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적인 질문에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질문이다. 내가 대학을 가는 시절에는 묻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고 대학을 갔었다. 지금은 직업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도 다양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입시와 공부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대학을 가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소수다.
여전히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고,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직업을 갖기 위해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면 대학을 가지 않아야 할 이유는 있을까?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명확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도 좋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공부가 싫어서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는 것 같다.
딸의 질문에 답변을 하다 보니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창작을 하는 소설가나 시인이 아니다. 평범한 삶의 경험을 기록을 하는 사람이다. 매일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과 힘든 일, 즐거운 일, 기쁜 일, 슬픈 일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과거에 기록들을 살피며 현재에 힘든 일들을 이겨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삶이 힘들 때 저마다 헤쳐나가는 방법들이 있다. 가까이에 멘토가 있으면 가장 좋을 것 같다. 멘토라고 거창하게 생각할 건 없고 친구, 부모, 가족 누구든 상관없다. 종교를 갖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도 방법이다. 나의 방법은 글쓰기가 된 것 같다.
딸은 어릴 때부터 질문이 많았다. 4-5살 때였던가? 한 번은 모기는 무얼 먹고 사느냐고 물어봐서 당황을 한 적도 있다. 나의 중학교 시절은 어땠나 생각해 본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나쁜 학생은 아니었다. 착하고 공부를 안 하는 아이였나 보다. 가끔 능력과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부모의 무관심이나 방치로 천재성이 사장되기도 하는 모습을 본다.
물론 부모의 과도한 간섭도 금물이다. 부모의 극성도 좋지 않지만 방치는 더 나쁘다. 아이들의 의식주뿐만 놀거리, 공부거리, 미래도 신경을 써야 한다. 아이들은 아직 미성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완전하다. 그들이 필요한 것이 없나 항상 더듬이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 부모가 먼저 해주겠다고 호들갑이나 오지랖을 떨면 안 된다. 필요하다고 얘기하면 들어줘야 한다. 그것이 기술이다. 물론 나도 그게 쉽지는 않다. 아빠의 어줍은 대답이 도움이 됐으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