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3년에 쓴 글이다. 최근 나는 솔로라는 TV프로그램을 보다가 혹시 솔로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올려본다. 재미로 읽으시길.
나는 왜 솔로일까? 원인 분석을 해야 한다. 부족하면 채워야 하고, 남으면 걸러내야 한다. 연애도 주먹구구식으로 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눈물을 흘리는 신파도 통하지 않고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은 리스크도 많고 그렇게 애절한 사랑은 쉽게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점지해 주신 사람과 대충 살면서 맞춰가는 시대도 아니다. 원인은 내게 있다. 그것을 찾아서 개선하지 않으면 난 영원히 원치 않는 솔로로 살다가 생을 마감할 것이다.
Ⅰ서론
1. Who Am I, What am I
나는 누구고, 나는 뭔가?
2003년 O월 일요일 오후. 방안에 홀연히 누워 깊은 명상에 잠겨본다. 나는 왜 화창한 일요일에 덩그러니 홀로 방안에 누워 있는가? 사지 멀쩡하고, 멘털적으로도 이상이 없는 호모사 피앤스가 이 화창한 날에 집구석에 있는단 말인가? 나보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도 한 쌍의 바퀴벌레가 되어 핑크빛 로맨스를 즐기며 사람답게 살고 있는데, 작금의 나는 왜 방안에 누워 X-Ray만 찍고 있는가? 천정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지겹지도 않은가? 지금까지는 그렇다 손 치고 앞으로 솔로인의 길은 어떻게 될 것인가? 더블이 되는 그날을 꿈꾸며 진지한 자아성찰을 통해 현재를 극복하고 미래를 펼쳐 나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2. How
20-21세기에 거쳐 일어났던 에로스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기본으로, 최근 10년간 이성과의 만남을 차트로 만들어 분석하고 문제점을 알아본다. 선, 후배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On-line, Off-line을 망라한 사례분석을 통해 나의 경쟁력과 장, 단점을 파악한다.
Ⅱ본론
1. 내가 좋아한 그녀
<사례연구 1>
1993년. 그 녀는 스무 살이었다.
군대를 제대한 나는 버섯을 재배하는 공장의 삽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측근의 소개로 한 여자를 알게 된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태어나서 그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봤다. 내 눈엔 그랬다. 긴 단발머리 우윳빛 피부. 청바지, 흰색운동화.
눈을 떠도 그녀 생각, 눈을 감아도 그녀 생각뿐이었다. 밥을 먹다가 밥숟가락에도, 국을 먹다가 그릇에도, 책을 읽으면 책 속에도, TV를 켜면 TV화면에도, 심지어는 삽질할 때 삽자루 속에도 그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나는 대시했다.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회사로 꽃을 보내고, 클래식 피아노 연주곡을 선물하고, 책을 선물하고, 편지 쓰고, 함께 영화를 봤다. 남들이 몇 달 동안에 해야 할 모든 것을 일주일에다 해버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일 당장 어디론가 떠나가버릴 것처럼 불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해주고 싶었다. 삽질을 할 때마다 힘이 마구 솟구쳤다.
매일매일 더 열심히 삽질을 했고, 시멘트를 발랐다. 나의 이러한 적극적인 애정공세에도 특별한 반응은 없던 그녀. 눈 내리는 어느 겨울밤 만난 지 3주째 되던 날 그녀가 내게 전화를 했다. 날아갈 듯 기뻤다. 그녀가 맛있는 저녁을 사주어서 먹었다. 그리고 뜻밖에 조병화 님의 시집도 선물로 받았다. 반응이 없던 그 녀의 마음이 드디어 움직인 것이다. 뭐가 되어간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받았다.
들뜬 마음에 앞으로의 날들을 계획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컴퓨터를 사고, 운전면허도 따야 한다. 그리고 ‘돈을 벌어 그녀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중고차를 사서 여행도 다녀야지’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역에서 시집 속에 꼽혀 있던 예쁜 편지봉투를 발견했다. 나는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꼬깃꼬깃 접힌 예쁜 편지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오빠, 제 자신을 추스리기도 너무 힘겨운데 오빠의 친절함이 제게는 과분한 거 같아요. 저의 이기심이 싫어요. 미안해요 오빠”
‘이런 젠장......’
태어나서 처음 인생의 쓴맛을 보았다. 죽도록 공부했는데 대학에 떨어서 군대에 갔다. 군대를 제대하고 죽도록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이별이라니. 하늘이 노랗게 변한다는 느낌이 뭔지 처음 알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와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 여자다"라는 확신이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이 사람 말고 다른 더 좋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이별을 통보받은 후에도 나는 계속 노력을 했다. 그 녀가 불편해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관심을 보이며 노력을 했다. 나는 꽤나 시니컬하고 쿨한 사람이다.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다. 사랑과 연애에도 합리성을 따질 정도면 DNA자체가 연애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는 구조일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 녀와 와 만남은 지속되지 못했다. 그래도 나의 진정성을 느꼈던 것인지, 그만 만나자는 편지를 받은 후에도 몇 차례 만남을 가졌다. 영화도 보고 밥도 먹었다. 그러나 나에게 관심이 없는 만남이 반복될수록 내 모습은 초라해 졌다. 더이상 그런 만남은 원치 않았고 의미도 없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사랑은 나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여자가 갑자기 친절해지면 긴장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당시 가정의 불화(부모님의 이혼, 실질적인 경제적 가장) 등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자살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사랑은 타이밍도 맞아야 한다. 아마 그 녀가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상상도 해본다. 내가 싫거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연애나 사랑을 할 만큼 여유가 없어서였다고 믿고 싶다. 실제 그것은 큰 이유가 된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괜찮았던 여성이 놓친 기억이 있다. 그게 타이밍이고 인연이다. 인연이란 절묘한 타이밍이다. 물론 노력으로 인연이 만들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