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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즐건 Dec 20. 2021

백수의 달리기

달리기를 계속하는 이유

2020년 가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어머나 벌써 1년이 지났네. 생각보다 오래 해왔네.


가을을 시작으로 겨울과 봄, 열심히 뛰었다.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숨을 몰아 쉬며 달렸다. 달리기는 했지만 빠르진 않았다. 속력이나 거리나 모두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뛴다는 행위만으로도 즐거웠다. 여름 더위에 취약해서 한 여름엔 뛰는 날이 드물었다. 그리고 밤공기가 선선해지면서 러닝화를 자주 신었다. 올해 초 영하 14도에도 나가 뛰는 기적을 보였는데 아직도 내가 믿기지 않는다. 이번 겨울에도 그렇게 뛸 수 있을까? 백수인 지금도 매일은 아니지만… 종종 나가서 뛴다.


나는 왜 뛰었는가

20년도엔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심리치료는 아니었고 정신과에서 짧은 상담과 약 처방을 받는 정도로. 병원에 첫 발을 딛는 게 어려웠지, 한 번 가보니 별 거 아니더라고.


집을 나서는 유일한 이유는 출근뿐이었고, 그야말로 겨우 나갔다. 집은 청소를 할 수 없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겨우 하루를 살았다. 이런 시기가 지속되니까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오더라.


처음엔 그저 귀찮아서,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근데 아니더라고. 깨닫게 되니 문밖을 나서는 것조차 버거워하던 내가 근처 병원에 예약 문의 전화를 돌릴 수 있었다. 방문 전 약간 용기를 얻은 의외의 포인트가 있다. 예약 문의를 했을 때 근처 병원들이 짧게는 1주일, 길게는 3주는 예약이 다 찼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가는구나!” 당장 가지는 못했지만, 특정 요일엔 예약 안 받고 현장 접수받는 곳이 있어 그곳을 갔다. (물론 남들도 아픈 거에 위안을 삼은 건 아니다. 다들 병원을 가는 데서 용기를 얻은 거지)


몇 가지 검사를 받고 선생님의 첫마디는 ‘왜 이렇게까지 참았어요?’였다. 검사 결과가 꽤나 좋지 않았다. 약을 먹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을 만큼 지쳐서 나는 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혼란한 약 적응기를 지나니 약간의 평온함이 찾아왔다. 그때 든 생각은 ‘아니 왜 이제 갔지? 진즉 갈 걸’이었다. 약물치료는 마이너스의 나를 제로 상태로 만들어주었다. 텐션이 업되는 건 아니나 평온한 상태가 지속됐다. 남들은 늘 이렇다고? 나 왜 그렇게 오래 참았지?


기분이 플러스가 되려면 약간의 노력을 추가해야 했다. 여러 가지 시도 중 하나가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느긋하게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해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더라고.


어쩌다가 러닝을 하게 됐다. 유튜브를 보다가 러닝 영상을 봤던 것 같다. 한바탕 뛰고 나면 개운해지는 경험이 있어서 뛰기로 했다. 혼자서 하긴 힘드니까 런데이 앱을 이용했다.


런데이는 체계적이었다. 1분 뛰고 2분 걷고를 시작으로 나중엔 쉬지 않고 30분을 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안 뒤면 실력은 쳐진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다시 앞에 세션부터 하면 되니까.


8주 차 세션을 모두 마치고 나니 뒤로 돌려서 시작하는 거에 실망할 필요 없다는 걸 배웠다. 그렇게 뛰는 재미를 알게 됐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훨씬 좋아진 나를 발견했다. 덕분에 약물치료는 3개월 진행 뒤 끝냈다.


선생님은 마지막 상담 시간에 이런 말을 하셨다. “내면에 힘이 있어서 빨리 끝난 거예요. 그렇지만 힘들어지면 참지 말고 다시 오세요.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래서 아직도 뛴다, 자주는 아니지만

올해 초는 무슨 독이 올랐는지, 아침마다 “지금도 누가 밖에 뛰고 있어!” 라며 이불을 박차고 나갔다. 새벽 5시 반, 6시에 나가도 누군가는 뛰거나 산책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른 출근을 한다. 그 시간에도 세상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경의로웠다. 깜깜한 새벽에 집 밖을 나서고, 뛰면서 동이 트는 걸 봤다. 바닷가에서 일출을 보는 것과 동네에서 뛰면서 보는 일출은 다른 벅참이 있다. 물론 지금은 “으으 9시에 나가야지~” 하고 10시에 나가서 뛰곤 한다.


지금의 뛰는 재미는 산책 나온 멍멍이 구경이다. 크기도 모양도 다양한 친구들을 보는 재미로 나간다. 나는 인사하고 싶은데 견주분들이 매몰차게(?) 리드 줄을 당기면 조금 섭섭하지만, 그분들은 또 그게 역할이니까. 뛰다가 걷고 싶어지는 욕망이 차오르면 ‘저 앞에 있는 멍멍이까지만 뛰자’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앞에 쓴 글에도 적었는데, 퇴사하고 먹고 자고 운동만 할 셈이었다. 그 운동은 러닝이었고, 목표는 매일 30분씩 뛰기였다. 하지만,,, 갖은 약속과 여기저기 쏘다님과 술자리에 생각보다 운동은 조금 뒷전이 되었다. 오히려 퇴사 전 보다 뛰는 날이 줄어버렸다. 뭐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으니 됐다! 싶지만,,,


백수에게 러닝은 정말 좋은 운동이다. 헬스장을 가지 않아도 되고, 러닝화랑 기능성 의류만 있으면 된다. 런데이 앱은 또 무료다. 아침에 나가서 한 바퀴 뛰고, 씻고, 밥 차려 먹으면 어쩐지 잘 살고 있는 기분을 들게 한다. 


사실 지금 좀 런태기야

요즘 다시 뛰기가 어려워졌다. 체력도 떨어진 것 같고, 다리는 더 빨리 아파지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뛰기 싫어지는 건 당연지사. (물론 열심히 노는 중이라 바쁨) 1년간 뛰어온 기념으로 러닝화 하나 선물해야겠다. 

참 그래도 1년간 열심 > 설렁설렁 뛰었는데 7~8kg 정도 감량했다. 러닝 페이스가 빨라지진 않았지만 체력은 좋아졌으니 올해의 잘한 일이라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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