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즐건 Nov 30. 2021

백수의 한 달

하루는 짧고 한 달은 기네

자유인이 된 지 한 달 하고도 2주가 지났다. 회사를 다녔던 시절이 전생처럼 느껴지는 걸 보니, 잘 지내는 게 분명하다. 와 어떻게 회사를 다니면서 집안일도 하고 살았을까? 대단했네 싶다가도, 회사 다니면서 집안일도 했다고? 미쳤네 하는 순간도 있다. 물이 반 밖에 없다고? 물이 반이나 있다고? 이런 뉘앙스로 말이지.


퇴사 전의 계획 - 먹고 자고 운동만 한다

인수인계를 하면서 세웠던 계획은 1개월 동안은 먹고, 자고, 운동하기였다. 신체와 정신 모두 와르르 된 상태였어서 재건과 재활이 먼저였거든. 그래서 생각한 게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몸과 마음을 다시 정렬하는데 목표를 뒀다. 거기에 약간의 독서를 곁들인.


현실 - 운동 빼고 다 한다

한 달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계획했던 것보다 운동은 훨-씬 못했고, 대신 더 많이 돌아다녔다. 백수가 과로사할 것 같다는 말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아직도 그런단 소리) 무튼 즐거운 시절이다. 하루가 너무 짧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물론 잘 먹고 다니는 중인데... 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퇴사 후 일주일 만에 3kg이 빠졌다. 이것은 붓기임이 확실하다. 간식을 끊은 것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의식해서 간식을 끊은 건 아니다. 재직 중일 때처럼 머리 쓸 일이 많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군것질을 덜 찾게 되더라고. 때로는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고프다. 입맛이 없어서 안 먹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루는 짧고 한 달은 길다

운동을 하는 날을 기준으로 보면 나의 오전 일과는 다음과 같다

08:00 - 기상 및 침구 정리, 세수

09:00 ~ 10:00 - 러닝 및 스트레칭

10:30 ~ 11:00 - 샤워 

11:00 ~ 11:30 - 식사 준비

11:30 ~ 12:00 - 식사 및 뒷정리



운동하고 씻고 밥 한 끼 먹었을 뿐인데 오전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청소나 빨래를 해두고 나갔다 돌아오면 하루는 끝이 난다. 일이 아니라 온전히 나 하나 케어하는데 하루를 쓴다니! 생각보다 번거롭고 귀찮은 것도 많지만 이 마저 안 하면 너무 무기력해질 것 같다. 가장 좋은 건 아침에 눈떴을 때 '아오 씨 출근해야 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사 다닐 땐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요즘은 눈이 착착 떠진다. 가끔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든 날이면 다음 날 6시에 눈이 반짝하고 떠진다니까? 이건 컨디션이 엄청나게 좋아졌단 증거다.


한 달 동안 많은 걸 했다. 일단 퇴사하고 바로 2박 3일 캠핑을 다녀오고, 다음 날 오후에 비행기 끊고 제주도로 날아갔다. 5일 정도 여행과 캠핑을 하고 다시 돌아와 끝나지 않은 송별회를 마저 하고, 운동을 하고, 본가에도 다녀오고, 전시 보러 다니고, 맛있는 거 먹고, 사람들 만나고, 가끔 알바를 하고 또 여행을 다녀왔더니 한 달이 훅- 갔다. 그래서 한 달 전 일이 아주 오래전 기억처럼 느껴진다. 


한 달을 이렇게나 알차게 놀다니. 예전에도 백수 생활을 할 땐 집에 거의 누워있었다. 그때도 아파서 퇴사하긴 했는데, 그땐 본가에 살아서 집도 넓고, 개도 돌봐야 해서 할 일이 많았거든. 나를 위해서만 시간을 쓰는 게 아니어서 그랬을까? 


배우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일단은 좀 놀아야 뭘 하고 싶은지, 무엇부터 할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매일매일 매 순간이 즐거운 건 아니다. 생활인으로 겪는 어려움도 분명 있고 문득문득 찾아오는 불안감과 우울감도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애정 어린 관심에 치유받고 또 괜찮아진다. 혹은 나가서 산책하고 오면 또 괜찮아진다. 이제는 다음에 회사를 가게 되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조금씩 내제화 되는 것 같달까. 아 그렇다고 당장 취업하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