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번째 부부싸움, 싸움의 기술

by JJ

아내는 얼마 전부터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오랜 공백기간을 깨고 구한 일자리다. 마땅히 축하해 줘야 할 일이지만 마냥 즐겁지는 않다. 나이 많은 경력단절녀가 사회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하는 일이 많이 힘들고 고된가 보다. 남편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데 남편은 위로다운 위로나 격려가 없다. 그렇다고 남편이 무심한 사람은 아니다. 말로 다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집안일을 열심히 도와주고 있다. 표현을 안 한다기보다 표현을 못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담배를 안 끊는 것이 아니라 못 끊듯이.


아내가 예전에 했던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 보다 편한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이 더 고되게 느껴질 수 있다. 직장생활도 비슷하다. 엄청난 업무량과 노동강도로 일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편하게 일하는 회사도 있다. 나는 그런 차원에서 한 말이었다. "지난번에 편한 곳에서 일해서 지금 상대적으로 더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어"라는 의미로 말을 했다. 그런데 아내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힘들지도 않은 일들을 내가 힘들다고 말한다는 얘기야?"라고 받아들이면서 언쟁이 시작된 것이다. 남편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남편은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지난번 일도 힘들었지만 지금 일은 더 힘들다." 그러니 위로를 바랐던 것이다. 순식간에 인정 없는 매정한 남편이 되어 버렸다. 논란의 여지는 있다. 나의 표현방법이 서툴렀을 수도 있고, 표현은 틀리지 않았으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확대해서 받아들여 들였을 수도 있다. 새가 지저귀는 것은 기뻐서 지저귀기도 하지만 슬퍼서 지저귀기도 한다. 듣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다르게 받아 들 일 수 있다.


남편의 하루도 만만치 않다. 회사에서 하루종일 진을 빼고 집에 오면 녹다운이 되어 쓰러진다. 아내를 위로하고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내가 살아야 다른 사람도 위로를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우울하면 어떻게 아이를 즐겁게 돌보겠는가? 엄마도 재충전을 해야 그 힘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남편도 비슷하다. 남편도 지쳐있고 헤매고 있어서 위로 할 힘이 없다. 그래서 말없이 설거지를 하고 방청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말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않는가? 대부부 남편들은 비슷하다. 상위 0.1%의 남편, 상위 0.1%의 아내를 비교하면 안 된다. 그러면 서로 힘들어진다.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맞고 걸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우산 없이 혼자 걸어가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겨내는 것이다. 그것이 어른이다.


싸움이라는 것은 자기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한쪽이 포기를 하면 다툼이 생기지 않는다. 이해되서가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다. 싸움은 짧게 끝내야 한다. 그리고 상처 주는 말을 하지 말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넘으면 안 된다. 진짜 전투는 밖에 나가서 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는 전투력을 소진하면 안 된다.


배우자를 거래처 고객 대하듯이 깎듯이 대하면 평생 싸울 일이 없다. 때론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해야 한다. 모른 척 넘어가는 것이 싸움의 기술이다. 안다고 특별히 달라지는 것 없다.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것이 최고의 기술이다. 물론 밝혀할 것은 밝혀야겠지만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부질없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상황을 지혜롭게 구분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싸움이 되어야지 화풀이를 위한 싸움이 되면 안 된다. 인간은 철저히 이성적인 것 같으면서도 매우 감성적인 감정을 가진 동물이다.


아내와 17년 동안 살고 있지만 여전히 안 맞는 것은 안 맞고 어려운 것은 어렵다. 서로 소심하면 소심한 가정이 되고, 서로 대범하면 대범한 가정이 된다. 둘 다 너무 대범하다 보면 가정을 말아먹을 수 있는 위험도 있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도 문제는 생기고 안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도 문제는 생긴다. 그러니 그냥 대충 살면 되는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싸움할 때는 소심하게 싸워라. 끝장을 보려고 달려든다던가, 서로 힘자랑을 하면 안 된다.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끝장을 보자고 싸워도 끝나지 않는다. 휴전이지 종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되면 도망쳐라. 이 기술은 어디에든 다 적용이 되는 기술이다. 부부싸움에서, 사회에서, 전쟁에서..... 길 가다 깡패를 만나도 이길 수 없다면 재빨리 도망쳐야 한다. 손자병법에도 나오지 않던가? 잘 도망치는 것도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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