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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soda Feb 24. 2017

타이완 여행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 #2

가오슝에 가는 날이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조식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섰다.

동먼 역에서 이지카드를 사서 충전하고 타이베이 중앙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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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미리 정해두었던 대로 고속철도 안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것 같은 철도 도시락을 사러 헤매 다녔는데, 얼마나 역이 넓은지 각 블로그나 책자에 등장하는 '1층에서 철도 도시락을 사고'라는 구절만으로는 가게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마침내 남3문과 서3문 사이 모퉁이 쪽에서 소문의 가게를 발견하고 다음에 또 올 때를 대비해서 꼭 기억해 두겠다고 결심하며 메모까지 해두었는데……. 

어쨌든 돼지갈비가 들어있는 도시락과 베지테리언 도시락을 샀는데, 돼지갈비가 든 도시락을 하나 고르고 나서 나머지 도시락 중에 어떤 제품을 가리키며 "이게 뭐죠?"라 물어도 죄다 "베지테리언"이라는 대답이 돌아와서 적잖이 당황하다가 그중에서 가장 채소가 많이 들어있는 듯한 제품을 선택했다. 돼지갈비 도시락이 NT$80이고 특별 한정 발매 중이었던 베지테리언 도시락이 NT$100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맛있지 않습니다.

역내의 작은 편의점에서 음료수까지 따로 구입하여 고속철도에 탑승했다. 식탁을 펼치고 본격적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음료를 올릴 수 있는 홈이 깊어서 상당히 안정적이라 마음에 들었다. 

채소 도시락은 뭐 그냥 나물이 잔뜩 들어있는 도시락 맛이었는데, 샐러리가 잔뜩 놓인 탓에 그 부분의 음식물이 모두 샐러리향에 오염된 것만 빼면 상당히 괜찮았다. 샐러리는 일부러 뺄 정도는 아니지만 즐겨 먹을 정도로 썩 좋아하지도 않아서 말이다. 반면 돼지갈비 도시락은 종종 진과스의 광부 도시락과 비교되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는 지난번 여행에서 먹었던 광부 도시락이 훨씬 더 맛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도시락 가게의 위치는 외워 두었지만 다음에 또 고속철도를 타게 된다면 다른 도시락을 사 먹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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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슝으로 가는 고속철도는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왕복으로 예매해 두었는데, 가는 길은 가장 정차역이 적어서 1시간 30분 만에 갈 수 있는 표를 끊었고, 오는 길은 2시간이 걸리는 대신 조기 예약 할인 20%를 적용받을 수 있는 표를 끊었다. 각각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왕복으로 일인당 NT$2,680.

지나가는 풍경은 지겹지 않지만 그와는 별개로 무릇 기차를 타면 잠이 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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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슝에 도착했다.

쭤잉 역의 보관함에 캐리어를 맡겨두고(NT$50) 렌츠탄에 가기 위해 서둘러 버스를 타러 나갔다. 2번 출구로 나가면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51번이나 301번 버스를 타면 간다고 하던데, 웬걸 막상 나가보니 버스 정류장을 샅샅이 뒤져도 그런 버스가 서는 정류장이 없는 것이다. 이리저리 조금 헤매다가 퍼뜩 다시 보니 그 2번 출구는 MRT 쭤잉 역의 2번 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HSR 쭤잉 역 2번 출구로 내려온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택시를 탈 수밖에 없나, 그러고 있다가 친절한 택시 기사님의 도움으로 35번 버스를 타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35A라고 적힌 버스는 다른 버스인 줄 알고 그냥 보냈는데, 다음에 온 것도 35A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탔다. 이지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고 없다는 사람도 있어서 긴장했는데, 다행히 이지카드는 잘 작동되었고 오르내릴 때 찍어주기만 하면 되니 무척이나 편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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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츠탄에 도착했다. 관광객이 엄청 많았다.

이쯤 되면 슬슬 확신이 든다. 이것은 미세먼지.

이래 봬도 가오슝의 랜드마크 같은 존재라는 용호탑. 귀찮음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여유롭게 거니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우리는 탑 두 개를 부지런히 올라가서 바깥 경치를 구경하고 깔끔하게 돌아섰다. 겁 많은 나 치고는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밖에 몸을 빼고 사진을 찍은 것만 해도 칭찬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름 낀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다지 맑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 하늘에 먼지가 잔뜩 끼여서 사진으로는 푸르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간 회색과 하늘색을 어중간하게 섞어놓은 듯한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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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슝에서는 호텔 두아라는 곳에 묵었다. 어둡다는 평을 많이 들어서 예약을 하면서도 살짝 걱정했으나 다른 호텔에 비해 그다지 어둡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방은 널찍한 데다 깔끔해서 다음에 또 혹여나 가오슝을 올 일이 있다면 이곳에서 묵겠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공간에서는 가오슝 시내를 조망할 수 있었는데, 역시 가오슝의 하늘은 미세먼지로 가득했다.

잿빛 하늘. 해가 어디서 지는지도 잘 알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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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닌데 렌츠탄에 다녀온 것만으로도 상당히 지쳐서 방안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며 갈등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석양의 명소라는 시즈완에는 다녀오자는 결론을 내렸을 때는 이미 해 질 녘이었다. 황급히 호텔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여 옛 영국영사관 쪽으로 이동했는데, 가는 길에서 동행이 차창 밖으로 붉게 넘어가는 태양을 목격해 버린 까닭에 벌써부터 약간 실망한 상태로 영국영사관에 도착했다.

NT$99의 입장료(NT$30의 사용권 포함)를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섰더니 그럭저럭 괜찮은 경치가 펼쳐졌다.

해가 이미 졌는지 아니면 먼지와 구름 탓에 안 보이는지 헷갈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던 로즈티를 즐기며 여기저기를 산책하는 도중에 완전히 어둠이 내리고 야경까지 보이자, 처음에 떨떠름했던 기분이 완전히 풀어지고 심지어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부지런하게 행동하면 자기 만족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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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때는 99번 버스를 타려고 미리 조사해둔 정류장 쪽으로 올라갔다. 버스를 탈 때 시즈완 역에 서는지 기사님께 물어보았는데, 그 덕분인지 시즈완 역 1번 출구에서 한참 동안 정차하며 우리가 내리기를 기다려 주셨다. 중간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서 안내판이 보이지 않아서 긴장했는데, 말을 전달해가며 우리가 내릴 곳이라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들 덕분에 집에 잘 들어갈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다.

기념으로 사라져가는 버스의 꽁무니를 사진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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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悦品餐廳라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예약을 따로 하지 않아서 들어갔을 때에는 만석이었는데, 다행히 얼마 기다리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다. 새우 요리와 군만두, 스프링롤, 그리고 중화 야키소바를 부탁했고, 다들 그럭저럭 맛있었다. 차와 맥주까지 합해서 NT$960. 생각보다 음식들이 커서 상당히 배가 불렀다.

새우가 맛있으나 너무 커서 차 없인 못 먹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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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었으면 오늘의 일정은 끝……이라 생각했으나 호텔 방에 놓인 브로셔에 따르면 호텔 최상층에 있는 etage15라는 바에서 22시 30분까지 해피 아워를 한다는 게 아닌가. 간단하게 가서 샴페인을 부탁하고 라임, 탄산수, 로즈메리, 민트, 그 밖의 뭔가의 허브를 넣어 만든 논알코올 소프트 음료를 한 잔 했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맛있습니다.

하루종일 엄청나게 돌아다닌 기분이었는데 막상 써보니 별 거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일에는 너무도 피곤하여 다음 날에 컨딩에 갈 예정을 취소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결국 아침에 일어나서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면 슬슬 출발하자는 결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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