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스터디 모임에서 알게 된 그녀. 첫인상이 참 좋았다. 한 달, 두 달 함께 공부를 하다 보니 호감이 생겼다. 학교의 행사도 같이 하고 도서관에서 공부도 하면서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말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심성까지 고운 그 녀는 어떤 남자가 봐도 탐날 만큼 지적이고 외모도 출중했다.
화창한 5월의 어느 봄날
모임에서 등산을 갔다 오는데 그녀와 나는 기차 안에서 같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는 동물적으로 지금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 결판을 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기차 창 밖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우리 이렇게 모임에서만 만나는 거 말고 둘이 만나서 밥도 먹고 영화도 볼래?”
"그래요 오빠"
예상 밖으로 흔쾌히 좋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게 웬 횡재인가? 이렇게 쉽게 한 번에 먹히다니. 할렐루야, 아멘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잠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오빠, 근데 저 몇 달 있다가 러시아에 가야 해요”
‘잉? 잘 나가다가 이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린가?’
1년 동안 러시아로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다. 그녀에게는 교사가 되어 교육적으로 살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기다릴 수 있냐고 그녀가 물었다. 나는 장담 못한다고 했다. 우리의 사이는 그만큼 탄탄하지도 않았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므로 서로를 책임져야 할 구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약속이나 장담 같은 건 하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물었다. 네가 안 가면 안 되냐고. 그랬더니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가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했던 두 번째 여자는 만난 지 6개월 만에 쫑났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그때 군대 보냈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기다렸으면 어땠을까? 그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그건 내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냈던 것 같다. 사랑은 방식도 중요하다. 남의 방식을 어설프게 따라 하면 안 된다. 혹시 연애조급증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아마 그녀는 지금쯤 나보다 훨씬 더 인정받고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있을 것 같다.
2. 나를 좋아한 그녀
<사례연구 1>
그 녀와 나는 가수 팬클럽에서 만났다. 그 녀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엘리트였고 나는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는 사람이었다. 인생 최악의 암흑기였다. 패배주의에 빠져 신세 한탄을 하고 쓸데없는 자기 연민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건강도 좋지 않아서 최악의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다. 그녀는 부르주아였다. 게다가 이쁘고 똑똑하고 검소했다. 남을 배려를 할 줄 알고, 정의감에 불타오르기도 하는 의리녀 이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순수해서 좋다고 했다. 어떤 게 순수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었나 보다.
한 달, 두 달 지나며 우리는 만나는 횟수가 늘어났다. 함께 콘서트도 보고 축구장도 가고 영화도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그녀가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나의 집 앞에서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우리 엄마 병원에 가야 하는데 같이 가 주면 안 돼?”
볼 일이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 실제 다음날은 중요한 면접이 있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핸들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늦은 밤 그녀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집 근처에서 술을 먹고 있는데 와달라고 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내가 좋다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고백에 당황했지만 당시 나는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팬클럽 회원으로서의 순수한 만남 이외에는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그 후 2년 정도 팬클럽 활동하다가 어느 날부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이도 저도 아닌 우리 사이에 지쳤나 보다. 한 달 후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연락이 안 되었다. 몇 개월 후 그녀의 친구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들었는데 좋은 남자를 사귀고 있으며 곧 결혼할 것이라 했다.
나를 좋아했던 그녀와의 만남은 2년 만에 쫑났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아쉬운 사람이 아닌가 싶다. 센스도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백수인 걸 알고 비싼 술값은 자기가 내고 싼 밥값은 나보고 내라고 했다. 내가 미쳐 보지 못한 가수의 방송장면은 비디오로 녹화해서 주기도 했다.
사랑도 눈치가 있어야 한다. 둔하면 사랑도 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빨리 캐치해야 한다. 그리고 타이밍의 문제가 있기도 했다. 조금 더 내가 안정적이었다면 어땠을까? 더 자신감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 녀가 그만큼만 좋아서 그만큼의 인연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더 적극적이고 더 노력을 했다면 헤어질 수 없는 인연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례연구 2>
오랜만에 교회 후배들이 모였다. 학생부 교사를 했을 때 가르치던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 나타났다. 격세지감이란 말을 실감했다. 크리스마스 때 새벽송을 돌고 문학의 밤 행사 때 천사의 날개를 달아주던 코흘리개 아이가 어엿한 숙녀로 변해 화장도 하고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었다.
스무 살이면 얼마나 예쁜 나이던가? 그 아이는 학생부 때부터 유독 나를 따르던 아이였다. 내 옆에 와서 술을 홀짝홀짝 마시더니 이내 취해버려 고백을 한다.
“저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오빠가 옛날에 저희 교사하실 때부터 오빠를 좋아했어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고 취한 그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후로도 그 아이는 교회의 친구들 모임을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나타나서 합석을 했다. 그렇게 밋밋하고 평범한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갑자기 다시 모임에 나타났다. 즐거운 시간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 아이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내게 건넸다. 종이학 천마리와 CD 한 장, 그리고 편지였다. 그리고 조용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오빠, 저 지금 진지하거든요.”
그 후로 그 아이는 한동안 내게 연락을 했다. 잠깐 혼란스럽긴 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런 상황들이 부담스러웠다. 교회에서 이 아이와 나를 오래전부터 보아왔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무엇보다 직업 없는 내 상황이 싫었다. 지금 연애할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그 후로 그 아이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모임에도 안 나가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10년 동안 좋은 선생님, 오빠로 지냈던 그 아이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돌아보면 나는 고루했고 겁쟁이였다. 항상 미리 겁을 냈다. 그런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다. 그러나 성공도 없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10살 차이, 백수, 남들의 시선이 무엇이 중요한가? 둘이 좋다면 결혼도 못할 것이 없지 않은가? 왜 미리 부담스러워하고 미리 벽을 쳐두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가? 안 되는 건 시도하고 나서 걱정해도 된다. 이 바보야.
3. 그 밖의 여러 상황들
<사례연구 1>
*미적미적하다가 끝난 경우
소개팅을 받았다. 외모도 평범하고 환경도 직업도 평범했다. 모든 게 무난했다. 그런데 임팩트가 없었다.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쪽에서도 나를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
이른바 솔로들의 가장 큰 문제라는 “절제신공”이다. 이미 여태 혼자였으니 앞으로 혼자여도 별문제 없다는. 남자가 먼저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굳이 여자도 먼저 관심 보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었는지 그쪽도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중에는 연락을 하고 싶어도 연락하기가 더 어색하고 힘들어졌다. 하루 이틀 지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없었던 일로 된다. 사람은 최소 3번은 만나보라는 말도 있다. '더 만나볼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버스는 떠났다.
<사례연구 2>
*오랜 솔로 시간을 보내며 자괴감을 느낀 경우
친한 후배에게 3일간 뇌물공세와 접대를 하며 협박과 회유 끝에 소개팅을 받았다. S기업의 A대리. 후배가 말하기를
“내가 형스타일 아는데 이 여자는 좀 아니거든. 연봉 많은 거 빼놓고는 하나도 볼 거 없어”
나는 “돈 잘 벌면 장땡이지!”라고 말하며 일사천리로 소개팅을 진행하라고 했다. 두 눈을 반짝거리며 기대에 차 있는 내게 후배는 다시 진지한 눈초리로 말했다.
“형... 해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후회하지 마”
일주일 있다가 모 대학 앞에 호프집에서 그녀를 만났다. 1차는 닭갈비, 2차는 가벼운 맥주, 3차는 따뜻한 차를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에 소개를 시켜준 그 후배를 만났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스산한 밤이었다. 그날 그 후배는 나에게 옷에서 먼지 나도록 맞았다. 실제로 영 아닌 여자를 소개해 준 것이다. 난생처음 독신을 생각해 본 하루였다.
<사례연구 3>
*오호통재라
협력업체 조신녀 S양은 천생 여자다. 일처리 깔끔하고 전화받는 목소리는 어찌나 매력적인지 흠잡을 때가 없다. 전공이 다른 이 분야에 뛰어들어 단 3개월 만에 업무의 대부분을 소화해 내는 뛰어난 사람이다. 처음엔 상냥하고 예쁜 목소리 때문에 호감이 생겼다. 여자들이 매너 있는 남자들 좋아하듯이 남자들은 상냥한 여자를 좋아한다.
몇 달간을 지켜보다가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결혼이나 협력업체 간의 연애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성사가 되지 않으면 어색한 상황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시쳇말로 “도”아니면 “모”라는 각오로 들어가야 한다. 드디어 비장한 각오를 하고 비 오는 어느 날 저녁 퇴근시간에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S 씨, 오늘 비도 오는데 파전에 동동주라도 한 잔 찌끄려 볼까요?"
농담처럼 얘기를 했지만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 편안하고 부담 없이 첫 만남을 갖고 싶었다.
“예?”
그녀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재차 내가 말했다.
“비도 오고 차도 많이 막힐 텐데 같이 저녁 먹고 들어갈래요?”
그러자 그녀는 방글방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팀장님 저 오늘 남자 친구랑 예식장 예약하러 가야 되거든요. 다음에 한 번 먹어요”
그녀는 결혼이 임박한 여자였다. 그래서 그렇게 항상 방글방글 거리며 다녔던 것이었다. 결혼이 임박한 여자들은 다음부터 가슴에 명찰이라도 달고 다닐지어다. D-day 30일이라고.
Ⅳ. 결론
외로움에 굴하지 않는 진정한 혼자 놀기의 진수 찾기
이쯤 되면 인생 복불복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치다를 수 있다. 끝까지 필(feel)을 추종하며 이상형을 찾아 나서 설 것인가? 아니면 평생 혼자 즐겁게 노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언제나 소수는 외롭다.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다수의 무리에 속하지 못할 뿐이지 비관할 필요는 없다.
가치를 가족에 두면 가족이 최고이고, 가치를 종교에서 두면 종교가 최고다. 가치를 예술이나 일에 두면, 예술이나 일에 빠져 살면 된다. 알면 기쁘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사는 것이 인간이다. 연애가 그리 쉽던가? 모든 일이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렵다. 연애에도 사이클이 있고 타이밍이 중요하다. 운도 따라줘야 한다.
나에게 맞추려고 하기보다 내가 맞추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그런 배려가 없으면 백전필패다. 여자를 꽃에 물 주듯이 대하라는 연애고수의 말이 떠오른다. 꽃은 물을 많이 주면 썩어서 죽고, 물을 안 주면 말라서 죽는다. 후배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자기는 조화가 좋단다.
현제는 비록 셀카 찍기, 기타 치기, 책 읽기, 뜀뛰기, 인터넷 등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언젠간 사랑하는 여자와 밤을 지새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겠다. 그러나 희망만으로는 안된다.
“여자를 사귀려면 배려가 몸에 배어야 한다. 사귀는 동안 만이라도 목숨을 바칠 것처럼 사귀어야 한다. 여자는 평생 꼬셔야 하는 동물이다.”
라고 선배들은 조언한다. 나름대로 연애에 성공해서 결혼까지 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이런 것이다. 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혼자 살 것인가? 같이 살 것인가? 오롯이 나의 선택의 문제다. 다만 60살이 넘어서도 혼자라면, 그때도 내가 결혼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을 것이라는 신념과 결의가 필요하다.
그때는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을 테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