하루 지나면 또 얼굴을 맞대고 살며 생활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 아닌가? 맞다. 대한민국 국회다. 국회에서도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막말을 하며 싸워도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새로운 태양을 맞이한다. 분명 싸움은 좋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싸우면서도 가정을 지키고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공통적인 사명감이나 책임감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삶은 그렇게 치열한 것이다. 공부보다 100배는 더 치열하다. 그래서 그렇게 피하기만 했던 나는 파이터가 된 것이다.


그래도 싸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애정이 있다는 것이다. 무관심하다는 것은 싸울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아주 위험한 징조다. 결혼 후 몇 년간 치열하게 배틀을 해 보니 앞으로 어떻게 결혼 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 에 대한 윤곽이 나왔다. 이른바 433 전술을 만들었다. 40%는 이해를 하고, 30%는 포기를 하고, 나머지 30%는 싸우면서 사는 것이다. 혹자는 나머지 30%도 싸우지 말고 이해를 하며 잘 살면 되지 않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좋은 질문이다.


이해와 포기를 50:50으로, 또는 이해를 100%로 확정을 짓는 사람은 하수다. 상황을 확정을 지으면 안 된다. 상황은 항상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이해도 안 되고 포기도 안 되는 경우에는 싸울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두어야 한다. 그것이 고수다.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중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건강한 가족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결혼생활 17년 동안 하면서 1,000번을 싸운 고수가 개발한 전무후무한 433 전술이다.


살다 보면 해피한 날도 있을 지어다



100% 이해하고 배려하면 이상적이고 행복한 결혼 생활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계가 일방적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내가 나한테 모든 것을 맞춰주면 무조건 행복할까? 반대로 남편이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이해하고 맞춰 주면 행복일까? 그것이 건강한 결혼생활일까? 인간은 누구나 자아가 있고, 에고(ego)가 있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사랑도 필요하지만 영혼의 자유로움도 필요하다. 이상적인 행복한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은 개인차이니 각자 알아서 살면 된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연애를 하고 동거를 하는 것과는 클래스가 다르다. 개인의 세계에서 결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결혼의 세계는 신비하고 놀랍고 오묘하다. 결혼의 세계에 들어갈 때는 너무 몰라도 안되지만 너무 완벽하게 알려고 하지도 말라. 적당히 알기도 해야 하고 적당히 모르기도 해야 한다. 이게 무슨 모호하고 애매한 말인가? 원래 인생이 그렇다. 확실하지 않은 게 더 많다. 다 알려고 하지 말라. 욕심이다. 너무 많이 물어보지 말라. 그 사람도 잘 모른다.


적당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中庸)이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말이다. 군대에서도 고참들이 말하지 않던가? "적당히 해라잉~~" 진리와도 같은 말이다. 모든 것에 프로가 돼야 되는 시대지만 연애와 결혼은 프로처럼 잘할 필요는 없다. 아마추어리즘으로 적당히 살아도 된다. 일은 완벽하게 처리해야 하지만 결혼 생활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 느슨해도 된다. 집은 일터가 아니고 쉼터다. 핵심은 적당히 하라는 얘기지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안 하면 안 된다.



에필로그

딱딱하고 불편한 주제 부부싸움.

농담반 진담반으로 약간 과장된 표현들이 있었지만, 제가 전하고 싶은 말씀은 지지고 볶으며 살아도 이혼하지 말고 끝까지 잘 살자는 얘기입니다. 요즘은 사소한 이유로 연인들은 이별을 하고 부부들은 이혼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 역시 여전히 노력 중입니다. 예전에 비하면 심심할 정도로 싸우지 않지만 앞으로는 싸움 제로(0)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TV예능 프로그램 중에도 "안 싸우면 다행이야"이라는 프로가 있더군요. 너무 아름답게 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듯싶습니다. 노부부가 손잡고 공원 산책하는 것이 로망이라며 결혼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살다 보면 덤으로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도 그렇다고 봅니다. 너무 노후에까지 판타지를 쫒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혼 안 하는 걸 목표로 삼으시고요, 싸우며 살더라도 오래 곁에서 살아 있어 주는 것만으로 부부의 역할은 충분히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기혼자들에게 신의 은총이 하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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